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택규 초대 관세청장은 밀수사범 수사에는 일가견이 있어 서울지구 밀수사범 특별합동 수사반장을 역임하는 등 재임기간 동안에 밀수단속분야에 많은 공적을 남긴 것으로 유명하다.
당시 서울세관 심리분실에는 연일 미군 PX에서 부정유출된 특정외래품을 팔고 있는 시장상가를 단속하는데 전력을 기울였으나 밀수판매는 근절되지 않았다. 생계가 달려있는 상인들은 나름대로 상권을 지키기 위해 필사적일 수밖에 없었다.
세관 직원과 상인들간의 쫓고 쫓기는 해프닝도 '71년초에 일어난 밀수단속으로 막을 내리게 된다.
매일 하루 두 차례씩 밀수단속을 벌이던 중 어느 날 남대문 도깨비시장 단속을 나갔던 직원들이 빈손으로 들어왔다. 압수한 물품들을 상인들에게 모두 탈취당했다는 것이다. 세관은 다시 전국 1백명의 심리분실 직원을 집결시켜 대대적인 단속을 실시했다.
그러나 물품 압수, 물품 판매시설을 철거하는 등 단속 과정에서 2천명의 상인들은 집단행동을 벌였다. 깡통이 날고 흉기가 왔다갔다 하며 온통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세관 직원들은 일부 도망가고 또 일부는 이미 칼에 찔리거나 흉기에 맞아 옷이 찢기고 피를 흘리는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됐다. 세관 직원들과 모여든 상인들간의 순간 대치 국면으로 적막이 흘렀으나 잠시 후 남대문시장 주변을 주름잡고 있는 `주먹패'들의 개입으로 세관 직원들은 더 이상의 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
도깨비시장 상인들이 세관의 단속을 막아보려 주변의 폭력배를 동원했으나 오히려 폭력배들의 도움으로 난처한 상황을 모면한 것이다. 이 사건은 현장에서 폭력을 휘두른 몇 명을 구속하는 선에서 일단락됐다.
황상득 심리분실장은 며칠후 심리분실 직원뿐만 아니라 세관장의 동의를 얻어 서울세관 직원까지 모두 동원해 같은 장소에서 재차 대대적인 단속을 폈다. 이후에는 관세청장이 직접 현장에 참석한 가운데 대규모 단속이 이뤄졌다. 그러나 대대적인 단속 때에는 이전과 같이 상인들의 집단적인 폭력은 일어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