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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하기 2025.05.25. (일)

[기고]공정위-금감위 간 업무협약 체결의 의의

-공정위 박상용 경쟁정책본부장-

공정위와 금감위가 금융기관 조사와 관련 동시조사 또는 동일사안에 대해 중복제재를 하지 않는 이른 바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공정위는 이에 대해 이 번 협약은 기업의 부담을 경감하면서 소비자 보호에는 소홀하지 않도록 했다고 강조했다.(다음은 공정위 박상용 경쟁정책본부장이 밝힌 기고문의 주요내용이다)

 

 

 

지난 11월 27일 공정거래위원회와 금융감독위원회가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앞으로 양 기관은 금융기관을 동시에 조사하거나 동일 사안에 대해 중복제재하지 않도록 사전에 협의하는 등 서로 협조하기로 했다. 이번 업무협약은 기업의 부담을 경감하면서 소비자 보호에는 소홀하지 않도록 두 기관이 협력방안을 마련한 좋은 사례이다.

그런데 이에 대해 일부에서 공정위가 금융 쪽으로 업무영역을 확장할 근거를 마련했고, 금감위는 행정지도 등 기존의 규제권한을 보장받은 셈이라는 비판이 있다. 또한 금융기관에 대한 규제기관을 단일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경제질서의 기본법인 공정거래법의 목적과 적용범위, 규제당국과 경쟁당국의 역할, 그동안의 국내·외적인 동향 등에 대한 이해 부족이나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 이유를 살펴보면서 이번 업무협약 체결의 의의를 재음미해 보기로 한다.

 

공정거래법은 모든 산업에 적용되는 시장경제 질서의 기본법

공정거래법은 모든 산업에 일반적으로 적용되는 시장경제의 기능을 유지하기 위한 법이고, 실제 금융업의 경우도 경쟁제한적 행위가 자주 발생하고 있어 이를 규제하기 위하여 공정거래법을 적용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금융감독당국은 금융시장의 건전성, 안전성 확보 등 금융산업의 건전한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금융관련 법령을 운용하고 있다. 이러한 사정으로 양 기관이 금융회사의 행위에 대해 중복적으로 규제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실제 중복규제가 발생할 가능성은 그다지 크지 않다.

첫째, 경쟁제한적인 기업결합(M&A)과 카르텔에 대하여는 공정위가 전속적으로 공정거래법에 따라 규율하고 있어 중복규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없다. 다만, 금융감독당국의 행정지도가 개입된 금융회사의 공동행위와 관련하여 공정거래법 위반여부에 대한 논란이 있을 수 있으나, 대법원 판례를 계기로 위법성 판단기준이 명확히 마련되었다.

금융회사들이 개별적으로 행정지도에 따른 경우에는 카르텔이 성립하지 않지만, 금융회사간 별도의 합의가 있는 경우에는 카르텔이 성립한다. 또한, 법적근거가 있는 행정지도에 따른 금융회사간 공동행위는 공정거래법에 위반되지 않는다. 다만, 이 경우 행정지도가 작용법상 근거가 있는 경우 위법하지 않으나, 조직법상 근거가 있는 경우에는 행정지도의 구체적 내용과 방식에 대한 종합적 판단이 필요하다. 반면, 법적 근거가 없는 행정지도에 따른 금융회사간 공동행위는 공정거래법에 위반된다.

둘째, 시장지배적 지위남용행위 역시 공정위가 관련시장 획정, 시장지배적 지위 인정 여부의 판단 등에 대해 전속적으로 규율하고 있어 중복규제 가능성은 거의 없다. 다만, 구체적인 행위가 지위남용행위인지 여부의 판단에 대해서는 금융산업의 특수성을 고려하여 금융감독당국의 의견을 참고하여 처리할 필요는 있다.

