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식 시장주의 vs 유럽식 시장주의 그리고 세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재 경제체제를 구분하면, 자본주의, 사회주의 및 공산주의로 크게 구별할 수 있다. 자본주의란 모든 경제단위가 모두 시장경제질서에 의해 움직이는 것을 수단으로 삼고 있어서 시장주의라고도 한다. 반면 사회주의는 부의 편중을 방지하기 위해 생산수단을 개인이 아닌 사회가 소유해 자본주의 모순을 극복하고자 하는 것으로 토지 공개념 같은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공산주의는 사회주의에서 더 나아가 분배의 공평과 사유재산의 부인 및 공유재산제를 실시하고 있다.
재미있는 점은 공산주의가 기독교 초기 공동체사회에서 영향을 받아서 탄생했다는 점이다. 칼 마르크스가 영국의 산업혁명의 온갖 부조리를 지켜보면서 그 해결책 중의 하나로 재산공유제를 주장했는데, 이는 신약성경의 사도행전 2장42절의 내용인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며'라는 구절에서 공산주의의 정신적 바탕을 마련했다고 한다. 역사적으로 보면 공산주의와 기독교는 상극인데, 그 출발점이 기독교 성경 내용이라니 참 아이러니컬하기만 하다. 아마도 당시 산업혁명의 시절에 유럽에서 노동자와 자본가 사이의 극심한 빈부의 차이가 있었고, 노동자들의 생활여건이 열악한 현실을 당시의 사회제도로는 이를 개선할 수 없음을 알고 그 해결책을 성경에서 찾은 것이 아닌가 한다.
이 글의 서론이 이처럼 긴 이유는 바로 자본주의(시장주의)의 형태에 따라서 그 구성원이 부담해야 할 세금이 결정되기 때문이고, 또한 우리나라 경제체계가 모델로 삼고 있던 미국식 시장주의가 최근 금융위기로 인해 어려움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시장주의는 이해관계가 서로 다른 집단의 해결방법이 '시장'에 있다는 것이다. 즉,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서 경제사회체제의 갈등을 치유할 수 있다는 점을 신뢰하고 있다. 예를 들면 아파트 값이 올라가면 건설시장의 공급을 확대해서 공급자와 수요자의 긴장관계를 푼다는 것이다.
시장주의는 미국식 시장주의(신자유주의)와 유럽식 시장주의(사회적 시장주의)로 대별할 수 있다. 전자는 시장의 기능에 경제를 맡긴다. 따라서 규제가 없고, 국가가 특별하게 관리할 것이 없어서 '작은 정부'의 구현이 가능하다. 그러나 시장구성원의 '절제되지 않은 탐욕'과 '지나친 규제 완화'가 현재 미국 금융위기를 초래한 단초를 제공했다는 주장이 설득력이 있다. 반면 유럽식 시장주의는 시장의 자율성은 존중하지만 전자보다는 국가의 간섭이 더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따라서 '큰 정부'가 되기 십상이다. 현재 유럽국가의 인구 대비 공무원의 숫자는 한국보다 월등하게 많다. 미국식 시장주의는 국민의 세금 부담률이 상대적으로 유럽식 시장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국가보다 낮다.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박정희 대통령의 국가주도발전계획에 이어서 '97년 IMF 이후에는 미국식 시장주의가 실시되고 있다. 현 정부도 출범시 '작은 정부'와 '감세정책'을 공약했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우선 세금부담을 줄여준다고 하니 싫어하는 국민이 어디 있으며, 공무원의 숫자를 줄인다고 하니, 자기 가족에 공무원이 있는 가정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동의를 할 것이다. 그러나 상황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이른바 양극화 현상이 바로 그것이다. 이를 시장에 맡겨둔다면 해결이 가능하겠는가?
독일이 이와 같은 과정을 겪었다. 히틀러의 중앙집권적 통제체제를 겪고 난 뒤, 완전경쟁을 기반으로 한 경제체제를 운영하다가, 시장의 자유와 사회적 형평을 결합한 이른바 '사회적 시장주의'를 채택한 것이다. 독일은 이주민보다는 정착민이 더 많은 사회이다. 따라서 이해당사자를 '사각의 링'에 모두 올려놓고 일정한 경기 규칙을 주어서 이긴 자가 모든 것을 가지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왜냐하면 링에 오른 사람이 다 이웃 친척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미국은 가능하다. 뉴욕과 LA는 너무 멀고 잘 아는 사람도 없다. 따라서 정부는 이해당사자를 링에 오르게 하고 규칙을 잘 지키는지만 감시하면 된다.
우리나라 헌법 제119조제1항은 미국식 시장주의와 관련이 있고 제2항은 유럽식 시장주의와 관련이 있다. 헌법재판소(96헌가 4, 1998.5.28.)도 위 두항이 모두 헌법적 요구라고 한다. 이번 미국 금융사태를 보면서 과연 미국식 시장주의가 우리 형편에 맞는지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시장'이 가지고 있는 순기능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지만 국가의 일정한 간섭은 필요한 것이 아닌가 한다.
양극화 현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교육시장을 보자. 미국은 국가가 운영하는 주립대학교는 수업료가 낮지만, 유명대학의 대부분은 사립이고 수업료도 매우 비싸다. 돈이 있으면 기부금 입학 등으로 유명 사립대학에도 갈 수 있다. 반면, 프랑스나 독일에서는 대학생이 대학교에 내는 돈이 거의 없다. 1년에 겨우 몇십만원 정도이다. 국가가 국민이 내는 세금으로 대학교를 운영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돈이 없어서 대학에 못 들어간다는 소리는 유럽에서는 이상하게 들린다. 그러나 들어가서 공부를 안하면 바로 유급이 된다. 이른바 교육의 평등권은 보장하지만 교육의 공평성은 자기 자신의 노력과 능력에 달려 있는 것이다. 그래서 졸업률이 낮다. 우리나라도 이렇게 하면 안될까?
세금을 조금 부담하면서 국가로부터 받는 이익이 많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현재 우리나라 경제가 어려움에 처해 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단기적 처방으로써 감세가 고려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우리 속담에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이 있다. 높이 떠있는 새가 멀리 보는 것이다. 장기적이고 대규모의 감세정책은 자칫 경제의 잠재성장을 위한 '종자'까지도 잃어버릴 수 있다.
양극화가 심화되면 될수록 사회는 불안해진다. 칼 마르크스처럼 '이상한' 사람이 나타날 수도 있다. 우리에게 미국은 소중한 나라이다. 경제를 유지하면서 시장 또한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금융위기를 지켜보면서, 인간의 불안전함과 제도의 불합리한 점을 보게 된다. 차제에 우리나라 경제체재의 형태에 대한 재검토와 아울러 이에 대한 사회구성원의 의견이 집합돼 산출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를 통해서 국민의 조세부담률에 대한 사회적 동의도 마련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경제여건을 감안한 일시적인 감세에 대해서는 달리 의견이 없지만, 구조적인 감세정책의 수립은 우리나라 경제체제에 대한 사회적 담론 형성 뒤에 해도 늦지 않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