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청 개청이후 관세수입은 괄목할 정도로 꾸준히 늘어나 '82년에 접어들어 드디어 1조원대를 돌파하기에 이르렀으며 '70년도 당시 5백9억원에 불과했던 것과 비교해 '82년도에는 1조1백26억원으로 무려 1천9백배의 증가를 가져왔다.
이같이 관세수입이 1조원대에 진입할 수 있었던 이유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었겠지만 그 가운데서도 수입물량의 증가와 수입가격의 상승이 주요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70년도의 수입물량이 19억8천4백만달러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 '74년도의 특관세법의 폐지와 '51년부터 시행되어온 톤稅 역시 '77년도에 폐지돼 총체적인 관세수입의 감소요인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74년도의 오일파동이후 국제원자재가격이 지속적으로 상승함에 따라 관세수입의 증가가 이어져 '82년도에는 2백42억5천만달러로 자그마치 11배가 넘게 증가한 것이다.
또한 70년대의 평균관세율이 38.7%대에서 '82년도에는 23.7%로 하향 조정됐음에도 불구하고 관세수입이 증가했던 이유는 관세수입은 원래 외화가격과 환율에 의해 결정됨에 따라 외화가격과 환율이 인상되고 수입물량의 증가가 관세율 인하보다 많다보니 결국에는 관세가 증가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관세수입 1조원 돌파는 그 숫자의 크기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관세청은 관세수입을 위해 관세수입의 최대 걸림돌인 밀수차단으로 세원을 확보하는데 꾸준한 노력을 기울였으며 징수행정의 과학화로 수입품 통관의 신속화와 다양한 수출지원책 등 최대한의 관세감면제도를 부여하면서도 관세수입 1조원을 기록해 그 의의는 매우 크다는 평가를 받았다.
일반적으로 우리 나라와 비교해 선진국에서는 관세수입의 비중이 매우 높다. 이에 대해 당시 관계자에 따르면 우리 나라의 경우 '70년부터 '82년 사이에는 총 세수에서 관세가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낮았는데 그 이유는 내국세의 새로운 세원이 많이 창출된데도 원인이 있겠으나 무엇보다 관세행정의 건전한 발전 내지 선진화에 그 원인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