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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하기 2025.06.28. (토)

자동차세의 정체성에 관해서

곽태원 교수(서강대)

정책에도 유행이 있다. 짙은 녹색으로 치장하고 환경한테 친하게 굴어야 명함이나마 내밀 수 있는 세상이 됐다. 그러나 유행이 모든 경우에 어울리는 것은 아니다. 물론 조세는 다른 분야와 달리 환경하고 인연이 깊다. 환경 관련 문제에 대한 매우 강력하고 효과적인 대응수단으로 조세정책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동차세는 원래부터 녹색 옷을 입고 있었다. 그래서 최근에 논의되고 있는 자동차세 개편 논의에서 탄소세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자연스럽다고 볼 수도 있다. 적어도 유행을 따라가는 행동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원래부터 녹색 옷을 입고 있었다고 해서 그것이 잘 어울린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 더구나 녹색이 유행이라고 그 색깔을 더 진한 녹색으로 바꾼다면 더 어색해질 수도 있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금년에는 냉해를 걱정해야 할 정도로 평균 기온이 낮아져서 지구 온난화가 정말 진행되고 있는지 의심이 들기도 하지만 탄산가스 규제의 문제는 피할 수 없는 상황이 돼 가고 있기 때문에 우리도 어떤 대책을 갖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 이 문제를 갖고 범정부적으로 고심하다 보니 자동차세 개편에서도 탄소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것 같다.
 탄소세의 타깃은 탄산가스 배출량이어야 한다. 자동차도 전기자동차가 아니라면 탄산가스를 내뿜으며 다니니까 그것을 과세기준으로 삼으면 훌륭한 탄소세가 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을 가질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문제는 탄산가스 배출량을 자동차별로 정확하게 측정해 그것에 해당하는 세금을 부과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는 점이다. 그래서 연비에 따라 세금을 결정하는 방법도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연비는 실제의 배출량을 결정하는 하나의 변수일 뿐이다. 실제 운행거리를 반영해야 보다 정확한 배출량이 추정될 수 있다. 자동차의 운행을 절제하는 사람에게는 오히려 불리한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에 탄소배출 유인 효과는 줄어든다. 현재처럼 배기량을 기준으로 과세하는 것은 물론 더 조악하다. 또 자동차의 탄산가스 배출에 과세해야 한다면 다른 모든 '중요한' 탄산가스 배출 행위도 과세대상으로 삼는 것이 탄소세의 정신에 부합한다. 산업용 혹은 가정용 연료의 소비도 모두 과세대상이 돼야 한다.
 그래서 탄소세는 탄산가스의 배출에 직접 과세하는 것보다는 탄소를 포함한 연료의 생산이나 수입에 과세하는 것이 훨씬 더 효율적이다. 원유를 가지고 휘발유나 디젤 혹은 LPG 등을 생산하는 경우 이에 대해서 탄소세를 부과하고 이러한 제품을 수입하는 경우에도 탄소세를 부과하고 이러한 제품을 수출하는 경우에는 부과된 탄소세를 환급하는 구조의 세금이 바람직한 탄소세의 모습일 것이다. 물론 이 세금의 과세대상은 석유관련 연료 뿐 아니라 석탄과 바이오디젤, 연료용 알코올 등 탄소를 포함한 모든 연료가 포함돼야 할 것이다.
 자동차는 탄산가스 배출 말고도 다른 여러가지 외부성을 초래한다. 미세먼지, 아황산가스, 질소산화물 등 더 직접적으로 우리에게 피해를 주는 대기오염 원인을 제공한다. 도로를 마모 혹은 파손시키고 혼잡비용을 야기한다. 이런 문제는 자동차 종류와는 상관없이 발생하는 것이므로 자동차용 연료에 대한 과세로 대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탄소세가 도입되더라도 자동차에 대한 연료에 대해서는 추가적인 과세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전기차에 충전되는 전기라도 적절한 과세가 필요한 것은 전기차도 도로를 혼잡하게 하고 또 도로의 파손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자동차세에게는 어떤 역할을 맡겨야 할 것인가? 사실 자동차세는 지방재정에서 점점 효자노릇을 충실하게 감당할 수 있는 세목이다. 하지만 승용차를 중과세하고 있고 버스나 화물차는 경과세하고 있는 데다가 사업용은 더 경과세하고 있다는 특성 때문에 환경이라는 옷은 썩 어울리지 않는다. 배기가스 기준으로 과세하고 있는 현행 제도는 배기량 보다는 자동차의 크기 혹은 가격을 간접적으로 반영시키려는 의도로 볼 수도 있다. 더구나 2000년에는 헌 차에 대해 자동차세를 줄여주는 제도를 도입했다. 대체로 오래된 차일수록 환경을 오염시키는 효과는 더 커지는 것이 보통이다.
 이처럼 자동차세가 어울리지 않는 녹색 옷을 입고 있는데 탄소세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으니 정체성의 혼란이 더 심해지는 것이다. 차제에 자동차세를 자치단체의 수입을 위한 재산 보유세로 전환하는 것을 진지하게 생각해 보기를 권한다. 그러면 산업용 차량이나 생업용 화물차량을 경과세하는 명분도 생기고 고급 외제차에 대해서는 거기에 걸맞는 세금을 부과할 수도 있게 되지 않겠는가? 녹색 옷은 더 잘 어울리는 다른 세제들에게 벗어 주고….
 ※본면의 외부기고는 本紙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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