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우리나라 재정의 건전성에 별다른 문제가 없는 것 같다. 사실 국가채무가 몇십조 늘어난다고 해서 당장 나라가 어떻게 되는 것도 아니고 국민들이 못 살게 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정말 그렇게 생각해도 괜찮은 것인가?
우선 정부의 해명자료들의 문제점들을 좀 생각해 보자. 정부는 종종 채무를 볼 때는 채권도 같이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소위 순채무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우리가 채무를 우려하는 것은 적자재정의 지속과 이에 따른 재정의 지속가능성 문제 때문이기도 하지만 채무규모가 커질수록 국가의 위험이 더 증대한다는 점 때문이기도 하다. 대내외 여건의 돌발적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유연성에 영향을 주는 더 중요한 변수는 순채무가 아니라 총채무 규모이다. 많은 기업들이 막대한 채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유동성 문제때문에 부도사태 같은 불행을 당한다는 점이 무엇을 말해주는가?
GDP수준 1만6천달러 당시의 부채비율을 비교하는 것은 현재의 OECD 평균과 비교하는 것보다 훨씬 타당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하려면 불변가격기준으로 같은 소득수준이었던 기간을 찾아야 한다. 그러나 정부의 자료는 분명하게 설명을 하고 있지 않지만 명목 1인당 GDP를 가지고 비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비교는 사실 그냥 현재의 OECD 평균과 비교하는 것보다도 못하다. 국민을 오도하기 때문이다.
IMF기준과 OECD기준의 차이에 대해서는 필자가 잘 모르기 때문에 할 말이 별로 없다. 그러나 정말 기준이야기를 하려면 IMF기준으로 계산한 다른 나라들의 부채비율을 같이 제시해 줄 수는 없는 것이었는지 궁금하다. 나라마다 부채의 내용이나 특성이 다를 수 있기 때문에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기준이 있다고 해도 그 기준에 포함돼 있지 않으면서 특정한 국가에만 있는 중요한 부채가 있다면 그것은 당연히 포함시켜야 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금년에 대폭적인 부채의 증가가 있었지만 그 내용의 대부분은 금융성 부채의 증가이거나 공적자금의 국채 전환에 따른 것이라는 주장도 따져볼 여지가 있다. 금융성 채무의 증가도 앞에서 말한 것처럼 국가가 필요할 때 바로 회수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기 때문에 국가의 위험에 영향을 주는 요인이라는 점은 마찬가지이다. 나아가서 그러한 것을 다 인정한다고 해도 적자성 채무의 증가가 2005년 한해 중에 GDP의 1.3%인 10.3조원에 달한다는 것이 그렇게 간단한 일인가? 이것은 전체 적자성 채무 잔액의 17.6%에 달하는 것으로 여전히 매우 빠른 증가라고 할 수 있지 않은가?
마지막으로 OECD 평균과 비교해 절반도 안되는 것을 가지고 왜 그렇게 요란하게 떠드는지 모르겠다는 태도는 정말 우려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우리는 국가채무가 문제가 되지도 않던 시기에 맥없이 소위 IMF 위기를 당했다. 그때 그처럼 많은 국가 채무를 가지고 있던 다른 OECD 국가들은 끄떡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 무엇을 말하는가? 그런 나라들의 경제체질이나 정책당국의 위기대응능력이 우리보다 한참 위에 있다는 것이다. 국가채무비율뿐만 아니라 조세부담률이나 사회복지비 비중 등 주요 변수들을 OECD국가 평균과 단순비교해서 아직도 그쪽으로 따라갈 여지가 많다는 주장을 하는 것은 심하게 말하면 황새를 흉내내려는 뱁새의 무모함과 같은 것일 수 있다. 통일과 안보 등 다른 OECD국가가 가지고 있지 않은 심대한 위험요인은 바로 우리 재정의 잠재적 위험요인이라고 볼 수 있다는 점까지 생각한다면 아직도 OECD 타령이나 하고 있는 정부당국에 대해 절망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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