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원유가의 급등과 함께 국내 자동차용 연료가격도 빠르게 상승하면서 일각에서 유류세 인하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개인용 자동차를 이용하는 사람들의 수가 많다 보니 대선판에서도 그 목소리를 무시하지 못하게 되어 주요 후보들의 감세 후보목록에 유류세가 아주 높은 우선순위로 올라가게 됐다. 감세 테마에다가 서민, 민생 등의 수식을 붙여 그럴듯한 득표공약이 될 것으로 계산한 것 같다. 이제 정말 유류세를 낮춰야 할 것인가?
유류세를 낮춰야 한다는 가장 중요한 명분은 유류세가 서민생활을 압박한다는 것이다. 서민을 어떻게 정의하는 것인지 명확하지 않지만 길거리에 가득한 중대형 자동차들을 바라보면 서민의 생활안정을 위한 유류세 인하라는 명분은 명치에 걸려 잘 내려가지 않는다. 기름 값이 비싸다고 느낀다면 대중교통수단을 주로 활용하거나 꼭 자동차가 필요한 경우에는 소형차나 경차를 많이 활용해야 할 것인데 우리나라의 거리 분위기는 전혀 그렇지 못하다. 물론 마을버스, 버스, 그리고 지하철을 몇번씩 갈아타면서 힘들게 출퇴근하는 서민들도 많이 있다. 그리고 꼭 자동차가 필요해서 경차나 소형차를 타고 다니는 서민들도 많이 있다. 그러나 중대형 자동차를 타고 혼잡한 거리에서 그 비싼 기름을 유유히 태울 수 있는 분들을 서민이라고 부르는 것은 좀 모욕적이지 않을까 생각된다.
유류세를 이렇게 계층의 논리로 평가하는 것 자체가 잘못이다. 물론 특별소비세를 처음 만들 때는 그래도 주유소에 가서 자기 자동차에 기름을 넣을 수 있는 사람들은 정말 특별한 사람들이었다. 그랬었다고 하더라도 소득분배의 문제를 소비세로 대응하려 했던 시도는 바람직하지 못한 것이었다.
특별히 자동차 연료에 대한 소비세는 누구나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매우 중요한 정책적 기능을 가지고 있다. 도심지역의 대기오염, 도로의 혼잡, 도로의 파손, 그리고 이산화탄소 배출에 의한 지구 온난화 등 여러 형태의 사회적 비용을 야기하는 행위에 대해서 그 비용의 일부라도 원인제공자가 부담하도록 하는 대표적인 장치가 바로 유류소비세이다. 이론적으로는 사회적 한계비용을 그 원인자가 완전하게 부담할 때 그러한 사회적 비용발생행위가 최적화된다. 실제로 유류세 부담이 이러한 사회적 비용을 충분히 징수하는 것인지 턱없이 모자라는 것인지를 판단하기는 매우 어렵다. 그러나 충분히 부담시키고 있지 못하다고 짐작할 수 있는 근거는 상당히 있다. 예를 들면 교통개발연구원에서 추정한 2005년의 교통혼잡비용은 23조원을 상회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나 2005년도의 교통세 수입은 10조3천억원에 불과했다. 개선될 줄 모르는 대도시의 대기오염, 해마다 투입하는 막대한 도로 보수비용 등을 고려하면 유류소비자들이 부담하는 세금은 그들이 야기하는 사회적 비용의 상당히 작은 부분만을 부담하고 있다는 짐작을 할 수 있다. 이렇게 본다면 유류세는 올리면 올렸지 내릴 세금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우리의 유류세는 종량세로 되어 있다. 기름 값이 올라도 세금은 기름 사용량에 비례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세금이 더 오르지 않는다. 기름 값이 오른다고 기름소비와 관련된 사회적 외부비용이 더 늘어난다고 볼 수 없기 때문에 종량세로 한 것은 논리적으로 타당하다. 그러나 인플레이션 등을 생각하면 사실상 유류세율은 낮춰져 온 것이다. 기름 값이 물가보다 다소 빠르게 오른다고 하더라도 소득증가에 따라 시간의 가치나 깨끗한 대기에 대한 지불용의가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매년 종량세율을 정확하게 조정해 주지 못할 바에야, 전과 같이 유류세를 가격에 일정비율로 과세하는 종가세로 환원하는 것이 오히려 타당할 것으로 판단된다.
물론 세금으로 거둔 돈은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그런데 그 점에서 우리 정부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세금을 줄여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이다. 감세주장의 한 축은 재정운영이 방만하기 때문에 효율화해 줄일 여지가 상당히 있다는 평가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러한 평가에는 필자도 크게 동의하는 편인데 이러한 이유 때문에 감세를 해야 한다면 그것은 단연 가장 비효율적인 세금 즉 법인세에서부터 시작돼야 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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