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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하기 2025.06.20. (금)

[시론]주세율 체계의 바람직한 개편방향

성명재 한국조세연구원 연구위원

적당한 주류 소비는 일상생활에 촉매 역할을 하지만 과도한 음주는 각종 사고와 질병 등을 유발하면서 사회·경제적으로 심각한 부작용을 낳는다. 우리나라는 남에게 술을 권하는 것을 일종의 미덕으로 여기는 문화가 있다. 기저에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함께 나누는 이웃간의 끈끈하고 따뜻한 情이 내재돼 있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에서는 쉽게 찾아보기 어려운 아름다운 마음씨의 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술과 관련해서는 이웃과 함께 나누는 친절함과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가 종종 지나쳐서,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술을 강권하거나, 권주를 거부하는 경우에는 오히려 조롱하거나 불쾌해하는 것을 주위에서 드물지 않게 볼 수 있다. 음주의 패턴도 상당히 독특하다. 일단 발동이 걸리면 1, 2, 3차는 기본이고, 폭탄주, 회오리주 등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소위 '끝장'을 볼 때까지 술을 마신다. 술 자체를 즐기기보다는 마치 원수라도 진 듯이 퍼붓는다는 것이 보다 적확한 표현인 경우가 많다. 음주후에 소란과 난동을 피우더라도 '술 때문에'라는 변명 한마디면 만사가 용서되곤 한다. 음주에 대해 우리 사회가 너무 관대한 것도 이러한 비정상적인 음주문화의 한 요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대중주·저가주-저세율, 고급주·고가주-고세율' 원칙에 입각한 주세율 체계를 유지해 왔다. 일반 서민대중이 즐기는 대중주에는 낮은 세율을 부과하고, 가격이 높거나 고소득층이 주로 소비하는 고급주종에는 높은 세율을 부과해 왔다. 주세가 단순히 정부의 세입원으로만 기능한 것이 아니라, 가급적 세부담의 형평 제고를 위해 저소득층에는 낮은 부담을, 고소득층에는 높은 세부담을 지우는 체계를 견지해 왔다.

세율이 흐르면서 이런 원칙도 서서히 변하고 있다. 소득수준이 증대되면서 주류소비 패턴도 고도화·고급화돼 당초의 '대중주·저가주-저세율, 고급주·고가주-고세율' 원칙에 부합하지 않는 경우가 나타나고 있다.

소득수준이 낮았던 60년대와 70년대에는 맥주가 일종의 고급주로 인식됐다. 생산원가나 1병당 가격이 그다지 높지는 않았지만 알콜도수가 낮기 때문에 취기를 느끼기 위해서는 많은 양을 소비해야 하기 때문에 맥주를 마시는 경우에는 상당히 많은 비용이 들었다. 따라서 맥주는 일종의 고급주로 인식되면서 저소득층보다는 고소득층에서 많이 소비됐다. 그러므로 당시에는 고급주-고세율 원칙에 따라 맥주에 높은 주세율을 부과하는 것이 정당성을 가질 수 있었으며, 주세는 사치세로서의 기능도 일정부분 수행했다.

80년대 이후에는 맥주가 대중주로서 인식되기 시작했다. 주세율의 대중주-저세율 원칙에 따르면 맥주의 대중화 추세에 따라 맥주 주세율도 낮아져야 했지만 상당히 오랜기간 동안 그런 원칙에서 벗어나 있었다. 전반적으로 주세율이 인하되는 가운데 맥주세율의 인하는 무척 더디었다. 급기야 90년대에 접어들면서부터는 맥주가 고급·고가주인 위스키를 제치고 가장 높은 주세율이 부과되는 주종이 됐다.

그 이면에는 세수감소 문제가 걸려 있었다. 90년대까지만 해도 전체 주세 수입 중 맥주의 세수가 약 3분의2를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매우 높았다. 따라서 맥주 세율을 인하하면 세수감소 효과가 컸기 때문에 주세율 부과원칙에 위배됨을 알면서도 선뜻 맥주 세율을 조정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다른 주종의 세율을 인상해 세수를 보전할 수 있었다면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였지만 조세저항으로 인해 여타 주종에 대한 주세율 인상은 생각조차 어려웠다.

다행히 최근에는 맥주 세율을 단계적으로 인하해 2007년부터는 맥주 세율을 증류주 수준인 72%로 낮춰 어느 정도 주세부담의 형평문제를 회복할 수 있게 됐다. 시간이 많이 경과됐기는 했지만 늦게나마 바람직한 방향으로 진일보하였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만하다.

음주와 관련된 사회적 비용은 우리가 인식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 따라서 음주의 폐해를 줄이고자 선진국에서는 고도주에 높은 세율을 부과해 고도주의 소비억제를 도모하고 있다. 주세 부과를 통해 음주 폐해를 일소할 수는 없지만 조세정책을 빌어 최소한 수요 억제를 통해 음주 비용을 감축하고자 하고 있다. '고도주-고세율, 저도주-저세율' 원칙이 기저에 흐르고 있다.

국민건강과 웰빙문화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면서 주세과세의 목적 및 주세율 부과원칙도 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90년대말에는 한·EU 및 미국간 주세율 분쟁의 결과로서 소주와 위스키 등 모든 종류의 증류주에 대한 주세율이 72%에서 단일화됐다. 2007년부터는 맥주 세율도 동일하게 조정된다. 최근 주세율 조정을 통해 저도주-저세율 원칙은 점차 확립되는 과정에 있다. 그러나 고도주-고세율 원칙의 확립은 아직 요원하다. 그런 움직임이 있었지만 조세저항에 막혀 번번히 좌절됐다. 세금 더 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지만 음주에 따른 부작용을 줄이고 음주 관련 비용을 축소하기 위해서는 선진국의 경우처럼 '고도주-고세율, 저도주-저세율' 체계의 확립이 절실히 필요하다.

※본면의 외부기고는 本紙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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