반면, 금융회사와 금융소비자간에 발생하는 일부 불공정거래 유형 및 표시광고의 경우 제한된 범위 내에서 중복규제가 발생할 수 있다. 특히, 경쟁당국은 경쟁질서와 소비자권익 보호관점을 강조하는 반면, 금융감독당국은 금융회사의 건전성 및 금융산업의 육성도 함께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양 기관간에 긴밀한 협의 및 논의가 필요하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번 MOU는 이 분야에서의 중복조사 및 중복제재를 방지함으로써 금융회사의 불필요한 부담을 해소하기 위해 체결된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중복규제 문제를 MOU 체결로 해결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이 문제를 보다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과제가 선결되어야 한다.

우선, 기존의 규제산업에 대한 불합리한 규제를 과감히 철폐하고 사업자간 경쟁을 촉진시켜야 한다. 그동안 주요 선진국들은 효율성 제고와 소비자 후생 증대를 위해 과감한 규제개혁과 경쟁촉진 시책을 추진해왔다. 우리나라도 지난 ‘90년대 중반이후 전통적인 규제산업으로 인식되던 전기, 통신, 금융, 방송 등의 분야에서 민영화가 이루어지고 경쟁체제가 도입되었다.

경쟁당국과 규제당국의 역할 분담이 필요

다음으로, 다음과 같은 점을 감안하여 규제당국과 경쟁당국의 역할을 분담하고 이를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

첫째, 경쟁법 집행에 있어서는 경쟁당국의 전문성이 우선되어야 한다. 이 문제는 미국이나 OECD 등에서도 자주 논의되는데, 특히 금년 4월 미국 ‘경쟁법현대화위원회(Antitrust Modernization Commission)’가 대통령과 의회에 제출한 보고서는 규제산업에서 경쟁법 집행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과 경쟁법 집행은 전문 경쟁당국이 맡아야 한다는 것이 주요 핵심이다.

이 보고서의 결론은 그동안 산업별 규제기관에 의한 경쟁법 집행의 효율성에 대한 의문과 반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므로 경쟁법 집행은 해당산업에 특유한 기술적 전문성보다 산업 전반에 걸친 경제분석 능력과 사법기관에 준하는 법해석 및 적용 능력이 더 요구된다 할 것이다.

둘째, 사업의 인허가, 산업의 육성 등 사전규제를 담당하는 기관과 경쟁법을 집행하는 기관이 분리되어야 한다. 규제기관은 해당산업의 육성·발전에 정책의 무게중심을 두고 사업자의 입장을 중시하다보면 경쟁촉진과 소비자 보호에 소홀해질 개연성이 크다. 또한 규제당국이 경쟁법도 집행한다면 행정처분을 받은 사업자가 이의신청이나 소제기 등 불복절차를 적극 진행하기 어려울 것이다.

셋째, 경쟁법 집행에 있어 통일성과 형평성이 유지되어야 한다. 전기, 통신·방송, 금융 등 산업별로 경쟁법 집행기관을 달리할 경우 규제기관별로 금지 기준이나 유형이 달라 혼란을 초래할 것이다. 그리고 유사한 위반행위에 대해 제재의 종류나 수준이 달라져 형평성 문제도 제기될 것이다.

요약하면 사업의 인허가, 육성정책 추진 등 사전적·기술적 규제는 해당 규제당국이 맡고, 사후 규제인 경쟁법 집행은 경쟁당국이 주도하는 역할 분담이 필요하다. 이런 역할분담을 명확히 하면서 설혹 특정 규제당국이 경쟁법을 집행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면 그 특정 사안에 국한된 범위 내에서 공정거래법의 목적과 배치되지 않도록 집행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또한 역할분담과 함께 경쟁당국과 규제당국은 긴밀한 협력체제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앞으로 규제산업에서의 경쟁원리가 확산되면서 경쟁당국과 규제당국간의 중복규제 논란이 증대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공정위와 금감위의 MOU가 소기의 성과를 거두고 아울러 다른 분야에도 널리 확산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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