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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하기 2025.06.30. (월)

종량세율의 물가연동은 증세인가?

세금 부과방식을 기준으로 세율체계를 분류하면 종가세와 종량세로 구분할 수 있다. 종가세란 과세대상의 가격을 기준으로 일정 비율을 설정해 과세하는 체계를 말한다. 종량세란 무게, 수량, 부피, 농도, 규모 등을 기준으로 일정금액을 단위당 세액으로 설정해 과세하는 체계를 지칭한다.

 

종가세와 종량세는 세액을 결정하는 방식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장단점과 기능·역할 역시 완전히 상이하다. 먼저 두 가지 세율체계의 장단점을 비교해 보자.

 

종가세는 가격에 비례적으로 과세하기 때문에 과세대상의 가격이 다르더라도 각 과세대상의 가격상 대비가 변화하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 가격이 변동하더라도 세금부담액 역시 동일한 비율로 변하기 때문에 실효세부담률이 일정하게 유지된다. 가격의 고하를 막론하고 과세 전·후의 상대가격 체계가 유지된다. 물가변동에도 불구하고 실효세부담률이 보장돼 세부담의 과·불급 현상이 발생하지 않는다. 그럼으로써 국민경제의 자원배분을 왜곡하지 않는다는 장점을 지닌다.

 

반면에 종가세는 과세기준이 가격 하나로만 결정되기 때문에 덤핑행위에 취약하다. '시장의 실패' 상황하에서 외부효과가 발생할 때 사회적 비용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해 자원배분의 효율성이 저해되는 결과도 초래된다. 이를테면, 어떤 사업자나 국제적 거대기업이 시장 독점 등을 목적으로 초저가로 시장을 불공정하게 공략하고자 하는 경우, 세부담이 가격에 비례하는 종가세 체계하에서는 이를 방지할 수 있는 장치가 여의치 않다. 공정거래위원회 등에서 불공정거래행위에 대한 심사와 판결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채널이 있다. 그렇지만 그 과정에서 상당한 시일이 소요되므로 분쟁해결 전에 중소업체가 도산하는 등 부작용이 클 수 있다. 이 경우 원상회복은 매우 어렵다. 이는 종가세 세율체계가 즉각적인 방어수단으로 작용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밖에 종가세 체계는 외부비용이 발생할 때 이를 적절히 반영하지 못할 수도 있다. 예를 들면 화석연료를 소비하면 환경오염물질이 배출된다. 환경비용이 반드시 제품 가격과 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가격이 오르거나 내리더라도 연소시에 발생하는 비용은 가격과 무관하다. 따라서 세금으로 환경비용을 환수하고자 할 때 종가세 체계로는 방법이 마땅치 않다. 결과적으로 자원 배분의 효율성이 저해되는 단점을 지닌다.

 

종량세의 경우에는 환경비용을 단위당(또는 리터당) 세율로 책정하는 경우 외부비용으로 인해 왜곡된 자원배분의 효율성을 교정할 수 있다는 장점을 지닌다. 아울러 주민세균등할 등에서 보듯이 경제활동 여부와 관계없이 종량세의 세부담 수준은 일정하게 결정되므로 경제활동 의사과정을 왜곡하지 않는 것 역시 장점으로 꼽힌다.

 

반면에 종량세는 세금 부담능력을 감안하지 않고 무차별하게 동일액수의 세부담을 지운다. 따라서 저소득층의 세부담이 상대적으로 과중해지면서 세부담의 역진성이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아울러 저가제품에 대한 세부담이 상대적으로 과중해짐으로써 고가제품이 상대적으로 더 유리한 방향으로 자원배분이 편중되는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이상과 같이 종가세와 종량세 과세체계는 장단점과 기능·역할이 다양하기 때문에 과세대상별 과세목적에 따라 적정체계를 선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통상적으로는 상대가격 체계를 왜곡하지 않는 종가세 세율체계가 많이 선택된다. 그러나 외부효과가 존재하는 경우에는 종량세 체계를 선택하는 경우도 흔하다. 우리나라의 담배 관련 소비세와 부담금, 석유류 관련 소비세가 그러하다. 대부분의 서구선진국에서도 이들 품목에 대해 종량세 체계로 과세하고 있다.

 

서구 선진국에서는 담배 등에 대한 종량세율을 매년 물가(가격)수준에 연동해 조정하는 체계를 가지고 있다. 명시적으로 물가연동제라는 용어나 제도를 별도로 갖추고 있지는 않지만 과세제도 안에 사실상 물가연동이 이뤄지도록 제도화돼 있다. 석유류, 주류의 경우에도 많은 국가에서 사실상의 물가연동제를 시행하고 있다. 반면에 우리나라에서는 물가연동제를 시행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 큰 차이점이다.

 

물가연동이 되지 않는 종량세 체계는 우리나라처럼 매년 3∼4% 정도 물가상승이 이뤄지는 경우, 매년 그만큼 실질세율을 감세해 주는 효과를 나타낸다. 장기적으로는 과세 약화를 통해 소비 증가 및 외부효과 교정기능 약화라는 부작용을 초래한다. 2005년초 건강증진기금 부담료율 인상후 현재까지 물가연동이 이뤄지지 않아 실효과세율이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2005∼2008년 사이에 담배소비가 41억갑에서 54억갑으로 32.6% 증가한 것도 현행의 종량세 체계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

 

기왕에 외부효과에 주목해 담배와 석유류 등에 종량세 체계의 소비세를 과세한다면 과세의 실효성 보전을 위해 최소한의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 다시 말해, 흡연비용·환경비용 등의 외부효과를 중화하기 위해 과세의 실효성 보전이 긴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종량세 구조의 개별소비세에 물가연동제를 도입·시행하는 것이 시급한 것으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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