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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하기 2025.09.11. (목)

[시 론]구조조정과 국민개세주의 원칙


朴一烈 강남대 교수


약 3천년동안 인류를 지배하던 농업사회가 3백년이라는 10분지 1로 단축된 산업사회로 대체되었고 지금은 불과 30~40년이라는 짧은 시간에 정보사회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지금의 1시간은 농경사회의 1년 반에 맞먹는 변화를 보이고 있으니 현재 우리의 생활환경이 광속으로 날아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개방화·세계화의 물결은 인터넷이라는 광속의 정보매체를 타고 지구를 휩쓸고 있고 우리 나라도 그 폭풍우속에 내던져져 있다. 작금의 구조조정도 결국은 세계화의 산물이다. 각국의 경제여건을 고려하지 않고 세계의 모든 나라가 동일한 가격경쟁을 해야하는 것이 세계화다. 우리끼리 문 닫고 살 때는 마늘 한 접에 1만원을 받아도 팔렸으나 개방경제에서는 1천원에 팔아야 한다. 그러니 농민이 살 수가 없다. 애국심에 호소하는 것도 한계가 있는 법이므로 결국은 우리 농업구조가 1천원에 원가를 맞출 수 있도록 변화하는 수밖에 없다. 국가의 보호하에 온실속에서 편안하게 장사하던 시절에서 갑자기 준비할 시간도 없이 개방화의 거센 폭풍우를 만나고 있으니 나라가 어지럽지 않을 수 없다. 폭풍우를 이겨내지 못하면 가라앉는 길밖에 없다. 문제는 국가끼리의 경쟁이 곧 국내의 국민생활로 직결된다는 데에 있다. 짧은 시간에 가장 확실하게 비용을 절약할 수 있는 방법은 인력 감축이고 그것이 지금 우리 근로자들을 힘들게 만들고 있다. 2~3년전부터 불어닥치고 있는 경제위기는 구조조정이라는 칼날아래 수많은 실직자를 양산하고 있고 그나마 직장이 있는 근로자의 입장도 언제 꺼질지 모르는 바람 앞의 촛불이 되고 있다.

무한경쟁의 세계화는 국가에 관계없이 중산층을 몰락시켜 새로운 패러다임에 적응한 소수의 부유층과 대부분의 빈곤층만이 존재하는 양극화된 사회를 만든다는 `20대 80의 사회'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는 것을 보면서 현재의 대중과세를 생각해 본다. 대중과세는 국민개세주의 원칙을 바탕으로 서 있다.

모든 국민은 세금을 납부해야 한다는 국민 개세주의의 원칙을 조세사적으로 보면 절대왕권이 성립하는 근대이전에 면세특권을 누리던 귀족층에게도 세금을 걷기 위한 논리였다. 돈 있는 상인은 돈으로, 돈이 없는 농민은 전쟁터에서 몸으로 군역을 치를 때도 귀족층은 세금도 내지 않고 온갖 특권을 누리고 있었다. 상인자본의 힘으로 절대 권력이 확보한 국왕이 그 힘을 바탕으로 귀족층에게도 세금을 물린 철학이 바로 국민개세주의 원칙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사상이 현대에서는 대중과세라는 이론으로 잘못 오인되고 있는 듯하다. 모든 국민이 납세의무를 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그것은 소득에서의 잉여가 있는 경우의 납세의무여야 한다.

경제적 위기를 경험했던 국가들이 강력한 구조조정을 하면서 나타난 사회현상은 소수의 부유층과 대다수 서민층이라는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도 예외는 아니다. IMF 시대를 통과하면서 과거보다 부자는 더 부자가 되고 있는 반면에 중산층은 몰락하고 있다.

국민의 생활이 안정되지 않은 경제위기의 극복은 사상누각에 불과하다. 진정으로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안정된 사회를 만들려면 사회의 양극화를 막아야 한다. 그 방법은 조세를 통해 할 수밖에 없다. 정부의 복지지출은 공적자금의 수혈로 지금은 여력이 없기 때문에 조세를 통한 강력한 국내적 소득재분배정책이 필요하다.

원래 세금은 잉여에 부과되어야 한다. 생활비에 충당하는 소득에 부과되어서는 안된다. 잉여는 소수의 부유층에 집중되고 있기 때문에 그 집중된 소득을 재분배해서 중산층을 살리는 길이 튼튼한 사회를 만드는 길이다. 국민개세주의 원칙에 대한 재고와 함께 과거 귀족층에 대한 과세강화의 역사적 시사점을 현실에 되새겨 봄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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