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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하기 2024.05.17. (금)

비과세․감면 정비의 올바른 기준

곽태원<서강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복지재원 확보 등을 위한 세수대책으로 여러가지 방안들이 강구되고 있다. 정부는 새로운 세목의 개발이나 기존 세목의 세율 인상 등은 경제에 부담도 되고 정치적으로도 지지를 얻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에서 지하경제의 노출과 비과세․감면의 축소 등을 강조하고 있는 것 같다. 두가지 모두 당연히 추진돼야 하는 것이고 전문가들이 꾸준히 이러한 방향으로의 개혁을 주장해 왔다. 지하경제는 우선 지하경제 현상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고 그것을 어떻게 제거하거나 지상경제로 편입시킬 것인가의 방법이 문제가 되는 것이어서 정책 분석적인 논의의 여지는 크지 않다. 그러나 비과세․감면의 문제, 즉 조세지출의 문제는 기본적으로 정책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어떤 항목을 어떤 방향으로 바꿔야 하는지에 대한 정책적인 판단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또한 비과세․감면은 대부분 특정집단의 이해에 연계돼 있고 나름대로 명분도 있어서 정치적으로 폐지하거나 축소하는 것이 쉽지 않다. 사실 이 문제가 가장 중요한 문제이고 그동안 수없이 대폭적인 정비가 거론됐음에도 실적은 보잘 것이 없게 된 중요한 원인이기도 하다.

 

비과세․감면의 목적은 크게 두가지로 분류될 수 있다. 하나는 특정한 집단의 가처분소득을 증가시키는 것이 목적인 경우이다. 특정한 취약계층의 소득을 보전해서 사회 전체의 균형을 도모하거나 어떤 계층에 대한 보상이 필요한 상황이 발생해서 조세지출을 통해 그 보상이 이뤄지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목적의 조세지출항목을 평가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공평성이다.

 

한편 조세지출은 특정한 행태를 장려하거나 억제하기 위한 목적으로 도입될 수 있다. 소위 인센티브 정책의 수단으로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기업들로 하여금 투자를 더하게 하거나 특정한 지역으로의 집중을 억제하기 위해서 조세지출이라는 수단을 사용할 수 있다. 이런 경우에는 판단의 기준이 효율성이다. 특정한 조세지출이 원하는 방향으로의 유인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제공하는가와 그렇게 유도된 행동이 경제의 효율성을 얼마나 개선했는가 등이 정책판단의 기준이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조세지출을 통해서 분배의 개선이나 형평의 증진이 이뤄질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형평의 증진이나 분배개선을 위한 재정수단으로 조세지출이 좋은 수단이라고 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조세지출보다는 직접지출이 훨씬 더 효과적이고 또 일반적으로 더 공평한 정책수단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무엇보다 조세지출은 세금감면을 받을 수 있는 특정한 상황이 되는 경우에만 지출이 일어날 수 있다는 점에서 소극적이고 선택적이다. 거기에다가 그러한 상황이 돼 조세지출의 수혜를 받는 사람이 꼭 지원이 필요한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는 점에도 유의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직접지출에 의한 재분배 혹은 형평목적의 지원은 수혜의 대상이 지원의 필요 여부에 의해 판별되므로 훨씬 더 정교하다. 또 지원대상으로 판별된 모든 사람에게 지원이 이뤄지므로 적극적이고 공평하다. 요컨대 형평목적의 지원수단으로서 조세지출은 직접적인 재정지출에 비해 일반적으로 열등한 수단이라는  것이다.

 

한편 유인수단으로서의 조세지출은 직접지원에 비해서 훨씬 더 좋은 정책수단이 될 수 있다. 기업이나 개인의 경제행태는 상대가격에 대한 반응으로 나타나는데 조세유인은 바로 상대가격에 영향을 주는 정책수단이기 때문이다. 같은 행동을 유도하기 위해 직접규제나 직접지출에 의한 재정지원을 하는 것보다 훨씬 더 효과적이고 정확한 지원효과가 나타나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지원대상이 되는 행위가 경제의 효율을 높인다는 관점에서 바람직한 것인지의 판단은 필요하다.

 

조세지출의 대폭적이고 근본적인 정비는 조세지출에 대한 이와 같은 기본적인 인식에서부터 출발해야 하는데 최근 논의는 그것이 가져오는 형평효과에 지나치게 기울어져 있다는 점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형평목적의 조세지출은 대대적으로 정비해서 거기서 나오는 재원을 복지재원으로 돌리는 것이 주어진 재정자원을 형평 증진에 훨씬 더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점에 개혁의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이것은 조세지출에 의한 기존의 수혜계층의 반발을 수반할 것이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어려울 수 있지만 복지재정을 보다 공평하고 효율적인 방향으로 개선하기 위해서 반드시 극복해야 할 과제인 것이다.

 

유인수단으로서의 조세지출은 그것이 정말로 필요한 것인지의 여부를 판단해서 조정하는 것이 중요하지 취약계층에 대한 수혜 여부가 그 존폐의 기준이 돼서는 안될 것이다.

 

※본면의 외부원고는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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