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치솟는 기름값 때문에 온 국민이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소득은 제자리 걸음인데 치솟는 물가부담에 생활 여건은 더 빡빡해지기 때문이다. 유가의 고공행진 속에 연초에 대통령께서 '유가가 묘하다'고 발언하신 다음, 정유사들의 폭리 여부가 도마 위에 올랐다. 급기야 최근 SK정유를 시작으로 4개 정유사 모두 3개월간 리터당 100원씩 가격을 인하했다. 그러면서 불똥이 정부로 튀어 '고통분담' 차원에서 정부도 모범을 보여 유류세를 인하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유류세 인하에 대한 얘기가 점증하고 있다. 바햐흐로 유가논쟁이 제2라운드에 접어들고 있다.
유가의 고공행진에 대한 쟁점은 크게 두 가지이다. 정유사가 폭리를 취했는지의 여부와 가격인하 문제가 하나이고 정부의 유류세 인하 문제가 다른 하나이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두 가지 모두 당장은 국민들의 호주머니 부담을 덜어 주지만 국민 경제에는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작금의 고유가는 국제유가의 급등때문이다. 부수적으로 환율도 높았기 때문이다. 다행히 얼마전부터 환율이 하향안정화되면서 유가 인상압력이 다소간 완화되고 있다.
고유가 행진은 우리나라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그런데 선진국에서는 유가부담 증가 문제가 우리나라보다 적게 제기되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대다수의 선진국에서는 소비세를 높게 부과해 고유가정책을 전개해 오래전부터 석유 소비 슬림화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휘발유 유류세를 10년 이상 동결하는 등 사실상 저유가정책 기조를 견지해 결과적으로 석유 소비가 과다해졌다. 즉, 석유 소비의 비대화로 인해 고통이 극에 달하고 있는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석유 소비를 줄이면 된다. 다만 소비 감축을 위한 우리들의 절제가 커다란 고통을 수반하기 때문에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쉽지 않다는데 고민이 있다.
최근에는 오히려 석유 소비를 부추길 개연성이 큰 유류세 인하 주장이 힘을 얻고 있어 우려된다. 물론 필자도 개인적 입장에서는 유류세가 인하돼 기름값 부담이 줄어들면 좋다. 그렇지만 국민 경제를 생각하면 암담하기만 하다. 고통 극복을 위해서는 지속적이고도 장기적인 다이어트가 필요한데 유류세를 인하하면 가일층 석유 소비 비대화가 가속화돼 고통은 더욱더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국민과 정부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 정부는 유류세 상향조정에 소극적이었고, 국민들은 당장 편한 것만 좇을 뿐 유류 소비의 구조조정에는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정유사의 영업 잉여는 일반적인 대중들의 인식과 달리 폭리로 보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매출액 대비 영업이익률이 2% 내외로 여타 부문보다 훨씬 낮다. 그나마 이익의 상당부분은 국내 시장이 아닌 수출을 통해 얻고 있기 때문에 국내시장에서 폭리를 취하고 있다고 보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유가 등락시의 비대칭성도 논란이 되고 있다. 그러나 가격변동의 비대칭성은 물가상승률이 0%가 아닌 다음에야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대다수의 재화에서 관찰된다. 비대칭성의 존재가 곧바로 폭리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에 근거해 정유사의 유가 인하를 주장하는 것은 설득력이 낮다.
폭리에 대한 개념도 모호하다. 시장에서 몇%의 이익률을 내면 폭리인지에 대해 학문적으로조차 정의된 바 없다. 국민과 정부의 보이지 않는 무언의 압박이 작용해 최근 정유사가 유가를 인하했다. 언뜻 보면 유가 부담이 완화돼 숨통이 트이는 것처럼 느낄 수 있다. 우리나라 시장에서 시장원리가 아닌 인위적인 힘에 의해 규제가 작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세계화·국제화된 경제구조 하에서 잠재적으로 우리 경제에 미칠 마이너스(-) 요인이 작지 않을 수 있다. 장기적으로 그 파장이 확대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금번과 같은 경우가 재현되지 않기를 바란다.
향후 중국의 지속적인 고도성장 등으로 인해 구조적으로 국제시장에서의 석유 수요가 계속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공급 확충은 더뎌 고유가 또는 유가급등 현상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최소한 수년전과 같은 저유가 시대는 기대하기 어렵다. 중동지역의 정세 불안, 일본의 쓰나미에 이은 정유시설 화재 등도 모두 유가상승요인이 되고 있다. 따라서 앞으로 유가급등의 충격은 지금보다 더 커질 수 있다. 현재와 같은 비대한 석유 소비구조를 근본적으로 개혁하지 않으면 결코 고유가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다. 유류세 인하는 석유 소비의 비대화를 더욱 가속화시키는 만큼 해결책이 될 수 없다. 당장은 고통스럽고 부담이 크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을 위해서는 석유 소비 감축이 절실하다. 이를 위해서는 오히려 장기적으로 유류세를 인상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만약 당장의 고통이 아프다고 유류세 인하로 대응한다면 유가상승이라는 국제경제환경 변화에 대응하지 못하게 되어 녹색성장은 요원해지기만 하고 탄소세 전면 도입시 수렁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될 수 있다. 유류세 인하는 결코 보약이 아니다. 달콤한 독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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