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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문성 교수의 라이프 Pick' 연재를 시작하며
오문성 교수는 경영학을 시작으로 공인회계사, 법학(조세법), 행정학 연구에 이르기까지 넓은 분야를 넘나들며 공부해왔다. 그러나 그의 관심은 제도와 숫자에만 머물지 않는다. 오래전부터 인간의 마음, 삶의 지혜, 행복의 조건에 대한 질문이 그의 사유의 중심에 있었다. 이를 이해하고자 심리학을 공부했고, 미래 기술의 흐름을 파악하기 위해 블록체인 분야까지 연구의 폭을 넓혀왔다.
그는 사람의 삶을 진짜로 움직이는 힘은 법이나 제도와 같은 외적인 조건만이 아니라고 말한다. 우리가 누구와 연결되어 있고, 어떤 감정을 품고 살아가며, 시간을 어떤 의미로 쌓아가느냐가 결국 삶의 방향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을 일상의 언어로 풀어보고자 ‘오문성 교수의 라이프 Pick’ 연재를 시작한다. 한 달에 두 번, 우리가 스쳐 지나갔던 삶의 순간들을 다시 바라보고, 조금 더 지혜로운 선택을 고민해볼 수 있는 시간을 독자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자 한다<편집자 주>. |
시절인연(時節因緣)
‘시절인연’이라는 말은 어떤 시기에 가까웠던 사람이 시간이 흐르며 자연스럽게 멀어지는 관계를 의미한다. 하지만 시절인연의 의미를 깊이 생각하다 보면 여러 가지 감정과 해석이 혼재되어 다가온다.
여러분은 어린 시절 정말 친하게 지냈던 친구 한두 명쯤은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그 친구와는 학교에서는 같은 반이었고 방과후에도 함께 축구를 했으며, 틈만 나면 서로의 집을 오가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그 시절 그러한 상황이 마치 평생갈 것같은 착각을 하면서 살았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지금은 그 친구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한번씩 머릿속에 가끔 떠올라도 쉽게 찾아 볼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보고 싶다는 마음은 있지만, 막상 만나면 어떤 상황이 될지 알 수 없다. 자주 만나던 사람과는 할 말이 많지만, 정말 오랜 기간 만나지 않다가 정작 마주하면 반가움은 크지만 대화는 금세 줄어들 수 있다. 옛날 이야기 몇 마디 하다가 대화가 뚝 끊길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그 시절을 이어 주던 공통의 소재가 이제는 거의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 또한 시절인연이다.
시절인연은 사람의 인연에만 해당되는 말이 아니다. 우리가 먹던 음식, 즐겨 찾던 장소, 몸에 익었던 생활 패턴과 분위기, 이 모든 것이 시절인연의 대상이 된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는 회식을 해도 1차에서 끝내고 2차는 잘 가지 않으며, 그런 이유로 젊은 세대일수록 술도 과하게 마시는 분위기가 아니다.
20~30년 전만 해도, 필자의 나이 30~40대 시절에는 회식이 1차에서 끝나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필자도 젊었을 때는 그러한 분위기가 싫지만은 않았고 오히려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즐겼다. 그러나 코로나 시기를 거치며 회식 문화는 크게 변화했고, 현재의 젊은 세대는 강요하는 음주문화에 익숙하지 않아 자연스럽게 이런 분위기가 사라지고 있다.
돌이켜 보면 필자가 그 시절, 그 장소에서 그 회식 문화에 참여했다는 것이 오히려 다행처럼 느껴진다. 그때 그 상황을 경험하지 못했다면, 지금 어디에서 그런 기분을 다시 느낄 수 있겠는가.
필자가 대학교 1학년 때 찍은 사진을 보았다. 꽉 끼는 청바지에 길게 기른 머리, 지금 보면 촌스럽기 그지없는 모습이다. 그러나 그 시절에는 그게 자연스러웠고, 당시 대학생의 전형적 모습이었다. 그 문화 역시 시절인연이다. 그때가 아니면 경험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말을 하다 보니 시절인연에 대해 필자가 가진 생각이 자연스럽게 드러나고 있다. 시절인연은 사람의 인연뿐만 아니라, 그 시절에는 자연스러웠지만 시간이 지나 보면 부자연스러워지는 것들의 총체라는 생각이 든다. 그 시절에는 헤어지면 못 살 것 같던 젊은 날의 인연들, 그 당시 직장생활에서 일상적으로 행해졌던 회식문화, 자주 가던 장소 등도 모두 시절인연의 범주에 속한다.
생각해 보면 지금 내 주변의 많은 인연도 언젠가는 시절인연이 될 수 있다.
지금 자주 가는 장소, 지금 즐겨 먹는 음식, 지금 몰입해 있는 연구 대상과 관심사조차 언젠가는 지나간 인연의 일부가 될지도 모른다.
이렇게 생각을 확장해 보면, 모든 것이 정겹고 모든 것이 소중해진다.
가볍게 여겨도 될 것은 아무것도 없다.
시절인연은 우리에게 조용히 말한다.
“지금 이 순간을 사랑하라. 지금의 인연과 경험은, 지금이 아니면 다시는 올 수 없다.”
지금 가면 영원히 못 만날 수도 있고, 못 먹을 수도 있고, 영원히 경험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래서인지 오늘따라 지금 내 곁의 모든 것들이 유난히 친근하고 애틋하게 느껴진다.
지금이 지나면 다시는 오지 않을 이 시간을, 마음 깊이 감사하게 되는 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