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검색

구독하기 2025.06.20. (금)

[시론]납세자들에 대한 국가의 의무

곽태원 서강대 교수

세금은 무엇이며 왜 내야 하는가?

어떤 사전에 보니까 조세는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그 경비에 충당할 재력을 얻기 위해 반대급부없이 일반 국민으로부터 강제적으로 징수하는 금전 또는 재물'이라고 정의돼 있었다. 국가가 강제적으로 징수한다는 특성을 갖고 있고 납세자들은 그것을 의무로서 받아들이도록 돼 있다. 요컨대 국민은 납세의 의무를 갖고 있기 때문에 세금을 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좀더 본질적인 측면을 살펴보자. 국가의 강제력 혹은 납세의무의 원천은 무엇인가? 이런 질문에 대한 표준적인 대답은 소위 조세법률주의에서 찾는 것이 보통이다. 그 원천이 결국 국민의 동의에 의한 것이라는 대답이다. 즉 개인에게는 강제적으로 적용되는 것이지만 크게 보면 국민의 자발적 합의에 근거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국가와 국민간의 자발적 거래로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일방적으로 국민이 돈을 내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제공하는 공공서비스를 소비하는 대가를 조세라는 형태로 지불한다는 것이다. 조세법률주의의 바탕은 이와 같은 경제적 거래의 성립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런데 강제성이라는 특이한 조건이 요구되는 것은 이러한 거래가 거래되는 재화의 성격상 개별적으로 이뤄지지 못하고 집합적으로 이뤄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 때문이다.

조세를 국민과 국가간의 집합적인 거래로 파악한다면 납세의 의무와 마찬가지고 국가도 거래당사자의 일방으로서의 의무를 져야 마땅하다고 할 수 있다. 거둬간 돈에 상응하는 양질의 공공서비스를 공급할 의무를 갖는 것이다. 돈만 거둬가고 국민이 원하는 공공서비스는 제대로 공급하지 않는 국가가 있다면 그러한 국가는 조만간에 해체되고 말 것이다. 마치 부실기업이 시장에서 퇴출되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

국가가 제공해야 하는 공공서비스 중에서 가장 기초적인 것이 가장 우선적으로 공급돼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그 가장 기초적인 것들은 두말할 것 없이 외교와 안보 및 치안 등이다. 물론 국가의 다른 기능들도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일단 국민이 내외의 위험으로부터 보호받는다는 것은 어떠한 서비스보다 중요하며 국가가 존재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여러가지 사태를 보면서 정말 우리 정부가 납세자들에 대한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고 있는가를 반문하게 된다. 예를 들면 최근 평택사태에서 시위대들이 국가가 설치한 철조망을 임의적으로 훼손하고 진입을 금하고 있는 곳에 무단침입해 공무집행자들에게 폭력까지 행사했다는 보도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가? 공권력이 치안을 제대로 유지할 능력이나 의지가 매우 결핍돼 있다는 것이 아닌가? 이런 일이 평택에서 처음 일어난 것도 아니다. 국민들에게 불편이나 위해를 가져오는 행위, 국가의 외교나 안보에 부정적인 영향을 현저히 미치는 행위, 그리고 경제발전을 괄목할 만큼 저해하는 행위 등을 막아달라고 국민들은 혈세를 부담한다. 어떤 행동의 결과를 예측 가능하게 함으로써 불필요한 분쟁과 혼란을 막자고 법과 규칙을 만들고 그것을 투명하게 집행해 달라고 세금을 부담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공권력은 법질서와 규칙을 투명하고 공정하게 집행하는 일을 포기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 때가 너무 많다.

외교와 안보측면에서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국민들이 안심하고 생업에 종사할 수 있도록 외부로부터의 잠재적 혹은 현재적 위험에서 국민을 지켜주는 것이 국가가 제공해야 할 가장 우선순위가 높은 공공서비스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세련되지 못한 즉흥적 외교행태나 효과적이지 못한 안보전략을 갖고 국민들을 불안하게 한다면 어떻게 세금을 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정부와 납세자간의 거래가 집합적인 것이라고 해도 결국은 개인적인 것이 될 수밖에 없다. 개인의 입장에서는 정부에 내는 세금과 정부로부터 받는 혜택의 가치를 비교한다. 그리고 정부로부터 받은 혜택의 가치가 세금보다 작다면 납세자들은 당연히 반발할 것이다. 반발의 한가지 방법은 다른 나라로 이민을 가는 것이다. 몇사람 세금 때문에 이민가는 것이 무슨 대수냐고 할지 모르지만 그 사람들이 생산성이 높은 생산요소를 많이 갖고 있는 사람들일 가능성이 높다는 데 문제가 있다. 앞으로는 국가간에도 '좋은' 국민을 영입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국가의 경쟁력은 납세자들에 대한 책임을 성실하게 그리고 효율적으로 이행하는 데서 나온다.


배너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