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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하기 2024.05.14. (화)

[기자수첩]'앓던 이' 뽑아낸 국세청과 항공사

결국 국세청도 항공사도 ‘손톱밑 가시’ 규제라는 명분을 내세워 ‘앓던 이’를 뽑아낸 격이다.

 

4월1일자로 ‘주류의 통신판매에 관한 명령위임 고시’ 제5조에 ‘구입자가 판매점에서 직접 대금결제 및 주류를 인수하는 경우에는 사전 예약주문 기능은 표시할 수 있다’는 단서조항이 신설됐다.

 

문구대로라면 주류 구입자가 사전예약을 하고 판매처에 가서 결제와 함께 술을 인수할 수 있다는 얘기인데, 이 조항은 지금껏 논란이 됐던 항공사 기내 면세주 판매와 관련한 것으로 항공사측 손을 들어줬다.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등 항공사나 외항선박 이용객이 이들 업체의 온라인 면세점에서 주류를 사전주문하고 기내 등에서 결제와 동시에 주류를 수령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종전에는 이것이 금지됐다.

 

항공사의 기내 면세주에 대한 통신판매 문제는 이번에 갑자기 떠오른 사안이 아니다. 이전부터 심심치 않게 논란이 됐고 수면 아래 잠복해 있었는데 정부가 이 문제를 ‘손톱밑 가시’ 규제로 선정하면서 해결의 실마리가 순식간에 풀려버렸다.

 

논란이 될 때마다 국세청은 해당 고시에서 정한 경우 외에는 인터넷 상에서 주류를 구입할 수 없고 국민건강을 해치는 술은 규제품목이라는 입장을 고수했는데, 이번 고시 개정을 보면서 규제개혁이라는 명분을 들이밀면 다른 품목의 인터넷 판매 허용도 전혀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 같다는 성급한 생각도 든다.

 

물론 항공사 기내 면세점의 경우 여권 등을 통해 청소년의 주류 구입을 차단할 수 있고 외국항공사와의 경쟁력 차원에서 필요하다는 당위성도 있지만 위스키 등을 구입하는 소수 승객들의 편의보다는 (대형)항공사 입장을 더 대변했다는 비판은 피할 수 없게 됐다.

 

특히 이번 고시 개정이 지난해 공정위 등을 중심으로 추진했던 수입와인 인터넷 판매 문제로 옮겨 붙지 않을까 우려된다. 당시 국세청은 청장까지 나서 “남의 나라 술이 쉽게 잘 팔리도록 하는 곳은 우리나라 밖에 없을 것”이라며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주류는 여타 유통품목과 달리 규제 완화쪽에 포커스를 맞추면 안 되고’, ‘대부분의 선진국도 주류는 규제를 철저히 하고 있고’, ‘유통질서가 문란해지고 무자료 거래가 횡행할 것’이라는 인터넷판매금지 행정논리를 국세청이 계속 고수할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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