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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하기 2025.07.01. (화)

[제언]아직도 요원(遙遠)한 납세자 권리구제의 길

-유명무실한 납세보호담당관제-

한번은 우리 사무소에 팔십이 다 된 노인 한분이 찾아왔다. 형색으로 봐서 시골 노인같아 보였다. "어떻게 오셨느냐?"고 여쭤 봤더니, 몸을 벌벌 떨면서 손에 든 고지서 한장을 내놓는다.

 

노인의 말을 들어보니 "전자대리점을 하던 딸이 부도나는 바람에, 보증 서줬던 빚을  갚아 주느라고 10년전에 땅을 판 적이 있는데, 10년이 지나서도 세금이 나오느냐?"고 하면서 "1억2천만원이라는 세금이 나왔다"는 것이다.

 

노인이 준 고지서를 살펴보니, 관할세무서가 대전 S세무서였고, 고지서에 적혀 있는 담당자는 재산세과 여직원이었다.

 

필자는 대전 S세무서 재산세과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어 '나는 아무개 세무사'라고 하면서, 고지된 양도소득세의 과세경위에 대해 물어봤다.

 

그 여직원은 "실가상이(實價相異) 자료가 나와서 양도소득세를 과세했다" 면서 "납세자는 실가로 신고했지만, 기준시가로 과세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허위계약서를 만들어서 아주 조직적으로 탈세를 했던데요 뭐" "그것은 사기 기타 부정한 방법으로 세금을 포탈한 것이어서, 부과제척기간 10년을 적용했어요" "그외에도 부동산을 양도한 것이 많던데, 나이많은 사람이 그 돈을 다 어디다 썼겠어요" "앞으로 증여세 조사도 하려고 하는데, 알아서 하라고 해요!"라고 하면서, 협박성 말을 하는 의도가 불복을 하지 말라는 뜻이었다.

 

'시골 물이 썩는다'는 말이 있듯이, 지방세무서일수록 납세자가 세무서의 과세처분에 대해 불복을 하려고 하면, 부과처분을 한 직원은 종종 이런 협박성 말을 거침없이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간(肝) 큰 여직원의 말'은 접어두고, 필자는 노인에게 양도소득세 신고경위에 대해 물어봤다. 노인은 "태어난 곳을 한번도 떠나 본 적이 없으며, 70평생을 농사만 짓고 살아왔는데, 딸이 전자대리점을 낼 때 빚보증을 서준 적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딸이 IMF 때 부도나는 바람에 빚 독촉에 못 이겨 땅을 팔았으며, 땅을 팔고 나서 대전 S세무서 근방에 있는 某세무사에게 의뢰해서 세무사가 시키는 대로 관인계약서 사본을 갖다 줬으며, 그 세무사는 관인계약서 사본을 증빙서류로 첨부해서 양도소득세신고를 해줬다"는 것이다.

 

그 당시는 부동산을 사거나 팔고 나서 소유권 이전등기를 할 때, 관인계약서상 거래금액을 실제보다 축소해서 작성하는 것이 일반화돼 있었으며, 관공서에서도 그것을 묵시적으로 인정해 왔기 때문에 납세자들도 이런 행위에 대해 아무런 죄의식을 갖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대전 S세무서에서는 10여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사기 기타 부정한 행위로써, 국세를 포탈한 경우'에 해당된다며, 평생 농사만 짓고 살아온 순진무구(純眞無垢)한 노인을 조세포탈범으로 몰아붙이고 있는 것이다. '너희들은 하늘이 무섭지도 않느냐!'는 말이 절로 나온다.

 

국세청에서도 '사기 기타 부정한 행위'라 함은 납세자가 '조세 징수를 불가능하게 하거나 또는 현저하게 곤란하게 하는 위계(거짓으로 계책을 꾸밈) 기타 부정한 적극적 행위'를 함으로써, 국세를 포탈하는 것을 말한다고 유권해석을 내리고 있는 것이다.

 

필자가 볼 때, 그 노인은 '위계 기타 부정한 적극적 행위'를 함으로써, 국세를 포탈할 만한 능력이 없을 뿐더러 그와 같은 짓을 할 사람도 아닌데, 무엇을 갖고 그와 같이 판단을 하는지 알 수가 없는 노릇이다.

 

대전 S세무서에서는 그동안 뭘 했기에 10년 전에 양도소득세 신고를 마친 자료를 가지고 이제 와서 '시효임박 자료'라고 하여, 노인에게 해명의 기회도 주지 않고 과세전적부심사청구의 기회도 박탈한 채, 감당할 수 없는 거액의 고지서를 느닷없이 내보낸단 말인가?

 

그래서 필자는 노인에게 '고충민원을 내보라!'고 권유하고 나서, 고충민원신청서에 대필을 해준 다음, 대전 S세무서에 팩스로 접수시켜 줬다.

 

고충민원 신청경위에 대해 필자는 대전 S세무서 납세자보호담당관실 담당계장에게 전날 상세하게 설명을 해줬기 때문에, 소속 계장에게 들어서 잘 알고 있을 텐데, 이튿날 차석이란 사람이 필자에게 전화를 걸어, 모르는 척하면서 "민원인이냐?"고 묻기에 ○○○ 세무사라고 했더니, 정나미가 떨어질 정도로 불손하고 위압적인 어조로 "불복청구기간 내에는 고충민원을 신청할 수 없다"고 하면서 다짜고짜로 "이의신청으로 돌릴 것인지 아니면 고충민원을 취하할 것인지를 말하라!"는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만약 납세자보호사무처리규정'에 '불복청구기간 내에는 고충민원을 신청할 수 없다'는 규정이 있다면, 그 규정에 따르도록 하겠다"고 답변하고 나서, 납세자보호사무처리규정을 찾아 봤는데, 어디에도 그런 규정은 없었다.

