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우리나라 조선 초기의 가장 유명한 화가인 안견(安堅)의 대표작인 몽유도원도(夢遊桃園圖)가 일본에서 귀국해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잠깐 모습을 보이는 특별전시회가 있어 화제가 됐다.
전시 마지막 날에는 30초간의 감상을 위해 많은 사람들이 3∼6시간을 기다리는 등 밤 12시가 되어서야 박물관 문을 닫을 정도였다고 한다.
이 몽유도원도는 일찍이 알 수 없는 경로(밝혀지지 않고 있음)로 일본으로 건너가서 천리대(天理大) 중앙도서관에 꽁꽁 묶여(일본의 국보) 평상시 보기가 힘들었던 것이다.
'96년 한국박물관 개관 100주년 이후 13년만에 어려운 걸음을 했으니(천리대 측은 이번이 마지막 그리고 10일간 전시라는 조건을 달음) 언제 또 이 명화를 보게 될지 모르게 된 애호가들이 이산가족 만나듯 했던 것이다.
원래 화공(畵工)등 중인(中人)이하의 사람들은 출생·사망년도가 분명치 않다. 안견의 경우도 우리 역사의 가장 위대한 왕이신 세종대왕(1397년 출생, 재위 1418∼1450)시대에 그 자신이 시화(詩畵)에 두루 능했던 세종의 셋째 아들 안평대군(安平大君 1418∼1453)의 적극적인 후원으로 활약하면서 이 '몽유도원도'를 완성(1447년 세종 29년)했다니 그 생존시기를 미뤄 짐작할 뿐이다.
안평대군이 꿈에 봤다는 이상향(理想鄕, 파라다이스)의 모습을 산수화(山水畵 가로106.5㎝ 세로 38.7㎝)의 우측부에 담아 좌측의 현실의 세계와 대비하면서, 그때까지의 화법(단순 평면처리)과 달리 부감법(俯瞰法,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는) 방식으로 그려서 산수화의 놀랍고 새로운 지평(地平)을 열었다고 평가받고 있다.
이 비슷한 시기(14∼16세기)에 서양(그 역사의 중심인 로마의 후예 이태리 등)에서는 한참 르네상스(Renaissance:문학, 미술 등에서 인간 중심적 문예부흥 思潮)가 시작돼 너무나 유명한 레오나르도 다빈치(1452∼1519), 미켈란젤로(1475∼1564), 라파엘로(1483∼1520)등이 활약하던 시대였다.
필자는 작년 어떤 강연회에서 강사가 일본에 체류하는 동안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수태고지(受胎告知)라는 작품을 특별전시하는 것을 보고온 경험을 이야기했던 것이 생각났다.
일반적으로 다빈치의 작품으로 최후의 만찬, 모나리자 등은 잘 알고 있는데 그에 비해'수태고지'는 생소하다.
그 시대에는 성경의 중요한 사건 등이 회화 등 예술품의 주된 소재였다.
수태고지는 하느(나)님이 보낸 가브리엘 대천사(여성의 모습으로)가 성처녀인 마리아 (성모)에게 그리스도의 잉태(孕胎)를 알리는 장면이다.
이 내용으로 여러 화가들이 그림을 그렸는데 다빈치가 원근법(遠近法,Perspective)을 본격적으로 적용해서 이 작품이 유명하다고 한다.
그 강사는 1시간 이상 줄을 서서 작품을 감상했으나 그림에서 두 여인의 손들이 기형적이라든가 몸의 모양이 부자연스러워 대가의 작품이라지만 조금 이상하다는 느낌을 가졌다고 한다.
하지만 나중에 그 그림을 정면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우측 사각(斜角)으로 봐야 한다는 말을 듣고, 한시간을 기다려 다시 보니 파노라마처럼 새로운 그림이 떠오르는 것을 보고 큰 감동을 받았다는 것이다.
원래 이 그림이 걸릴 장소가 큰 교회 제단의 기둥 뒷편(교회측의 주문)이어서 이런 새로운 기법(이때까지는 생소한) 원근법이 적용돼 새로운 근대미술의 신기원(新紀元)이 시작됐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큰 전쟁이 없는 200년간(1392년 조선 건국부터 1592년 임진왜란)에 세조, 세종같은 훌륭한 군주들이 한글의 창제 등 눈부신 문화의 창달로 유럽의 르네상스에 필적했으니 그대로 발전해 왔다면 대단한 역사가!
이와 같은 르네상스 시기에 우리나라에서도 '몽유도원도'같은 작품이 나타나 기존의 틀에 박힌 방식을 떠나 세상의 미래를 설계하고 전체를 한 눈에 보는 부감 또는 조감(鳥瞰)의 방식으로 진전을 이룬 것은 원근법에 나타난 르네상스의 시대정신, 하느님(교회, 사제)중심에서 인간 중심으로의 전환과 비교될 수 있지 않을까!.
나(人間)라는 주체가 사물(자연)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보는 시각(觀點)의 변화로서 동서양이 다른 바탕위에서 나름대로 부감법,원근법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서양은 르네상스(문예부흥)으로부터 암흑의 중세시대를 벗어나 18세기의 산업혁명을 거쳐 산업자본주의로, 그리고 영국, 프랑스 등을 중심으로 의회 민주주의가 확립돼 현대의 민주주의로 발전해 왔다고 한다.
미술 등에서 인간중심의 관점의 변화가 민주주의, 자본주의의 이전까지 연결돼 온 것이다.
발빠른 근대화의 시기를 놓쳤던 동양의 국가들, 그 중의 우리나라의 경우도 모든 사물을 보는 관점의 차이가 자유 민주주의의 수준을 가름한다는 것을 실감해 왔으며 이제 더욱 그 단계가 높아져야 한다.
그것은 정부나 정치인(공직자)들의 시각(행정수요 등의 공급자)에서 보던 것을 국민(수요자)의 입장(관점)에서 봐야 한다는 것으로서 동서고금의 예술작품을 보는 관점의 전환이 주는 교훈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