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화 관세사(전 여수세관 근무)

관세의 환급제도는 수출하는 물품의 원자재에 대하여 그 물품을 수입할 때 납부했던 관세를 돌려주는 제도로서 수출보조금의 성격을 갖고 있다. 우리나라의 관세 환급액을 분석해 보면 연간 약 3조 원가량이고, 그 절반이 정유사에서 받는 금액이다.
정유사에서 수입하는 원유는 초경질유인 콘덴세이트(Gas condensate라고도 한다), 경질유, 중질유 등으로 나눌 수 있다. 그것들을 수입하는 정유사에서는 그 세 가지 원료로 가솔린 등을 생산하여 국내에 판매하거나, 석유화학 공정의 원재료인 나프타를 생산하여 수출하거나, 국내 화학업체에 판매하는 과정을 거친다.
한편, 같은 원유일지라도 중동산 원유에는 3%의 관세가 부과되는 반면에, 인도네시아 등에서 수입하는 원유에는 FTA체결로 인하여 무관세 혜택을 받고 있다. 또한, 수출용 원재료에 대한 관세 등 환급에 관한 특례법(이하, ‘관세환급 특례법’이라고 칭한다)에서는 동일한 원재료로 인정되는 원유로 수출품을 생산할 경우, 수입 시에 무관세 품목일지라도 일정한 조건에 부합하는 경우에는 관세가 있는 물품에 대해 납부한 관세를 환급받을 수 있는 제도로 운영되고 있다.
예를 들어, 3%의 관세가 있는 가스 콘덴세이트와 무관세인 인도네시아산 중질유를 혼합 사용하여 나프타를 생산 후 수출할 경우, 그 나프타가 가스 콘덴세이트에서 나온 것인지 중질유에서 나온 것인지를 따지지 않고 관세환급을 해주고 있는데, 이를 대체사용 원재료에 대한 관세환급이라고 한다.
필자는 정유사에서 FTA로 인하여 원유에 대해 무관세를 받는 것도 혜택이고, 더하여 위 두 가지 물품을 동일 원재료로 보아 관세를 환급해 주는 제도 또한 특혜라고 보고 있다. 물론, 필자와 다른 의견을 갖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도 인지하고 있지만, 필자의 논지를 명확히 하기 위하여 두 원재료의 동일성에 관하여 살펴볼 필요가 있고, 관세 환급에 관한 특례법에서 동일한 원재료에 대한 법 규정 또한 세밀하게 다시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우선, ‘두 원재료는 동일성이 인정되는가?’에 관하여 살펴야 한다. (이하, 콘덴세이트 등 원유에 대한 설명과 그림은 한화토탈서비스 홈페이지에서 발췌한 내용이다).
콘덴세이트는 천연가스 채굴 시 부산물로 생산되는 휘발성 액체 탄화수소로, ‘초경질 원유’라고 불리기도 하며 온도와 압력에 따라 물질의 상태가 다르다. 고온·고압인 지하에서는 기체 상태지만 지상으로 올라오면 압력이 낮아져 액체 상태로 변한다. 대체로 투명하고 색이 없다는 점이 특징이다. 또한 가연성 액체로 분류돼 화학제품 운반선이 아닌 원유 유조선으로 운반된다. 업계 지침에 따르면 콘덴세이트는 증기 압력이 매우 높기에 운반 내내 가스 누출 모니터링 등의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원유를 분류하는 대표적인 기준으로는 미국석유협회(API)에서 만든 API 지수가 있다. API 지수란 원유의 비중을 물과 비교해 나타낸 것으로, 물보다 얼마나 가볍거나 무거운지를 알려주는데, API 지수가 높을수록, 즉 원유가 가벼울수록 휘발유와 경유 등 비싼 석유화학 제품을 많이 생산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31~35 이상이면 경질유, 즉 가벼운 원유로 본다.
콘덴세이트의 API 지수는 40~50도 이상이고 나프타 함량이 높아 정제 시 같은 양의 일반 원유보다 많은 나프타를 생산할 수 있다. 두바이유, 브렌트유, WTI 등 대표 원유에서 최대 20~30%의 나프타를 추출할 수 있다면 콘덴세이트에서는 최대 80%까지 가능해 수익성이 매우 높다.
<나프타 생산에 최적화된 콘덴세이트>
이 같은 사실로 보아도 콘덴세이트와 경질유 및 중질유는 동일한 원재료로 볼 수 없음이 명백하다고 할 것이다. 그렇다면 업계에서는 왜 대체제가 아닌 콘덴세이트와 중질유 혹은 경질유를 혼합하여 사용하게 된 것일까?
