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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하기 2025.06.22. (일)

[隨筆]겨우살이 준비

최진숙(동대문서)


11월13일 토요일 국세청 세정혁신 마라톤 대회가 있던 날.
아침 일찍 작은 아들과 여의도로 향했다.
대회 발표가 나고 사무실에서 점심시간을 이용해 40분 정도 걸리는 곳을 걷기부터 시작해 나름대로 연습이라고 했지만 학교 다닐 때 100미터 달리기를 해본 이후 달리기를 할 기회가 없었고, 평소 부실한 몸 때문에 운동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던 터라 참석하는 것만으로도 나 스스로가 기특하고 뿌듯했다.

작은 아들도 건강치 못한 엄마를 아는 지라 따라나섰고 농담처럼 1등 할거라고 했더니 6등까지 상을 준다니 7등만 하시고 일찍 집에 가자고 한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모였고 준비하는 분들이 엄청 고생했음을 알 수 있었다.

함께 근무하다 지금은 타서, 타청에 근무하는 직원들을 만나니 정말 반가웠다.

오랜시간 기다림 끝에 내가 신청한 5키로가 달릴 차례.
처음 출전하는 정식대회인지라 경험이 없어 5키로는 기록측정을 안하는 건타임(총을 쏘면 출발하는)이라 맨 앞에서 뛰어야 유리한데 나는 후미쪽에 서게 됐다.

말이야 1등을 목표로 한다고 했지만 젊은 친구들이 대부분인데 언감생심. 그정도 연습으로….

처음 예정대로 40분안에만 들어와야지 하고 출발하고 보니 맨 앞에 뛰는 친구와는 100미터도 넘게 떨어져 있었다.

1키로쯤 지나고 보니 벌써 걷는 사람도 눈에 띄인다. 이때 용기를 냈다. 걷지만 않아도 30분 안에 들어오겠다 싶어 열심히 달리고 달려 걷는 사람을 제치고 해 5등. 죽는줄 알았다. 내 자신이 생각해도 정말 신통하다.

덕분에 바람부는 벌판에서 2시간 넘게 떨다가 시상식까지 하고 집에 오니 몸은 파김치가 됐고 정말 다리 하나 들어 올릴 기운도 없었다.

잠시 쉬려고 앉는데 시누님댁에서 전화가 왔다. 오늘 김장한다고.

저녁 7시 전철에, 시외버스에 몸을 싣고 철원에 가서 일요일 아침에 온 남편한테 우리집 김장거리를 실어 보내고 저녁까지 시누님댁 두집과 시동생 김장을 담가주고 밤에 또다시 시외버스에 전철을 타고 돌아오려니 왜 그리 처량하고  서글프던지….

늦은 시간이라 앉아서 오기는 했지만 정말 길게 눕고 싶은 마음을 간신히 억누르고 집에 오니 또 우리집 배추가 나를 앉지도 못하게 한다.

다행히 친정엄마가 배추는 소금간을 해두셔서 저녁 8시도 넘은 시간에 장에 가서 대충 양념거리 사고, 없는 것은 월요일에 사기로 하고 무우 속을 채썰기 시작, 끝나니 12시가 넘었다.

갑자기 김장을 하게 돼 사무실을 안 나갈 수도 없고 망설이다가 출근을 했다.

배추는 싱겁게 절여져서 그냥 저녁에 하기로 하고….
퇴근후 양념을 다 준비해 주신 엄마 덕분에 그때부터 시작해서 새벽 1시에 뒷설거지까지 끝났다.

그때부터는 끝났다는 허탈감에 죽을 것만 같다.
젊은 나도 이렇게 힘든데 친정엄마는 어떠셨을까? 정말 죄송하고 고마워 몸둘바를 모르겠다.

여자는 꼭 이래야만 되는가 하는 생각과 함께 안 할 수도 있는데 내가 너무 극성스러운 것은 아닌가?

여러가지 생각이 머리를 복잡하게 만든다.
그거 그냥 사먹지 그런다고 남편은 잔소리를 하면서도 가끔씩 사먹는 거 못 먹겠더라고 하는 걸 보면 또 안 할 수 없고, 나 역시도 선뜻 사먹을 수 있는 세대가 아니어서인지 힘든줄 알면서도 실행을 못한다.

아마도 이렇게 하는 것도 내 세대 정도로 끝나지 않을까 싶다.

내 계획과 상관없이 타인의 일정에 맞춰 끌려가다 싶이 얼떨결에 하게 된 김장이라 힘은 들었지만 다 해놓고 나니 이 겨울이 왠지 푸근할 것 같은 예감에 입꼬리가 저절로 위로 올라간다.

다 익으면 무지 맛있을 거다.
엄마! 엄마가 계셔서 정말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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