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우리 국민이 부담한 국세는 138조원에 이른다. 부가가치세, 소득세, 법인세는 세수규모가 가장 큰 3대 기간세목이다. 각각의 세수는 38조1천억원, 31조원, 29조4천억원으로 국세 총액의 71.3%를 차지했다. 나머지 세목은 상당 부분 소비세 등의 간접세가 많다. 기간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지만, 국세의 경우 직·간접세의 비중이 대체로 비슷한 편이다.
세목별 또는 세원별 세수비중은 경제발전단계에 따라 영향을 받는다. 일부 예외적인 경우가 없지는 않지만, 대체로 저개발상태 또는 경제발전 초기에는 소비과세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국민들의 상당수가 절대빈곤상태에 있거나 또는 소득수준이 충분히 높지 않은 경우에는 소득세 과세대상자의 범위가 넓지 않아 과세저변이 취약한 경우가 많다. 국민 대다수의 소득세 담세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과세당국이 소득세를 중과하고자 하더라도 소기의 성과를 거두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소득수준이 낮더라도 생존을 위해서는 최소한의 소비생활을 영위한다. 그러므로 소비지출을 대상으로 과세하면 저개발국이라고 하더라도 소득과세에 비해 넓은 세원을 확보할 수 있다. 따라서 저개발국에서는 자연스럽게 소비과세에 의존하는 경향이 높다.
경제학적 관점에서 본다면 단순한 세율체계를 지닌 일반소비세(예: 매상세, 부가가치세 등)는 누진세율 체계를 지닌 소득세에 비해 자원배분의 왜곡현상이 작다. 따라서 소득과세보다는 소비과세가 경제발전을 유도하는 데 상대적으로 유리한 측면이 있다. 더욱이 자본축적이 미흡한 상황이라면 소비과세를 통해 소비억제 효과를 거둠으로써 저축 장려를 통한 자본 축적의 기회를 제공해 준다는 점에서 많은 후진국에서 소비과세가 선호되기도 한다.
경제발전을 통해 개발도상국 또는 중진국의 대열에 들어서면, 국민들의 소득기반이 확충됨에 따라 점차 소득과세의 비중이 높아지는 경우가 많다. 소득증대에 따라 소득세 담세능력을 지닌 국민들의 비중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경제성장이 지속되어 선진국 대열에 근접하면 소득기반 및 소비저변이 대폭 확대되는 만큼 세원별 과세기반이 골고루 넓어지는 경향이 있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현재 우리나라가 그런 단계에 도달한 것으로 판단된다.
우리나라는 인구의 고령화가 급속히 진전되고 있다. 출산출이 세계최저수준으로 떨어지면서 고령화 추세는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65세 이상 노인인구의 비중이 70년에는 3.1%에 불과하였지만, 90년 5.1%, 2000년 7.2%, 2005년 9.1%로 고령화가 매우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인구가 고령화되면 그만큼 생산가능연령인구의 비중이 줄어든다. 이는 역으로 생산가능연령인구 1인당 부양해야 되는 노인인구 수가 증가함을 의미한다. 20∼64세 인구를 생산가능연령인구라고 하면 그 비중이 65.4%(2000년)로 상당히 높다. 따라서 아직 고령사회에서 예상되는 문제가 심각하지는 않다. 그렇지만 노인인구 비중이 2030년에 24.1%, 2050년에는 37.3%에 이르러 국민들의 1/3 이상이 노인인구로 구성되는 시점에 이르러서는 그런 문제가 상당히 심각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고령사회가 될수록 정부의 재정부담은 늘지만 생산가능연령인구의 비중이 줄어들기 때문에 소득세 기반의 소득과세 비중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만약 부족한 재원을 충당하기 위해 지나치게 소득과세를 강화하면 자칫 생산감소라는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
소득세는 고소득층일수록 높은 세율로 누진과세라는 특징이 있다. 고소득층에 고율과세함으로써 형평과세를 통해 소득재분배 효과를 얻는다. 고소득층일수록 생산성이 높은 사람들의 비중이 높은데 이들에게 높은 세율로 과세하면 그만큼 고소득층의 근로·사업의욕을 떨어뜨리는 부작용이 있다. 형평과세에 대한 일종의 비용으로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누진과세를 통한 형평과세의 범위는 소득재분배라는 편익과 생산성 하락이라는 비용의 대소관계를 비교하여 결정하여야 한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고령사회가 진전될수록 생산왜곡효과가 큰 소득세보다는 소비저변이 넓은 소비과세에 좀 더 비중을 많이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요약하자면 경제발전 초기에는 소비과세에 치중할 수밖에 없는 현실적인 제약이 있다. 경제가 발전할수록 소득과세 비중이 높아지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노인인구가 높은 선진국에 도달하면 불가피하게 소비과세 비중을 높일 수밖에 없는 여건이 도래할 수 있다. 최근 노인인구가 급속히 증가하고 있어 우리나라도 제반 과세환경이 크게 바뀔 것으로 예상된다. 지금 당장 큰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시급히 세원조정을 위한 조세체계의 개편이 필요하지는 않다. 그렇지만 장기적으로 소비과세 비중을 높여야만 하는 고령사회의 도래 시점에 도달하기 전에 충분히 시간을 두고 조세체계의 개편을 준비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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