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검색

구독하기 2025.08.02. (토)

[시론] 개인이냐 조직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김진성 구미1대학 교수



김진성
구미1대학 교수

한여름 대낮에 어떤 철학자가 산길을 걷던 중 석공 세사람을 만났다. 그가 마주치는 석수마다 돌장이로서의 소회를 물은즉, 험상궂은 얼굴로 돌을 깨던 첫번째 석공은 '머리에 든 것 없고 가진 것 없어 죽지도 살지도 못하여 이 짓을 하는 처지인데 길가는 나그네면 가던 길이나 그냥 갈 노릇이지 웬 참견이냐'며 눈을 부라리며 대들었고, 잠자코 돌만 깎던 두번째 석공은 '배운 것이라고는 고작 석수장이 일 뿐이라서 처자식 먹여 살리려고 마지못해 품파는 주제에 기쁨이든 슬픔이든 무에 있겠느냐'며 덤덤했고, 콧노래를 흥얼거리면서 돌을 쪼던 세번째 석공은 '이는 괴로운 일이 아니라 빛나는 예술품을 창작하는 작업이요, 거기서 나오는 수입으로 식구들 쓰고 아들딸 공부시키니 어찌 즐겁지 않으리요'라며 생업을 흡족히 여겼다.

모르긴 몰라도 상당수 세무공무원의 근무자세나 직업관이 아마 두번째 석공의 입장과 비슷하리라. 비근한 예로 일전의 직원 인사이동에 즈음해 전출희망지에 관해 떠도는 이야기가 대체로 교통이 편리한 곳 아니면 집에서 가까운 관서를 꼽았다 하니 8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선배들이 백화점ㆍ시장ㆍ집단상가 등을 낀 세원밀집지역이거나 대도시 번화가 관할세무서를 선호하던 경향과 견주어 보면 짐작이 갈 터이다.

그러할진대 국세청이라는 조직의 일원인 세무공무원에게 있어서 오늘날 조직 자체의 위상과 논리보다는 자기 자신의 입지가 우선한다는 개인위주의 사상과 이론이 중시되는 게 아닐까 싶다.

무릇 인간이 '사회적 동물'로서 단체생활을 영위함에 있어 그 집단과 개인간에 어떻게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느냐 하는 문제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곧 사인은 소속된 집합체에 어디까지 이바지하면서 참고 헌신해야 옳은 도리인지, 아울러 조직체는 그 구성원한테 얼마만큼 존중해 주고 대가를 치러야 마땅한 처사인지, 무엇보다 조직과 조직원 사이에 손익이 상충할 경우 어느 쪽에 우선순위를 둬야 온당한 결정인지, 이는 마치 '닭이 먼저냐 병아리(달걀)가 먼저냐'를 따지는 투여서 쉽사리 단정지을 만한 논제가 못된다.

어쨌든 지난해 세밑과 올 정초에 걸쳐서 세정가에는 대구 지하철 화재참사 만치나 충격적인 소식이 날아들었었다. 다름아닌 작년 12월16일 대전시청 기자실에서 대전지방국세청 전임 감사계장이 감사권 유린 사례를 폭로한 '양심선언'사건에 이어, 올 1월20일 아침 국세청에 파견된 某 중견직원이 '이 길이 전체를 위하는 길이라 믿었다. 아빠는 대의를 위해서 가는 거란다'는 아리송한 유서를 남긴 채 청사 16층에서 투신한 변고였다.

이를 놓고 감사계장과 고인을 조직사회에 누를 끼친 인물로 비난하는 무리도 있을 것이요, 조직 내부의 곪은 악성 종양을 터뜨린 용단이라며 자위하는 파도 있을 것이요, 이도저도 아닌 견해를 유보하거나 입을 다무는 측도 있을 것이나, 너나없이 이제와서 곰곰히 궁리할 과제는 비록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긴 하지만 다시는 이처럼 안타깝고 애석한 사태가 벌어지지 않도록 어쩌면 좋을꼬 하는 데에 있다. 다시 말해 국세청이 직원들 개개인(이들은 '세정개혁'이라는 힘겹고 쓰디쓴 과업을 묵묵히 수행한 일꾼이면서 그 열매는 맛보지 못한 주역들이다)을 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마련하고 반성해야 매듭이 풀릴런지 지혜를 짜내야 되지 않겠는가 말이다.

만약에 어느 갓난아기가 하나의 몸뚱이에 두개의 머리를 가지고 태어났다고 치자. 이 아이는 두사람으로서의 권리능력을 갖는가 아니면 한사람으로서의 대우로 족한 것인가. 얼핏보아 터무니없는 물음이거나 아무렇게 다루든 대수롭지 않은 사안으로 생각되겠지만, 음식은 일인분만 줄 것인지 두사람 몫을 배분할 것인지, 관람료는 한사람치만 받을 것인지 이인분을 청구할 것인지 일상생활의 자지레한 사례부터 소유권의 지분, 투표권의 행사 등등 갖은 법률사실까지 이만저만 심각한 골칫거리가 아닐 수 없다.

국세청은 한개의 몸체에 1만7천개 가량의 머리가 달린 셈이다. 열손가락을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없다는데 관계당국이 기자회견을 연 이와 목숨을 던진 분께는 말할 나위없이 직원 모두를 어떤 모양새로 위로하고 처우할 작정인지 자못 궁금하다.

수십년 동안 쏟아져 나온 국세청장의 취임사나 기념사들을 훑어보면 민주세정이니 정도세정이니 따위의 허울좋은 슬로건을 내걸고는 세정의 효율성과 공평성 및 깨끗하고 신뢰받는 공직자상을 누누이 강조했을 따름이지 막상 세무공무원의 복리후생과 사기진작에 대한 언급은 별반 없었으니 실로 유감스럽기 짝이 없는 노릇이다.

바야흐로 '국민이 대통령인' 새 정부가 들어선 지금 이때야말로 세정당국은 '세무공무원이 국세청장'이라는 발상아래 '국세공직자로서 자긍심과 일체감을 갖고 신명나게 일할 수 있는 직장분위기 조성을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해야 할 것'(2003년 국세청장의 신년사 가운데 한토막)이다. 다시는 이땅의 세무관서에 햄릿의 절규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가 울려퍼지지 않게끔.

※본란의 기고는 本紙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배너
배너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