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검색

구독하기 2025.07.04. (금)

조세정책에서 효율성, 형평성, 그리고 정의

김유찬 교수(홍익대)

 정의와 공정에 대한 외면의 시간이 우리 사회에서 충분히 지속됐나 보다. 이 정부가 친서민정책과 공정사회를 지향하고, 차기주자인 박근혜씨도 복지를 앞으로 내세울 정책의 핵심으로 준비한다고 한다. 중간투표자(Medium Voter) 이론으로는 당연하게 여겨야 할 일이지만 반년전만 해도 사실 예상하지 못했다.
 조세정책에서 효율성(Efficiency)과 형평성(Equity)은 대비되는 개념이다. 그러나 정의란 개념은 효율과 형평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보인다. '정의란 무엇인가?' 라는 저서로 주목받게 된 마이클 샌델 교수 이전에 조세정책에 적용될 수 있는 정의에 관한 체계적인 이론을 제시한 사람은 정의론(A Theory of Justice, 1971)의 저자인 존 롤스(John Rawls)였다.
 그는 사회계약론적인 입장에서 조세정책을 볼 때, 즉 입법기관의 구성원들이 최적의 조세제도에 대해 결정할 때, 두 가지 차원을 구별해야 한다고 했다.
 한 가지 차원은 그들은 납세자들이 개별조세를 전가시키는 방법과 초과부담 등에 대해 광범위한 정보를 소유하고 현실세계의 경제구조에 대해 잘 알고 있으나 그들은 이 현실세계에서 본인이 어떠한 위치에 처하게 되는지에 대하여는 전혀 모른다는 것이다. 그들은 '무지의 장막'(Veil of Ignorance) 안에서 결정한다(Ex ante Level).  
 다른 차원은 이 불확실의 장막이 사라지고 모든 구성원은 현실사회에서 자신의 위치(예를 들어 큰 자산의 상속자, 무주택자, 프로급 운동선수, 장애자 등)를 가진다.  스스로 결정하는 세법에 의거해 자신이 어떤 세금을 내거나 보조금을 받게되리라는 점을 의식하면서 조세제도를 판단한다(Ex post Level).
 롤스는 사회계약론적 관점에서 볼 때 개인들이 Ex ante Level에서 결정하는 조세제도가 정의로운 것이라고 봤다.
 당신이 가난해질런지 혹은 부자가 될런지 (혹은 미혼모가 될지, 가정을 이룰지, 비정규직 근로자가 될지, 자영업자가 될는지) 모르는 상태에서라도 당신이 기꺼이 선택하게 되는 조세제도가 있다면 그것이 정의로운 것이다 !
 입법기관 구성원들의 위험성향이 중립적이면 그들은 인두세(Head Tax)를 선택할 것이라는 논리적 추론이 가능하다. 왜냐하면 그들은 경제학 교과서에서 인두세가 초과부담을 야기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배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경우 위험성향이 중립적이라는 가정은 극단적이고 매우 비현실적이다. 아마도 적은 금액을 거는 복권 등의 경우 사람들은 위험중립적 혹은 위험선호적 경향을 보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생존과 관련된 경우에는 모든 사람은 우선 유전적으로 위험기피적이다. 따라서 입법기관의 구성원들은 그것이 비효율적인 제도라는 것을 알면서도, Ex ante Level 에서는 재분배모델을 선택한다. 그들은 이러한 조세제도의 보험적 성격을 파악하고 있으므로. 
 이런 방향으로의 정의 개념으로 롤스는 또 차등의 원칙(Difference Principle)을 제시했다. 최빈자의 최대행복 원리(Maximin Principle)로 불리는 이 원칙은 사회에서 제일 경제적으로 열악한 자의 경제적 상황을 가장 높게 만들어 주는 조세(부조)제도(Tax-Transfer-System)가 가장 정의로운 제도라는 것이다.
 이러한 제도의 실현은 사람들이 종종 잘못 이해하는 바와 같이, 소득분배를 완전하게 실현해 세후소득을 동등하게 하는 조세제도를 의미하는 것은 전혀 아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분배 상황에서는 사회에서 근로의욕과 소득은 사라지고 결과적으로 부자뿐 아니라 최빈자의 소득도 같이 사라지게 되기 때문이다.
 이 차등의 원칙의 핵심 포인트는 사회에서 소득의 편차는 그 편차의 존재가 최빈자의 소득에 긍정적으로 기여하는 정도까지만 인내하는 것이 옳다는 것이다. 
 위험중립성의 가정도 비현실적이지만 완전한 위험기피적 태도도 비현실적인 가정이라고 볼 수 있다. 그 중간 어디쯤에 진실(혹은 현실)이 존재한다면? 사람들은 효율성에서 큰 차이가 있으면 최빈자의 상황이 조금 더 나빠지는 것을 수용할 수도 있지 않을까? 이런 방향으로의 롤스의 이론에 대한 비판 및 보완도 해봄직하다.
 샌델 교수는 롤스의 이론에 대해 높이 평가하면서도 그 입장이 자유주의적 기초위에 서 있음에 대해 비판하고 공동체주의적 입장을 제시했다.
 샌델 교수가 (롤스를 인용해) "재능도 행운"이라고 한 것에 주목한다. 생각해 보면 시장경제와 경쟁사회에서 우리가 당연시하는, 성공한 사람(Winner)에 대한 보상의 원리의 근간을 흔드는 사고이다.
 시장이 인정하는 업적에 비례해 보상이 주어지는 시스템을 이상적이라고 보는 경쟁사회에서 이 업적을 만들어 내는 개인의 재능을 행운이라고 함은 이 재능을 스스로 쌓은 것이 아니라 계급사회에서의 신분, 부자의 상속받은 재산처럼 외부에서 받은 도움(유전적인, 그리고 사회적인)으로 파악하는 것이다. 따라서 재능(지적인 능력, 도덕성, 인내력, 무던한 성격, 좋은 체력 등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생각하자)에 기인한 시장에서의 보상이 해당 개인에게 귀속되는 것의 도덕적 정당성이 훼손된다.            
 이렇게 보면 모든 (업적이 뛰어난) 개인도 공동체에 의존하는, 공동체에서 상속받고 교육받은 한 평범한 구성원에 지나지 않음을 인정하게 된다. 공동체를 인정하고, 재능도 행운임을 인정하면 롤스가 왜 최빈자의 최대행복원리를 정의의 원칙이라고 하는지 자연스럽게 설명이 된다.
 롤스의 정의론은 시장경제 내에서 소득의 격차 그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그 격차가 최빈자의 소득에 긍정적으로 기여하는 정도까지만 도덕적 정당성을 가진다는 것이다. 소득의 격차는 바로 그 격차의 존재로 인해 사회 전체의 생산력 수준이 증가해 최빈자의 생활수준조차도 상대적으로 높아지는데 기여해야 하며 그렇지 않다면 100%의 한계세율로 과세돼야 하는 것이다.  
 ※본면의 외부기고는 本紙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배너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