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이천의 냉동창고 화재 현장에서 구사일생으로 탈출한 우즈베키스탄 출신 배관공이 긴박했던 상황에서 40대 한국인 여성을 등에 업고 함께 ‘불구덩이’를 빠져 나왔으나 정작 자신의 사촌형은 구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져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8일 ‘코리아2000’ 소유 냉동창고 공사에 참여한 배관설비업체 D사에 따르면 이 회사 소속 일용직 근로자인 벡투르소노프 카이룰루(33.우즈베키스탄) 씨는 사고 직전 지하 냉동창고 중앙 통로 부근에서 배관작업을 하던 도중 갑자기 천둥같은 폭발소리를 들었다.
직감적으로 뭔가 큰 사고가 났다고 느낀 카이룰루 씨는 곁에 있던 40대 한국인 여성에서 “빨리 피하라”고 소리친 뒤 자신도 머리 위로 덮쳐오는 불길을 피해 출입구쪽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시커먼 연기 속을 필사적으로 내달리던 카이룰루 씨는 40대 한국인 여성이 불길에 휩싸인 채 쓰러지는 것을 보고 차마 혼자만 대피할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의 목숨이 경각에 달린 상황에서도 작업복 외투를 벗어 한국인 여성 몸의 불을 끈 뒤 이 여성을 등에 업고 현장을 벗어났다고 D사 관계자들은 전했다.
간신히 밖으로 빠져 나와 불길에 휩싸인 냉동창고를 바라 보던 카이룰루씨는 뒤늦게 창고 안에서 함께 일하던 사촌형 누랄리(41) 씨가 보이지 않는 것을 알아챘다.
다급한 상황에서 한국인 여성은 구해 냈지만 정작 자신의 사촌형은 전혀 신경쓰지 못한 것이다.
카이룰루 씨는 사촌형을 구해야 한다는 생각에 불바다로 변한 창고 안으로 뛰어들려 했으나 주변 사람들이 가로 막아 포기해야 했다.
이번 화재로 목숨을 잃은 카이룰루 씨의 사촌 형은 큰딸 결혼에 맞춰 오는 5월께 귀국할 예정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사고의 충격에다 형을 잃은 슬픔과 자책감에 결국 카이룰루 씨는 이천에 있는 자신의 숙소에 몸져 눕고 말았다.
카이룰루 씨와 함께 사는 친구는 “카이룰루가 한국인 여성만 구하고 자신의 사촌형을 챙기지 못한 죄책감에 고민하다 몸져 누운 것같다”면서 “열심히 살려고 했던 형인데 사고를 당해 안타깝다”고 말했다.(연합뉴스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