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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긴급조치9호 위헌·무효"…재심개시·형사보상 결정

대법원이 1970년대 유신헌법에 반대하던 민주화운동 세력을 탄압하는 근거가 됐던 국가안전과공공질서의수호를위한대통령긴급조치(긴급조치) 제9호에 대해 위헌·무효 결정을 내렸다.

이번 결정은 2010년 12월 긴급조치 1호에 대해 위헌·무효라고 판단한 데 이어 9호 역시 헌법에 어긋난다는 것을 선언하는 한편 면소판결을 받은 피해자와 유족에게 형사보상 청구권을 처음으로 인정한 것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이상훈 대법관)는 18일 긴급조치 9호 위반 혐의로 기소돼 유죄 판결을 받은 홍모씨의 부인 조모씨가 제기한 긴급조치 9호 위반 형사보상 청구사건에서 "긴급조치 9호는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을 지나치게 침해해 위헌·무효"라며 "국가는 조씨에게 6066만원을 보상하라"고 결정했다.

재판부는 "긴급조치 9호는 발동요건을 갖추지 못한 채 목적상 한계를 벗어나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자유와 권리 등 기본권을 지나치게 제한하거나 침해한다"며 "해제 또는 실효되기 이전부터 유신헌법에 위배돼 위헌·무효"라고 판시했다.

이어 "더 나아가 긴급조치 9호에 의해 침해된 청원권과 표현의 자유, 영장주의 및 신체의 자유, 학문의 자유 등 국민의 기본권 보장 규정을 두고 있는 현행 헌법에 비춰 보더라도 헌법에 어긋나 무효"라고 밝혔다.

또 "형벌에 관한 법령이 폐지됐더라도 그 폐지가 당초부터 헌법에 위반돼 효력이 없는 법령에 대한 것이었다면 그 사건은 형사소송법 제326조 4호의 면소사유가 아니라 제325조의 '범죄로 되지 않는 때'의 무죄 사유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긴급조치 9호 해제를 이유로 면소판결을 받은 경우 피해자와 유족이 형사보상을 청구할 수 있다는 입장도 처음으로 밝혔다.

재판부는 "긴급조치 9호 위반에 대해 면소판결을 받은 경우 이 긴급조치는 처음부터 위헌·무효이므로 위반혐의에 대해 면소 사유가 없었다면 무죄판결을 받았어야 했다"며 "형사보상을 청구할 수 있다"고 설시했다.

홍모씨는 1979년 긴급조치 9호를 비방하는 내용 등이 담긴 유인물을 제작·배포한 혐의로 기소돼 1·2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이후 대법원은 같은해 11월 "긴급조치 9호가 1979년 12월8일 대통령공고 제67호로 해제됐고 이는 범죄 후 법령 폐지로 형이 폐지된 사안에 해당한다"며 구속집행정지 결정과 함께 원심을 파기, 면소판결을 내렸다.

이후 홍씨는 1988년 4월 사망했고, 조씨는 2011년 형사보상및명예회복에관한법률 제26조 등을 근거로 대법원에 형사보상을 청구했다.

이와 함께 대법원3부(주심 김신 대법관)는 배모(57)씨가 제기한 긴급조치 9호 위반 재심기각결정에 대한 재항고 사건에서 배씨의 재항고를 받아들여 재심 개시를 결정했다.

재판부는 "대법원이 긴급조치 9호에 대해 위헌·무효라고 선언한 것은 형사소송법상 재심사유 중 하나인 '무죄 등을 인정할 명백한 증거가 새로 발견된 경우'에 해당한다"며 "그 위반죄로 유죄판결을 받은 사람은 다른 재심사유에 대한 증명이 없어도 재심을 청구할 수 있다"고 밝혔다.

배씨는 1979년 긴급조치 9호 위반 혐의로 기소돼 징역 1년과 자격정지 1년을 확정받았다. 이에 배씨는 2009년 "긴급조치는 위헌"이라며 재심 개시를 청구했으나 서울고법은 "피고인이 재심사유에 관한 주장 및 증거자료를 제출하지 않아 법률상 방식에 위배돼 부적법하다"며 청구를 기각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이날 대법 결정으로 과거 긴급조치위반죄로 유죄판결을 받은 피해자나 유족은 다른 재심사유에 대한 증명 없이 재심을 청구해 무죄판결 및 형사보상을 받을 수 있게 됐다"며 "면소 판결을 받은 경우에는 곧바로 형사보상을 청구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긴급조치 관련 피해자들을 적극적으로 구제하기 위한 사법절차가 확립됐다고 볼 수 있다"며 "피해자들에 대한 실질적인 권리구제의 길이 열리게 됐다"고 의의를 밝혔다.

앞서 헌법재판소도 지난달 "긴급조치는 국민의 권리를 지나치게 제한하거나 침해한다"며 긴급조치 1·2·9호에 대해 재판관 전원 일치 의견으로 위헌 결정을 내린 바 있다.

한편 긴급조치 위반으로 유죄가 확정된 1·4·7·9호 관련 사건으로 처벌된 피해자 수는 1140명에 달한다.

대법원은 이 중 긴급조치 1호에 대해 이미 위헌 판결을 내렸으며, 1·4호 병합사건과 9호 사건에 대해서는 심리를 진행해왔다. 서울고법과 서울중앙지법에 계류 중인 재심사건은 대부분 9호와 관련된 것으로 각 80여건과 20여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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