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부터 조세정책은 소득재분배의 중요한 수단으로 인식됐다. 누진세율체계가 바로 그것이며, 대부분의 국가가 이를 염두에 두고 조세정책을 수립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소득세는 4단계 누진세율구조로 돼 있으며, 소득수준이 낮은 절반 정도는 아예 세금을 내지 않는다. 누진세율 체계로 돼있는 재산세 역시 소득재분배를 고려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종합부동산세는 일부 부유층에게만 적용되는 세금이다.
그런데 현재 우리나라 조세의 소득재분배 기능이 서구의 선진국들보다 약하므로 포괄적 소득세제 등을 통해 조세의 소득재분배 기능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이기에 앞서 몇가지 중요한 문제를 인식할 필요가 있다.
선진국의 조세체계는 오늘날과는 사회·경제적 환경이 많이 다른 시기에 오랜 역사적 과정을 통해 성립됐다. 그 시기에는 국민의 부에 대해 국가가 상당한 정도의 통제를 할 수 있었던 시기로서 고도의 누진세율 체계의 폐해가 크게 드러나지 않았다. 그러나 80년대이후 금융 및 산업활동의 자유화·세계화가 확산되고, 인터넷 등 통신기술의 혁신이 일어나면서 조세정책 환경이 크게 변화됐다. 고소득층에 대한 지나치게 높은 세율은 세원의 유출을 초래할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높으며, 교묘한 절세전략을 활용한 조세회피가 많이 발생해 누진세율체계가 실제로 법이 의도하는 결과를 가져오는지 의문을 갖게 됐다. 결과적으로 대부분의 선진국들이 앞다퉈 소득세 최고세율을 인하하고 누진도를 완화하게 됐다. 이러한 변화는 소득세의 누진도가 더 높았던 국가에서 더 빨리 진행됐다. 보다 바람직한 정책을 수립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변화를 정확하게 인식하고 그 원인과 효과를 면밀하게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
또다른 이슈는 양극화 해소를 위한 재원 마련을 목적으로 증세가 필요한지 여부이다. 이에 대해 정부는 재정을 절약하고 조세감면을 축소하며, 숨겨진 세원을 발굴하겠다고 했다. 그러고 나서도 양극화 해소 재원마련을 위해 다른 방법으로 세금을 증가시킬 필요가 있는지는 정확하게 분석해 봐야 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재정 절약과 양극화 해소 재원마련은 구분해서 생각해야 한다. 양극화와 관계없이 국가는 당연히 재정을 절약해야 하며, 비효율적인 조세감면이 있다면 축소해야 하고, 비정상적으로 숨겨진 세원은 발굴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공공재원에 여유가 생긴다면 세금을 축소해야 할 것이다.
잉여재원을 납세자에게 돌려주지 않고 양극화 해소 또는 소득재분배 재원으로 활용하려 한다면 정부는 그 재원을 납세자들로부터 온 것임을 분명하게 밝히고 납세자의 동의를 구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하지 않을 경우 재원조달 과정에서 납세자들이 느끼는 한계비용이 정확하게 반영되지 않아 납세자들이 생각하는 적정수준보다 많은 지출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최근에 논의되고 있는 근로소득보전세제(EITC)를 포함해 소득재분배라는 것이 대체로 지속적인 지출을 요구하는 것이며, 시간이 지남에 따라 지출이 증가하는 경향이 있다. 그 부담은 궁극적으로 납세자들이 질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세금을 납부하는 납세자의 고통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가장 바람직하기는 잉여재원이 있다면 그것은 납세자에게 돌려주고 양극화 해소 재원은 새로운 방법으로 납세자의 동의를 얻어 징수해 새 제도의 도입에 요구되는 납세자의 고통을 정확하게 노출·반영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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