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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국가재정법 제대로 만들자

박정수(朴釘洙) 서울시립대학교 교수


 

정부는 재정운용여건의 급속한 변화에 부응해 새로운 재정운용의 틀을 마련하기 위해 예산회계법과 기금관리기본법을 발전적으로 통합해 재정운용계획, 예산총액배분·자율편성, 성과관리 등 재정개혁과제들의 효율적인 추진을 뒷받침하고 재정의 효율성, 건전성 및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국가재정법안을 지난 2004.10.19에 국회에 제출했다. 이와 함께 박재완 의원이 대표발의한 국가건전재정법안도 2004.12.6 발의됐는바 이는 정부법안에 대한 한나라당의 대안적 성격의 입법안이다. 동 안은 국민의 재정주권을 강화하기 위해 예산총칙에 법률적 지위를 부여하고 예산지출법, 조세지출예산제도를 도입하며, 예산심의·결산심사에서 국회의 권한을 강화하고, 납세자소송제도를 도입하려는 것이 특징이다. 이 안은 정부안에 비해 세입증가율은 둔화되는 반면, 복지지출을 비롯해 세출소요는 계속 증가해 재정여건이 악화되고 있어 국가채무의 체계적인 관리와 건전재정기조의 유지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양 법안 모두 당면한 새로운 재정운용 여건하에서 선진화된 재정제도의 기반을 마련하고자 한다는 점에서는 그 취지를 같이 하고 있다.

현행 예산회계법은 '61년 제정 이래 무려 25차례의 개정이 이뤄졌으나 여전히 단년도 및 통제위주의 운용방식을 탈피하지 못한 결과 지속적인 재정소요의 확대와 재정운용에 대한 국민의 참여요구 증대, 그리고 국가채무의 증가 등 재정운용여건의 변화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양 법안은 성과관리, 재정공시, 시민단체의 재정감시, 건전재정, 총액예산 등과 같은 혁신적인 예산운용 내용이 포함돼 있어, 과거 행정관리적 성격의 '예산회계법'과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진일보한 제도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할 수 있다.

예산회계법, 기금관리기본법 등 개별적으로 산재돼 있는 법률을 국가재정법 체계로 통합했다는 점에서는 의의가 인정되지만 의도한 기대효과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지속 가능한 건전재정 운영의 의지가 보다 강하게 강조되고 실천력이 강화될 수 있는 미세한 장치들이 마련돼야 한다.

구체적으로 성과관리, 총액예산, 성과공시, 시민참여 등과 같은 혁신 시책들이 비록 법률적인 뒷받침은 없었지만 법률근거에 대한 논란없이 기존에 시행되고 있는 것으로 새로운 것이 아니다. 문제는 해당 시책들이 의도한 성과를 거의 발휘하지 못하고 개혁이라는 명분아래 정부 부처에 대해 약간의 긴장감만 주고 있었다는 현실을 충분히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 중요한 것은 개혁시책들을 통합하는 연계시스템과 개별 제도 운영의 질적 수준을 향상시키는 것이다. 따라서 이를 위한 새롭고 좀더 구체적인 실천력을 가진 접근수단들이 법제화돼야 한다. 특히 정부안의 예산총칙 제1조는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을 국가가 인지하고 실천한다는 정도의 의지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단순히 '투명성과 건전재정'만 언급하고 있고 '성과 지향', '재정성과에 대한 책임', '건전재정에 대한 책임' 등과 같은 적극적인 선언이 누락돼 있다. 정부안은 기획예산처 중심의 수직적 예산접근 성격이 여전히 짙다. 국회의 예산기능, 성과 정당성 확보를 위한 시민의 참여, 성과검증 등 재정거버넌스에 대한 개념이 명확히 정착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법안의 조항들간 상충관계 가능성에 대해서도 충실한 보완이 필요하다. 총액예산 근거로 한도액을 설정하면 개별 부처에서 예산편성의 재량이나 집행에서 자율성을 확대하는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 아울러 자율성이 확대되면 성과에 책임을 지는 규정도 마련돼야 한다. 예산운영의 성과에 대한 정기적인 보고, 관리, 평가체계에 대한 내용이 법제화돼야 한다. 성과 지향 등의 내용은 있지만 집행부분에서의 조항들은 과거와 같이 통제지향적인 성격이 강하다. 실제 법안이 의도하는 효과들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을지 여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정부안을 골격으로 하되, 의원발의안의 취지를 충분히 반영해 합리적인 재정운용의 틀이 마련되기를 기대한다.

※본란의 기고는 本紙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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