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검색

구독하기 2025.07.02. (수)

법인세 개혁의 새로운 대안

곽태원 교수(서강대)

 

 법인세가 문제투성이의 세금이라는 것은 경제이론을 웬만큼 공부한 사람은 너무 잘 아는 사실이다.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들을 많은 학자들이 논의하고 그러한 생각들을 정리해서 정식 개편대안으로 제안했던 것이 1978년에 발표된 영국의 Meade 위원회 보고서였다. 이 제안의 내용은 캐시플로우 법인세(cash flow corporate tax)로 잘 알려져 있는데, 요컨대 당기순이익을 과세베이스로 하고 있는 전통적인 법인세를 순수한 경제적 지대(economic rent)를 과세베이스로 하는 세금으로 전환하자는 것이다. 이 보고서는 현금흐름을 통해서 구체적으로 경제적 지대를 계산하는 몇가지 방법들을 제시했기 때문에 '캐시플로우 법인세'라는 이름을 갖게 된 것이다. 이 세금은 세금을 연구하는 모든 사람들이 흠모하는 소위 '럼섬세'이다. 이 세금은 투자 행위를 왜곡하지 않고 골치 아픈 감가상각의 문제를 뛰어 넘게 하며 재원조달 행위를 왜곡 시키지 않는다.

 

 그런데 제안된 지 30년이 넘도록 이렇게 좋은 제도는 현실 정책의 관심을 많이 끌지는 못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세월이 흐르는 동안 세상은 많이 바뀌어서 Meade 보고서 당시에는 걱정하지 않아도 되던 문제들이 더 심각한 문제로 부각되고 있는 상황이 됐다. 기업(자본)이 국경을 마음대로 넘나들고 세율이 낮은 지역을 찾아 기업의 이윤이 은밀하게 몰려다니는 세상이 된 것이다. 캐시플로우 법인세는 지대(경제적 이윤)를 얻는 기업에 전적으로 귀착되고 다른 주체에게로 전혀 전가될 수 없기 때문에 그 기업이 그러한 세금에 대해서 아무런 대응도 할 수 없고 그래서 자원의 배분을 왜곡시키지 않는다. 그런데 그 지대라는 것이 지리적으로 고정된 것(예를 들면 특별한 자연 자원 등에서 발생하는 지대)이 아니라면 세율에 따라 돌아다닐 수 있는 지대(mobile rent)가 되기 때문에 지대에 대한 조세가 더이상 럼섬세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기업이 얻는 대부분의 지대는 기업의 브랜드나 기술 혹은 특별한 경영노하우 등에서 도출되는 이른바 독점력과 관계가 있고 이러한 지대는 기업에 고정된 것이지, 지역에 고정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기업과 함께 얼마든지 옮겨 다닐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본이 국가간에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경제에서 캐시플로우 법인세의 중립성은 크게 훼손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러한 배경에서 Meade 보고서 출간 30주년을 기념하면서 조세 전반의 근본적인 개혁을 위한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기 위한 연구가 영국의 재정학계의 대 석학이고 노벨상 수상자인 Mirrlees경을 위원장으로 하는 위원회에서 추진됐다. 그 연구 결과의 전반부가 금년에 발표됐는데 이 보고서에서 법인세의 디자인에 관한 연구를 책임지고 있는 Berkeley 대의 Auerbach 교수 등이 제안한 개편대안이 눈길을 끈다.

 

 그들은 위에서 나열했던 문제들을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소위 소비지 과세형의 캐시플로우 법인세(destination based cash flow tax)라는 것을 내놓고 있다. 법인세를 말하는데 소비지 기준으로 과세한다는 것이 상당히 생소하다. 그러나 이 세금의 과세베이스를 보면 이 이름이 이해가 될 것이다. 기업의 국내 매출액에서 국내 매입액을 공제하고 거기서 다시 노동비용을 공제한 것이 기본적인 베이스가 되며 수출은 과세베이스에 포함되지 않고 수입은 과세 베이스에 포함된다. 요컨대 우리의 부가가치세 베이스에서 노동비용을 공제한 것과 같아진다. 이것은 소비세라고 해도 할 말이 없는 세금이다. 국내에서 발생한 비노동 소득 중 국내에서 소비된 부분에만 과세되는 세금이라고 할 수도 있다. 이 세금은 몇가지 중요한 장점을 가지고 있다. 우선 지대에 대한 조세라는 특성을 갖는다. 순수한 지대 중 국내 거주자에 의해서 국내에서 소비된 부분에 대한 과세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세금은 투자행태의 왜곡을 가져오지 않는다. 나아가서 기업의 입지에 영향을 주지 않으며 이윤의 이전을 야기하지 않는다. 이익 발생의 원천지가 어디인지, 기업의 주소지가 어디인지 등이 세금에 영향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기업의 제품이 국내에서 소비되지 않는다면 그 기업이 국내에서 그 제품을 생산하더라도 이 세금과 무관하다. 반대로 외국에서 생산활동을 하고 있는 기업이라도 제품을 국내에서 소비하게 하면 그 부분에 대해서는 과세대상이 된다. 물론 이 세금은 이전가격문제도 발생시키지 않는다.

 

 다만 이러한 세제로 이행할 때 생기는 문제들이 있다. 환율의 변동과 이에 따른 외화 자산 혹은 부채의 평가손익이 발생할 수 있으며 이러한 현상이 자본시장이나 외환시장에 일시적인 교란을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제도 도입후 세율이 변경될 때마다 비슷한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또 한 나라에서만 이 제도를 선택하고 다른 나라들은 종래의 제도를 고수할 경우에도 문제들이 발생할 수 있다.

 

 이들의 제안이 완전하다거나 혹은 당장 우리나라에서 채택할 만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러한 논의에서 조세제도의 중장기적 발전방향을 생각해 볼 수 있다. 특히 이른바 근본적 세제개혁안의 대표적인 모델이라고 할 수 있는 flat tax나 X-tax 같은 아이디어도 매우 유사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본면의 외부기고는 本紙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배너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