 

하루 정도가 지나도록 대전 S세무서 납세보호담당관실에서 아무런 연락이 없기에, 당해 고충민원에 대해 심리를 한 후에 납세자보호위원회에 회부해 주려니 했는데, 한 이틀쯤 지나고 나서 담당 계장한테서 전화가 왔다.

 

담당 계장은 필자에게 대항할 수 있는 무슨 묘안이라도 발견한 양 "세무사가 그것도 몰랐느냐?"라는 어조로 "납세자보호사무처리규정 제16조제1항에 고충민원은 국세부과 제척기간이 경과하기 전까지만 신청할 수 있다고 돼 있다"는 것이다.

 

대전 S세무서에서는 지금까지 노인의 고충민원을 해결해 주기 위해 심리를 해온 것이 아니라, 서장을 비롯한 온 납세자보호담당관실 직원이 '당해 고충민원을 어떻게 하면 거부할 수 있는지?'를 궁리해 온 것이다.

 

필자도 납세자보호사무처리규정 제16조를 찾아보았는데, 제2항에는 '당연 무효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제1항의 규정을 적용하지 않는다'라고 되어 있으나 대전 S세무서에서는 고충민원을 거부할 수 있는 명분을 찾는 데만 급급한 나머지 제1항의 예외규정을 간과(看過)했던 것이다.

 

필자는 대전 S세무서 납세자보호담당관실 담당 계장에게 '이 사건은 부과제척기간에 대한 다툼이기 때문에 당연 무효 여부를 따지는 것이어서 납세자보호사무처리규정 제16조제1항을 적용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지만, 고질병(痼疾病)같은 K서장의 황소고집을 꺾지는 못했다.

 

관련규정의 유무를 떠나서 납세자가 고충민원을 내면, 수용할 것인지 여부는 차치(且置)하더라도 당해 민원을 적극적으로 검토해 주는 것이 공무원으로서의 올바른 자세가 아닌가 싶다.

 

또한 대전 S세무서장은 적극적으로 고충민원을 받아서 납세자보호위원회에 회부해 주더라도 자기는 아무런 책임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고충민원을 받아서 처리해 주면 마치 큰일이라도 나는 양, 기(氣)를 쓰고 반대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모르겠다. '선참후계(先斬後啓)'감이라는 생각이 든다.

 

세무서나 지방청 납세자보호담당관실 직원 중에는 '불복청구기간 내에는 고충민원을 신청할 수 없다'고 말하는 직원이 있기에, 본청 납세자보호과에 "납세자보호사무처리규정에는 그와 같은 규정이 없던데, 그 말이 맞는 거냐?"고 물어봤다. 그러나 금방 답변을 못하고 다음 날이 돼서야 연락이 왔다.

 

본청 납세자보호과에서도 "불복청구기간 내에는 고충민원을 신청할 수 없다"고 하기에 "어디 그런 규정이 있느냐?"고 반문했더니, '지시나 지침 등으로 세무서나 지방청에 내려 보내서 그렇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불복청구기간 내에 있는 사안에 대해 처리해 주는 것은 안되고, 불복청구기간이 경과해야만 초법적으로 처리할 수 있다는 발상은 과연 정당한 것인가?

 

이번에 보니까, 일선에서부터 본청에 이르기까지 자기의 고유사무임에도 불구하고 몇조문 안 되는 사무처리규정도 제대로 아는 직원이 없었고, 본청에서는 관련 사무처리규정에 뚜렷한 규정이 없으면, 납세자에게 불리하게 적용하도록 세무서나 지방청에 지시나 지침 등을 내려 보내고 있는 것이다.

 

또한, 2008년5월1일 개정된 납세자보호사무처리규정을 들어서 '세무서장이 일단 처리한 고충민원에 대하여는 지방청장이나 국세청장이 이를 다시 다룰 수 없다'고 한다.

 

그러나 일반 국민들은 국세청 홈페이지(국세법령정보시스템)에 현재까지도 게재돼  있는 '2004년11월16일 개정된 납세자보호사무처리규정(국세훈령 제1575호)' 외에는 알지 못한다.

 

'국민과 관계있는 훈령은 공포돼야 비로소 효력을 갖는다'는 것이 상식이거늘, 공포도 하지 않은 훈령을 갖고 '된다' '안된다' 말하는 것은 국민을 우롱하는 처사가 아니고 뭐란 말인가?

 

고충 민원인을 상대로 관련 규정을 사무적으로 따져서 내치는 것이 국민이 원하는 '납세자보호담당관제'란 말인가? '납세자 보호'라는 말이 낯 뜨겁지도 않은지? 필자가 보기에는 '양두구육(羊頭狗肉)'이라는 말이 딱 맞는 것 같다.

 

납세자의 고충민원을 적극적으로 검토해 주기는커녕, 민원인이 법에 무지(無知)하다는 점을 악용해 요건(要件) 등이나 트집잡아, 처리 자체를 거부하는 '납세자보호담당관제의 존재 이유'에 대해 국세청은 심각하게 고민할 때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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