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승전을 기리고자 세워진 명랑대첩비가 경술국치 100년을 맞은 올해 원래 위치로 돌아온다.
전남 해남군은 명량대첩의 승전을 기록한 명량대첩비(보물 503호)를 문내면 우수영 학동 충무사에서 원 설립지인 문내면 우수영 동외리로 옮겨 역사적 가치를 되새기고 해군의 자존심도 함께 세울 것이라고 26일 밝혔다.
명량대첩비는 1597년(선조30년) 9월 임진왜란(정유재란) 당시 명량 앞바다에서 왜군을 상대로 승리를 이끈 이순신 장군의 공적을 기리고자 1688년(숙종 14년) 전라우수영서 동문 밖에 세워졌다.
하지만, 일제강점기인 1942년 일제에 의해 강제 철거돼 서울로 옮겨지는 아픔을 겪었다.
이에 해남지역 주민들은 1950년 '명량대첩비 이전 추진위원회'를 조직, 현재의 위치인 학동 충무사에 비각을 만들고 경복궁 근정전 뒤뜰에 방치돼 있던 비를 다시 옮겨 세웠다.
역사적으로 밝혀진 원래 위치와 직선거리로 700m 떨어져 있어 정통성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비를 옮길 당시 우수영 원 터에 노인당이 들어서 원위치에 세우지 못했던 것.
이에 해남군은 2008년 원 설립지 이전 타당성 용역 조사를 벌였고 이를 바탕으로 지난해 8월 문화재청으로부터 이전 허가를 받아냈다.
군은 토지매입과 이전설계가 끝나는 오는 10월 중 명량대첩비와 비각을 원 설립지로 이전한다는 방침이다.
군은 또 명량대첩비 이전을 기념해 국가적인 경축행사도 개최할 계획이다.
군 관계자는 "올해는 경술국치 100년과 명량대첩비가 일제에 의해 수난을 당하고 나서 다시 우수영으로 돌아온 지 60년 되는 해"라면서 "명량대첩비 이전은 국가적으로 명량대첩의 승전을 다시 되새겨 봄과 동시에 역사적 정통성을 회복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명량대첩비는 1688년 3월 전라우도 수군절도사인 박신주에 의해 세워졌으며 김만중이 전서로 '통제사충무이공명량대첩비' 12자를 썼고 이민서가 문장을 짓고, 이정영이 글씨를 썼다.
이 비는 국란 시에 땀을 흘린다고 전해져 오는 등 호국의 비로 여겨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