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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하기 2025.08.07. (목)

[세관야화(18)]국보위에 의한 공직숙청

계엄령 선포후 관세청 숙청바람


'79년은 우리 역사에서 또다시 피로 얼룩졌던 한 해로 기록되고 있다. 당시 중앙정보부장이었던 김재규가 박정희 대통령을 시해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른바 `10·26사태'라고 일컬어지는 이 사건을 통해 우리 사회는 다시 한번 안개정국으로 휩싸이는 혼란기에 접어들게 됐으며 `12·12사태'로 이어진다.

당시의 혼란한 정국은 하나회를 중심으로 한 신군부 실력자들의 정권탈취 음모를 가속화하는 계기가 됐으며 이들은 곧 계엄령을 선포하기에 이른다.

신군부는 '80.5.16 광주에서 민주화를 요구하는 민중들에게 공수특전단을 투입, 무고한 인명살상을 자행한 것을 비롯해 국내의 수많은 정치인 민주인사 학생들을 사전체포·구금했으며 대학가나 주요 시가지에는 전차를 배치하는 등 무력행사를 벌이게 된다.

또한 당시 동아일보의 김상만, 한국일보의 장강재, TBC의 이병철씨 등은 보안사 수사실에 불려 들어가 신군부의 요구대로 포기각서를 써야 했으며 신군부의 수순대로 언론 통·폐합을 해야만 했다.

'80.5.31에는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가 들어서 공직사회의 기강확립이라는 미명하에 대대적인 숙청작업을 벌여나갔다.

공직자들 가운데 무사안일하고 관리능력이 결여(서정쇄신 추진능력 미흡, 부당한 지시)된 자, 공직 부적격자(사생활 문란, 신체장애, 공복정신 결여), 분수에 맞지 않는 생활을 한 자 등 대대적인 숙청작업을 가했는데 관세청도 그 예외는 아니었다.

5공 군사정권의 등장을 합리화시키기 위한 일련의 숙청작업을 통해 관세청에서도 무려 1백51명이 관복을 벗어야 했다.

'80.7월에 해직된 관세청 직원들로는 관세청 국장급인 이사관 3명, 서기관 10명, 사무관 17명, 주사급이하가 1백21명이나 됐다.

그러나 국보위의 무분별한 기준에 의해 당시 관복을 벗어야 했던 많은 관세청 직원들은 희생양에 불과했으며 당시 근무했던 대부분의 직원들 또한 그렇게 생각했다.

이들 해직자들 가운데 '89.12월에 그동안 숨졌거나 특별한 사유가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본인의 의사에 따라 해직공무원 특별채용에서 45명이 재임명돼 현재까지 각자의 임무에 충실히 임하고 있다.

'80년초 단행된 국보위의 소위 `공직사회 기강확립'은 세관 역사상 전대미문의 숙청이 이뤄졌으며 이로 인해 대부분의 직원들이 가슴 아파했던 사건으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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