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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論]승용차 특별소비세 개편에 즈음하여

성명재(成明宰) 한국조세연구원 연구위원


2002.8월 우리 정부는 미국과 통상협상을 벌여 승용차 특별소비세를 개편할 것을 약속했다. 주된 협상 내용은 2002년 하반기와 2003년동안 전문기관에 연구용역을 의뢰해 적정 과세체계에 대한 정책대안을 개발하고, 국민적 합의를 거쳐 2004년부터 새로운 세율체계를 시행하는 것으로 돼 있었다. 이와 관련해 정부 관계자는 현재의 3단계 세율체계를 2단계로 축소하겠다는 뜻도 함께 비췄다. 미국측은 이에 고무된 듯했다.

이후 각종 언론매체들은 간간이 승용차 특별소비세의 세율구분 기준이 현재의 1천500㏄와 2천㏄에서 1천600㏄로 개편되고, 세율수준은 현재의 7%, 10%, 14%에서 6%와 11∼12%로 하향조정될 것이라고 보도하는 등 각종 억측이 난무한 가운데 소비자들은 세율인하에 대한 기대감속에서 자동차 구입을 늦추는 등 혼란이 야기되기도 했다.

최근 정부는 한미간의 통상문제를 고려해 승용차 특별소비세 개편방안을 마련·발표했다. 소문으로만 무성하던 개편 내용과 달리, 정부안에 따르면 배기량 2천㏄를 기준으로 6%와 10%의 세율을 적용하는 것으로 돼 있었다.

승용차 특별소비세의 개편은 국회에서 세법 개정이 이뤄져야만 비로소 효력이 발생한다. 국회에서는 여·야간의 의견대립과 세율체계 개편안에 대한 내용 수정으로 당초 정부가 계획했던 것과 달리 세율인하 시기가 늦춰지고 개편내용도 수정됐다. 마침내 7월10일 여·야는 배기량 2천㏄에 세율 5%와 10%의 2단계 세율체계로 개편할 것으로 합의했다. 정부안과 비교해 볼때 2천㏄이하의 승용차에 대한 세율이 1%P 더 낮다.

비록 열흘 남짓한 짧은 기간이었지만 승용차 특별소비세 세율조정에 대한 결정이 미뤄지면서 그 파장이 상당히 컸다. 신규차량 계약자는 출고일을 미루거나 계약을 해지했으며, 구매의사를 가진 소비자들은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느라 개편안이 확정될 때까지 자동차 대리점은 사실상 휴업 상태에 접어들었다. 일시적이지만 불경기속에서 자동차 내수판매가 중단됨으로써 경기에 부담이 됐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나마 논의가 조기에 종결돼 다행스럽다.

금번 승용차 특별소비세의 세율 개편에 대해 어떤 평가를 내릴 수 있을 것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금번 개편은 바람직한 방향으로 진행됐다고 평가할만하다. 우리나라의 제반 경제여건과 특별소비세의 과세기능에 비춰볼 때 3단계 세율체계의 단순화와 세율인하의 방향은 올바르게 설정됐다고 할 수 있다. 다만 감세를 통한 경기진작 효과에 대해서는 확신하기 어렵다. 감세가 경기를 진작시킬 만큼의 파괴력을 가졌는지의 여부는 쉽게 판단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감세는 경기진작 효과를 지닌다. 그렇지만 경제위기가 극심했던 '98년에 소비촉진을 목적으로 특단의 특별소비세 세율인하가 단행됐지만 소기의 목적 달성에는 실패했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승용차 특별소비세는 도입 당시부터 '사치세'로 기능했다. 고가의 사치품을 대상으로 소비세를 부과함으로써 조세의 형평성 제고, 즉 소득 재분배기능이 강조됐다. 그러나 서울올림픽 이후 자동차 보급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하면서 눈 깜짝할 사이에 자동차는 필수품의 하나로 대중화됐다. 더 이상 사치세로서 특별소비세를 과세하기 어려워졌음을 의미한다.

자동차의 대중화는 교통혼잡과 배기가스로 인한 환경오염, 주차난 등의 사회적 외부불경제를 감축하기 위한 '시장의 실패' 교정적 조세로서 특별소비세가 기능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2001년부터 2006년에 걸쳐 석유류에 대한 특별소비세의 과세가 단계적으로 강화되고 있는 것이 특별소비세 과세기능의 변화와 관련이 깊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때 세율인하를 내용으로 하는 금번의 자동차 특별소비세 개편은 '사치세'에서 '환경친화적 조세'로 무게의 중심을 옮긴다는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범세계적으로 자동차를 생산·수출하는 국가에서는 자동차에 대해 개별소 비세를 과세하지 않거나 저율 과세하고 있다. 자동차 산업은 국제적으로 경쟁이 매우 치열한 산업이다. 세계의 자동차시장은 몇몇 대형 자동차회사를 중심으로 급속히 재편되면서 무한경쟁가도를 달리고 있다. 자동차 산업은 특성상 규모의 경제가 크게 작용한다. 따라서 각국은 시장 확충을 통한 국제가격 경쟁력 확보를 위해 자동차 생산국에서는 대체로 개별소비세를 비과세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예외도 많다. 비근한 예로 대표적인 자동차 생산·수출국인 영국에서는 비교적 최근까지 자동차 특별소비세가 과세됐으며 수년전에야 비로소 폐지됐다. 경쟁력 제고라는 생산측면에서의 저율과세 또는 비과세의 필요성과 함께, 소득재분배 또는 외부불경제 억제기능 등 소비측면의 소비세 과세의 필요성도 중요한 고려대상이기 때문에 영국과 같은 선진 자동차 생산국에서도 최근까지 개별소비세를 과세했음을 알 수 있다.

반면에 선진국이라고 하더라도 자국내 자동차 생산이 전혀 없고 수입에만 의존하는 경우에는 고율의 소비세를 과세하기도 한다. 우리에게 친숙한 네덜란드, 덴마크, 포르투갈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덴마크의 경우에는 소비세 부담은 자동차 가격의 2배에 이를 정도로 매우 높다. 이들 국가에서는 교통혼잡, 주차난, 환경오염 등에 대한 우려로 가급적 자동차 보유를 억제하고자 하는 목적에서 높은 세율로 과세하고 있다.

대다수의 자동차 생산·수출국에서 승용차에 대해 개별소비세를 과세하지 않으므로 우리나라도 승용차 특별소비세를 폐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견해도 어느 정도 설득력을 지닌다. 그렇지만 경제발전 단계 및 정책 목표의 차이, 소득분배 구조, 재정여건, 자동차와 관련된 환경오염 및 교통혼잡, 주차난 문제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과도기적인 성격이 강하므로 당분간 특별소비세를 저율과세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으로 판단된다. 특별소비세의 폐지문제는 중·장기적으로 검토해볼 문제이다.

※본란의 기고는 本紙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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