이는 오로지 콘덴세이트를 중질유 혹은 경질유와 혼합 사용하여 납사(나프타의 한글식 표현)의 생산량을 높이기 위한 것인데, 그럴 경우에는 중질유에서도 납사의 추출량이 30%에 상회하게 되는 기술적인 문제인 것이다. 즉, 동일 원재료라서 대체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석유화학의 기술 발전에 따라 두 원재료를 브랜딩(혼합)하여 사용하는 것인데 정유업계에서는 이를 동일성이 인정되는 대체 사용이라고 강변하고 있을 뿐인 것이다. 이 같은 사실은 과세 관청보다 업체에서 더욱 잘 알고 있으므로 업체에서 신의성실의 원칙을 내세울 근거가 없다.
관세환급과 관련하여서는 관세환급 특례법 제3조에 환급대상 원재료에 대하여 아래와 같은 규정이 있다.
제3조(환급대상 원재료) ① 관세등을 환급받을 수 있는 원재료(이하 “수출용원재료”라 한다)는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것으로 한다. 개정 2017. 12. 19. 1. 수출물품을 생산한 경우: 다음 각 목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소요량을 객관적으로 계산할 수 있는 것 가. 해당 수출물품에 물리적 또는 화학적으로 결합되는 물품 나. 해당 수출물품을 생산하는 공정에 투입되어 소모되는 물품. 다만, 수출물품 생산용 기계ㆍ기구 등의 작동 및 유지를 위한 물품 등 수출물품의 생산에 간접적으로 투입되어 소모되는 물품은 제외한다. 다. 해당 수출물품의 포장용품 2. 수입한 상태 그대로 수출한 경우: 해당 수출물품 ② 국내에서 생산된 원재료와 수입된 원재료가 동일한 질(質)과 특성을 갖고 있어 상호 대체 사용이 가능하여 수출물품의 생산과정에서 이를 구분하지 아니하고 사용되는 경우에는 수출용원재료가 사용된 것으로 본다. |
위 규정 2항이 업계에서 주장하는 내용인데, 앞서 설명하였듯이 콘덴세이트와 다른 원유들과는 이 규정 적용의 전제조건인 동일한 질과 특성을 갖고 있지도 않고, 상호 대체 사용한다는 주장 또한 전혀 사실이 아니다. 다만 생산과정에서 중질유 혹은 경질유에서 더 많은 나프타를 생산하기 위하여 브랜딩(혼합)하는 정도에 그치고 있을 뿐이다. 즉, 콘덴세이트는 용제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을 뿐인 것이다.
이 같은 사실을 근거로, 정유업체에서는 콘덴세이트에 관하여는 독자적인 소요량을 계산하여 관세를 환급받아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주장이다. 이는 석유화학 공정에서 화학반응에 관여하는 고가의 귀금속 촉매에 대하여 독립적으로 소요량을 계산하여 환급받은 것과 같은 이치인 것이다.
만약, 두 가지 혹은 세 가지 원유를 혼합하여 사용할 경우를 인정해야 하는 특별한 사정이 있다면 해당 물품의 관세율의 평균값을 환급되는 관세의 세율로 상정하여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입장이기도 한데 이에 대하여 규정하는 것도 전혀 어렵지 않다. 현재는 사용하고 있지 않는 제도이지만 관세환급 특례법 제11조의 ‘평균세액증명서’제도를 부활하여 사용하면 지금과 같이 정유사에 특혜에 특혜를 주는 행태는 막을 수 있을 것이다.
그 예시로, 이란산 콘덴세이트 관세율이 3%이고 인도네시아산 중질유는 무관세이므로, 두 물품을 혼합 사용한다면 각 원유가 절반 사용되었다는 전제로 1.5%의 관세를 환급하여 주면 되는 것이다.
더하여, C4R 과 나프타의 혼합사용, C5R과 나프타의 혼합사용도 다시 살펴야 한다. 그 두 가지 품목들은 원재료의 구성성분이 전혀 다르기 때문인데, R의 뜻이 ‘그 성분을 제외한다는 뜻의 라피네이트(Rafinate)’이기 때문이다. 유효 성분 자체가 다른데 동일한 질과 특성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이 같은 주장이 옳다는 가정하에, 관세청에서는 지금까지 정유사의 특혜성 관세환급에 관하여 직무를 태만한 잘못이 있을 수 있다는 점 또한 간과하지 말아야 하며, 당장에라도 이에 대하여 석유화학 전문가의 조언을 받아 해당 업계에 관하여 관세의 과다 환급 여부에 대하여 특별 관세심사를 할 필요가 있다고 할 것이다.
또한, 필자는 위 표의 규정 중 관세환급 특례법 제3조 제2항에서 ‘동일한 질과 특성을 갖고 있어’라는 부분을 ‘관세법 제31조의 동종동질 물품으로서’로 개정하여 그 뜻을 명확히 함이 옳다는 입장이다.
이상에서 필자는 정유사의 관세환급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였다. 다음 편에서는 외투기업에서 어떤 방법으로 관세 등을 탈루하고 있는지를 살펴볼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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