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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하기 2025.06.27. (금)

과세관청의 권한 행사가 적정수준을 넘어서…

安 昌 湳 교수(강남대)

우리나라의 경제발전 역사를 뒤돌아보면, 과세관청의 헌신적인 노력의 결과로 인해 국가재정 건전성이 확보됐음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특히 종합소득세제, 부가가치세제 및  종합부동산세제의 도입과 운영에 있어서, 세무공무원의 희생과 노력은 높게 평가받아 마땅하다고 본다. 그와 같은 재정의 건전성이 뒷받침됐기에, 미증유(未曾有)의 IMF 사태를 조기에 종결시킬 수 있는 여력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 시민의 과세관청에 대한 인식과 평가가 그리 후하지 않으며, 세무서 건물 앞을 지나칠 때 우체국과는 달리 어쩐지 '되돌아가거나' 또는 '피하고 싶은' 맘이 드는 것은 어떤 이유일까.
 세금에 대한 안좋은 인식 중의 하나는 이른바 춘향전이나 유종원의 포사자설(捕蛇者說)에 언급되는 '가렴주구(苛斂誅求)'일 것이다. 오죽했으면 공자도 '가혹한 정치(도를 넘은 세금징수)가 호랑이보다 무섭다(苛政猛於虎)'라고 했을까. 새파랗게 젊은 김일성이 '세금을 없앤다'고 하니까 북한주민이 그를 지도자로 선택한 것을 봐도, 정치적으로 세금은 아주 중요한 쟁점 중의 하나이다. 과세관청이 이미지 개선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여건은 나아지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현대 과세행정에서는 춘향전 시대의 일은 벌어질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 시민이 과세관청에 주는 시선이 그리 '곱지' 않은 것은 과세관청의 권한행사가 자의이든 타의이든 세금 징수를 위한 적정한 수준을 넘어서 '남용'돼 왔다는 인식이 팽배하기 때문이다.
 그 구체적인 사례 중의 하나는 '법 및 규정에 있으니까 그대로 한다'는 것이라고 본다. 납세자의 전후사정은 들어보려고 하지 않고 그저 법 규정에 따라서만 일을 처리한다고 하면, 납세자는 '사람'과 '기계'의 차이를 발견할 수 없을 것이다. 세무조사시 법 규정을 기계적으로 적용해 '일단 과세를 할 터이니 억울한 사정은 이의신청 등을 통해서 구제를 받으라'하는 답변을 듣곤 한다는 소리가 아직도 들리고 있다. 물론 법 규정을 악용하는 악의의 납세자에게 까지 '귀를 기울여 달라'는 얘기는 아니다. 선의의 납세자에게는 보다 열린 맘으로 다가가 줘야만, 과세관청에 따뜻한 시선이 가지 않겠는가.
 필자가 프랑스 유학시절 재산세가 200여만원 가까이 나왔었다. 당시 4인 가족이 유학을 하고 있었기에 방이 3개인 아파트에 살고 있었는데, 그만한 넓이에 살면 그 정도는 납부해야 한다는 것이다. 법규가 그렇다는 것이다(법규는 임대든 소유든 불문하고 주택 가치와 넓이에 따라 세액이 결정된다). 그래서 관할 세무서에 찾아가서 나는 유학생이고 돈은 정부로부터 송금받고 있으며 가족 수가 많아서 하는 수 없이 넓은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고, 그리고 그 세금 낼 돈이 없다고 하니, 담당세무공무원이 10분의 1 수준으로 낮추어 준 경우가 있었다. 내 하소연에 귀를 기울여 준 그 세무공무원이 한없이 '멋져' 보였다.
 최근 과세관청이 발표한 '장기 성실신고 중소기업에 대한 세무조사 면제' 발언도, 그 내용에 찬성을 하지만, 과세관청의 권한 남용의 시각에서 보면 뒷맛은 남는다. 잠깐 살펴보자. 성실하게 신고했다면 세무조사는 당연하게 면제돼야 하는 것 아닌가? 그리고 아무리 성실신고를 했다고 해도 조세포탈의 혐의가 발견된다면 세무조사를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세금부담은 국세청장이 누구이든 또는 무슨 말을 했던지 간에 정당하게 부과돼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닌가? 이와 같은 발언이 환영을 받는 것은 그간 과세권(세무조사권) 행사가 상식 수준을 넘어서, 즉 법 규정에 따라 제대로 시행된 것이 아니라, 운용권자의 '뜻과 목적'에 따라 '남용'된 결과가 아닌가 하는 점이다.
 다른 한편으로 더 적극적으로 과세관청의 권한을 행사할 수는 없는 것일까? 세무조사 절차 중 과세관청세무조사 사전통지가 10일 전이라고 해도 납세자가 미리 준비를 하게 1달전쯤 통보를 해주면 안되는가? 딱 10일에 맞춰서 해줄 필요가 있는가? 추징이 없을 줄 뻔히 알면서도 '일단 금융거래조회'를 해서 납세자로 하여금 불안하게 할 이유가 무엇인가?  외국은 세무조사 결과 추징세액이 납세자가 감내할 수준을 벗어난 경우, 프랑스는 세무조사를 한 세무서장이 국가를 상대로 해당 세액을 감해줘야 한다는 소송을 제기하며, 미국의 경우에는 위원회를 통해서 감내할 수준으로 낮춰주고 있다. 이게 다 과세권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사례가 아닌가. 우리는 어떠한가. 기업이 부도가 나든지 말든지 추징하면 그만이라고 한다면 너무 심한 표현인가.
 과세관청이 지난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으려고 무진 애를 쓰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일이다. 국세기본법에 세무조사가 '다른 목적'으로 사용되지 않는다고도 하고 있지만, 그걸 액면 그대로 믿는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다. 일반 시민의 과세관청에 대한 신뢰와 믿음이 높이지기까지는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이는 사도 바울이 말한 대로 '천사의 말을 하더라도 내게 사랑이 없다면 나는 울리는 종과 시끄러운 꽹과리와 다를 게 없다(고린도전서 13장 1절)'고 고백한 것처럼, 과세관청이 성실한 중소기업에 대해 5년간 세무조사를 면제해 준다고 해도, 아니 그 이상의 지원을 해도, 정작 그들의 고충을 품어줄 수 있는 '따뜻한 마음'이 없다면 납세자의 차가운 시선을 돌리는 것은 어려운 일일 것이다.
 세상이 아무리 혼탁하고 어려워도 악한 사람보다는 성실한 사람이 더 많은 법이다. 하여, 과세관청은 힘없고 성실한 납세자에게는 법규정 타령에서 벗어나야 하고 그 대신 납세자의 권리를 남용하는 '뻔질'한 납세자에게는 보다 엄격하게 법규를 적용해야 한다. 그래야만 조세의 공평부담이 이뤄지기 때문이고 권한남용의 시비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본면의 외부기고는 本紙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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