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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하기 2025.06.20. (금)

[시론]통관업의 잔재와 부작용

박광수(朴光洙) 한국관세사회장

우리나라 관세사제도의 변천과정을 살펴보면 3단계로 구분된다. '세관화물취급인'이라는 명칭으로 불리던 때, '통관업자'라고 불리던 때, 그리고 '관세사'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는 지금이다.

당시 관세법 규정에 의하면 세관화물취급인은 '통관절차의 취급을 업으로 하는 자'였고 통관업자는 '통관절차를 대행하는 것을 업으로 하는 자'로서 모두 '업자'였다. 세관장의 허가를 받아 개업하고 통관절차의 '대행'에만 종사하는 단일(單一)업무였다.

관세사라는 명칭을 사용하게 된 것은 제21차 관세법 개정('75년12월22일) 때였다. '관세사'는 시험에 합격해 자격을 취득하며 관세법 제156조에서 '관세사는 통관업과 납세자의 위탁을 받아 이 법에 의한 청구·이의신청 기타사항(소송을 제외한다)을 대리하는 업무 및 관세에 관한 상담을 행하는 것을 그 직무로 한다'라고 규정해 관세사는 자격사이며 그 직무는 '통관업', '불복청구 등 대리', '관세 상담'의 세가지 업무였다. '통관업'에 대하여는 관세법 제2조 정의에 규정을 신설해 '통관업이라 함은 화주의 위탁을 받아 세관에 대해 물품의 수출·수입·반송에 관한 절차 또는 보세구역에의 물품의 반출·반입 등 이에 부수되는 절차(이하 '통관절차'라 한다)를 대리하는 업무를 말한다'라고 정의했다.

관세사의 직무에서 '통관업'용어가 삭제된 것은 제23차 관세법 개정('78년12월5일)에 의해서였다. 제156조에서 관세사의 직무를 1호 내지 4호로 나열하면서 '통관업'이라는 용어 대신에 제1호 및 제2호에 '세번·세율의 분류 과세가격의 확인과 세액의 계산'과 '수출입의 신고와 이와 관련되는 절차의 이행'을 삽입했고 제3호는 불복청구 등 대리, 4호는 관세상담으로 종전의 직무와 같았다. 그러나 관세법 제2조의 통관업 정의는 그대로 살아있었다.

관세사에 관한 규정이 독립된 법률인 '관세사법'으로 제정('95년12월6일)되면서 관세법 제2조에서 통관업 정의는 삭제됐으나 새로 제정된 관세사법 제3조 '통관업의 제한'규정에 '관세사가 아니면 타인으로부터 의뢰를 받아 제2조의 규정에 의한 업무(이하 '통관업'이라 한다)를 행할 수 없다'라고 옮겨 규정됐다.

이 규정은 지금도 살아있다. 그러나 이 규정은 올바로 표현된 규정이 아니다. 일반적으로 '업'이라 함은 '영업', '직업' 또는 '업종'을 의미하는 말이므로 '통관업'이라고 하면 통관을 맡아 하는 영업 또는 업종으로 해석돼 복합운송주선업체들로부터 '통관업'겸업을 허용해 달라는 주장에 시달리고 있다.

이와 같이 관세사의 직무에서 '통관업'이 삭제되고 세번 분류, 과세가격 확인, 세액의 계산, 통관절차의 이행 등 구체적인 직무로 바뀐 것이 제23차 관세법 개정('78년12월5일) 때였으므로 27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통관업'의 잔재가 아직 도처에 남아 있다.

우선 관세사들이 서로 '사장'으로 호칭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점은 잔재가 아니라 시간이 갈수록 오히려 확산되는 조짐이다. 그 결과 사무장을 '전무'로, 그 아래 직원을 '상무'로 호칭하는 관세사무소가 생긴다.

그리고 관세사들이 정시에 출근해 업무를 챙기는 자격사의 직업의식에 소홀하다는 점이다. 관세사는 화주를 관리하며 관세사무소를 운영하면 족하고 통관 등 업무는 직무보조자가 수행하는 것으로 인식하는 관세사들도 있다. 그리고 일주일에 이삼일 출근하는 것을 본인은 물론 주변에서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와 같은 잔재로 인한 부작용이 만만치 않다. 관세사 제도의 발전을 저해하고 관세사들로 하여금 자기계발과 자질향상의 필요를 느끼지 못하게 한다.

첫째 부작용은 사무장 등에게 명의를 대여하거나 그들과 관세사무소를 지입식으로 운영하는 불법행위가 근절되지 않다는 점이다. 비록 외형상으로는 관세사가 업무를 행하는 양 형식을 갖추고 있더라도 실질에 있어서는 관세사가 업무를 관장·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사무장 등이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면 명의대여에 해당한다는 것이 대법원의 판례이다.

둘째 부작용은 통관물량을 유치하기 위한 과당경쟁과 그로 인한 통관질서 문란행위가 극심하다는 점이다. 통관보수 덤핑, 특히 복합운송주선업자 등 물류업자에게 통관물량 주선의 대가로 30∼40%의 리베이트를 제공하기도 한다.

셋째 부작용은 통관업무 이외의 여타 직무가 보수를 받는 직무로 정립되지 못한다는 점이다. 관세사는 다만 단순 통관대행에만 종사하는 사람으로 인식하고 관세 상담, 불복청구, 관세조사시 의견진술 등 법률업무에서 제대로 신뢰받지 못하거나 화주가 별도의 보수를 지급하는 직무로 인식을 하지 아니하고 통관에 부수되는 종속 업무로 인식한다.

넷째 부작용은 관세사의 전문화, 차별화된 직무서비스 제공을 저해한다는 점이다. 관세사는 관세전문가로서 전문지식이나 업무능력에 따라 각자 받는 보수가 달라야 한다. 또한 업무의 난이도나 위험의 정도에 따라 보수가 달라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세사 보수는 경쟁에 의해 낮아지기만 한다.

다섯째 부작용은 전술한 바와 같이 물류업체, 특히 복합운송주선업체들이 관세사를 자기들과 같은 '업자'로 오인하고 자기들도 '통관업'을 겸업해야 한다고 억지 주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금년도 관세사법이 개정되면 관세사법에 남아있던 통관업의 잔재를 털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관세사 자신들의 의식개혁이 중요하다. 관세사 스스로 전문자격사로서 자긍심을 가지고 직업윤리에 투철해야 한다. 또한 납세자의 권익보호, 공정한 납세 이행, 통관 적법성 제고 등 관세사의 공익적 기여를 국가가 인정해야 한다.

관세사의 직무에서 통관업이란 용어가 삭제된지 근 30년이 지났음에도 잔재가 남아 있고 그로 인한 부작용이 만연돼 있다면 이는 국가의 책임이 더 크다. 관세사제도가 근본 취지대로 기능과 역할을 하도록 국가가 육성, 관리해야 한다. 관세사의 책임으로 탓할 일이 아니다.

※본면의 외부기고는 本紙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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