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자로 정부 중앙부처 정식 1∼3급 국장급을 대상으로 고위공무원단(이하 '고공단')제 본격 가동에 들어갔다. 고공단은 자율직(50%), 공모직(30%), 개방직(20%) 등 3단계로 모집직급을 구분, 관련 직급 관리자가 결원이 될 때마다 정해진 절차에 따라 인사를 단행하게 된다. 그러나 여타 부처에 비해 정년에 2년 앞당겨 퇴직을 하는 명퇴제를 아직도 굳건히(?) 운용하고 있는 국세청은 고공단이 시행되자, 관계자들 사이에서 보이지 않는 묘한 신경전이 전개되고 있는 등 사안에 따라 적잖은 마찰음이 일고 있어 문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공단 보직을 인선하는 권한은 역시 소속 기관장에게 주어져 있음은 불문가지(不問可知)다. 이에 본지는 고공단제 해당 직급에 대해 심층해부와 함께 운용에 따른 영향과 파장을 중점분석해 본다. <편집자 주>
국세청 국장급 관계자들에겐 아직 고공단제가 낯설다 못해 생소하기까지 하다. 이는 고공단제 시행과 더불어 국세청장이 전격적으로 교체되는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된 것도 한 요인이다. 워낙 충격이 컸던 탓인지 국세청 관계자들은 여전히 당혹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본청 간부진은 휴무일인 매주 토·일요일 정상출근을 하면서 서서히 업무를 다독이고 있다. 이에 따라서 이달말경으로 예정돼 있는 전국 관서장 회의가 끝나면 안정된 종전의 모습으로 되돌아 갈 수 있을 것이다.
고공단제의 특징을 살펴보면, 우선 결원(缺員)이 발생할 경우에 인사를 단행하게 되며 둘째, 2년마다 개방형 직위를 모집해야 하고 셋째, 명예퇴직제가 사실상 유명무실(有名無實)해졌으며,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문제소지가 큰 정실인사(情實人事)의 개연성에서 쉽게 벗어날 수 없는 구도로 짜여져 있다.
이 가운데 정부 각 부처별로 전문성과 제각기 특성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획일적으로 적용하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고공단제는 외형적으론 중앙인사위가 주무 부처(기획, 연출, 감독)인 것처럼 보이나 사실은 청와대와 정치권의 입김이 그 어느 때보다 크게 작용하는 구도로 짜여져 있다. 따라서 실질적인 운용상의 칼자루는 청와대와 정치권이 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세정가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정실인사 개연성 커
고공단제가 운용되는 국세청 직급을 보면 국세청장을 제외한 차장이하 6개 지방청장, 본청·지방청(서울, 중부청) 정식 국장급(3급 승진이상 관리자)이 그 대상이다.<도표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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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좀더 세분화해 보면 ▶국세청 본청의 경우 차장, 조사국장, 정책홍보관리관, 개인납세국장, 법인납세국장(이상 자율직), 국제조세관리관, 법무심사국장, 국세공무원교육원장(이상 공모직), 감사관, 납세지원국장, 전산정보관리관(이상 개방직) 등으로 나눠져 있다.
또 ▶서울청은 서울청장, 조사1국장, 조사2국장, 조사4국장(이상 자율직), 세원관리국장, 국제거래조사국장, 조사3국장(이상 공모직), 납세지원국장(이상 개방직) 등이 ▶중부청은 중부청장, 조사1국장, 조사3국장(이상 자율직), 조사2국장(공모직), 납세지원국장, 세원관리국장(이상 개방직) 등으로 직급이 구분돼 있다.
이밖에 대전·광주·대구·부산청장 등은 자율직급으로 분류돼 있다.
특히 "고공단제에서 가·나·다·라 등으로 등급이 구분되는 것은 등급에 따라 급여체계와 수당 등이 차이를 보이는 것"이라고 국세청의 한 관계자는 설명했다.
따라서 '가 등급'인 국세청 차장과 '나 등급'인 서울청장, 중부청장 등은 직급 구분에서 동일한 자율직급이긴 하지만, 위상과 주어진 업무영역 등의 면에서 엄연히 격차가 있는 것이다.
더욱이 이미 두차례나 내부승진 전통이 지켜진 국세청은 차장과 서울·중부청장 등의 격(格)은 고공단 이전과 마찬가지로 그대로 유지될 전망이다.
이같은 실례는 윤종훈 전 서울청장이 평소는 물론 해외(중국)에 나갈 때 전군표 국세청장(당시 차장)에게 깎듯이 보고를 하고 갔던 사례와, 차장으로 내정된 한상률 서울청장 역시 자신을 낮추고 언론 등 외부에 일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사례 등이 이를 잘 입증하고도 남음이 있다.
차장과 서울청장, 격(格) 달라
앞서 밝힌 고공단의 몇가지 특징 중 관심이 가는 대목은 명퇴제도가 그대로 적용될지 여부다. 즉 연령순에 의해 퇴진이 불가피한 국장급을 적기에 명퇴시킬 수 있을지 여부다.
이에 대해 고공단제의 성격을 잘 안다는 세정가의 한 관계자는 "고공단이 시행되면서부터 명퇴연령이 된 국장급은 후배와 주위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고, 퇴진압력 또한 사라져 사실상 명퇴제가 유명무실(有名無實)해진 셈"이라고 전제하면서도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스스로 물러날 때를 제대로 선택하지 못하면, 불명예스럽게 퇴진하는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결국 이 관계자의 말은 '명퇴할 시점이 됐는데 그 시기를 일실하게 되면, 종전보다 훨씬 격이 떨어지는 보직으로 좌천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례로 지방청장(대전, 광주, 대구, 부산청) 직을 수행한 뒤에 스스로 퇴진하지 않을 경우 서울·중부청 납세지원국장 등으로 보직발령을 받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퇴직을 하고 난 뒤 청장님(지방청장) 소리를 듣는 것과는 천양지차(天壤之差)이기 때문이다.
한편 고공단제의 또다른 특징은 향후 인사때 지방청장을 역임했다고 해서 반드시 본청 국장으로 보임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지방청장을 하고 난 후 서울청 조사국장, 중부청 조사국장 등에 보임될 소지가 있다.
그러나 서울·중부청 조사국장이면 충격이 덜할까, 여타 그 이외의 국장급이라면 사정은 크게 달라질 것이다.
더욱이 국세청장의 인사권(人事權)은 여전히 막강하다. 아니, 오히려 종전보다 더 강화됐다는 게 정설이다.
명퇴시기, 선택 잘 해야
바로 이 점이 고공단제의 색다른 점이다. 이처럼 고공단제는 사전에 설정해 놓은 여러가지 정황(각본)에 따라 퇴진이 빈번하게 발생할 개연성이 크다. 그러나 고공단제는 조직의 신진대사를 원활하게 함과 동시에 반면,정실인사가 자연스럽게 내재될 수밖에 없는 문제점도 병행하고 있다.
이같은 고공단제 시행으로 최근 국세청내 국장급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국장급 인재(人才)가 너무 자주 바뀐다며, 이는 과유불급(過猶不及)에 다름 아니다"고 아쉬워하고 있다.
이른바 물이 고이지 않고 자주 흐르는 것은 바람직하나, 넘치면 조직에 균열감이 생기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일부 관계자들은 "국세청은 사정기관이니 만큼, 국세공무원특별법을 설치, 계급정년제 개념으로 조직운용체계를 전환해야 한다"는 진단을 내놓기도 한다. 그러나 시행 한달도 안된 이 시점에서 이러한 주장은 설득력과 명분이 없는 실정이다. 본격화된 고공단제, 다가올 9월말과 올 연말부터 본격화할 보직인사의 파열음이 벌써부터 귓전을 때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