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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하기 2025.06.20. (금)

[시론]불공정무역 피해구제와 관세사 역할

박광수(朴光洙) 한국관세사회장

외국 수출업자 또는 외국정부의 불공정무역행위로부터 국내 생산자 또는 산업이 피해를 입는 경우 그 구제를 위해 '불공정무역행위조사및산업피해구제에관한법률'(이하 '불공정무역법률'이라 한다)이 제정돼 있고 그 업무는 산업자원부 산하 무역위원회가 관장한다.

'불공정무역법률'은 지적재산권 침해 물품 및 원산지 허위표시 물품의 수입에 의한 피해, 특정물품의 수입증가로 인한 피해, 덤핑행위로 인한 피해, 외국 정부 또는 공공기관의 수출 또는 생산 보조금 지급에 의한 피해, 외국인의 서비스 공급증가로 인한 피해를 구제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 중 서비스 피해를 제외한 모든 사항은 이미 관세법에 규정돼 있는 사항이다.

'불공정무역법률'에 의하면 지적재산권 침해물품, 원산지 허위표시 물품, 품질 등 허위표시 물품의 수출입을 불공정무역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물품의 수출입은 불공정 무역행위가 아니라 관세법상 부정무역행위에 해당한다. 상표, 원산지, 품질 등은 상품의 가치를 결정하는 중요 요소로서 관세행정상 과세가격 산정 또는 관세율 적용의 심사를 위해 필요한 사항일 뿐만 아니라 소비자 보호를 위해 소비자에게 알려줘야 할 사항이므로 세관에 수입신고할 때 반드시 신고해야 하는 사항이다. 따라서 이를 허위로 표시하거나 허위 신고하는 경우에는 관세법상 허위신고에 의한 부정무역이 성립된다. 

불공정 무역행위의 개념은 미국의 '74년 통상법 제301조와 '88년 종합무역법 슈퍼301조에서 비롯됐다. 덤핑을 하거나 정부 또는 공공기관으로부터 보조금 또는 장려금을 지급받고 수출하는 행위를 공정하지 못한 무역행위로 규정하고 이러한 행위를 한 상대국 또는 무역업자에 대해 보복조치를 앞세워 시정을 요구하거나 특히 후진국에 대한 시장개방 압력수단으로 활용했다.

덤핑관세 및 상계관세는 관세법에 상세히 규정된다. 담당기관도 미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관세청이 관장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86년도 GATT 반덤핑협약에 가입하면서 관세청이 반덤핑제도의 운영에 대비해 호주와 카나다 관세청에 과장급 공무원을 1년이상 장기 파견해 실무를 익히게 하는 등 준비를 했었다. 그리고 덤핑가격 조사업무는 관세청이 담당했으나 '95년도 무역위원회로 이관돼 지금에 이르고 있다.

지적재산권 침해물품 및 원산지 허위표시 물품은 관세법 규정에 의해 통관이 금지된다. 특히 지적재산권 침해물품은 'WTO 설립을 위한 마라케쉬협정' 부속서 '무역관련 지적재산권에 관한 협정'에 의거, 합법적 국경조치로서 통관금지가 인정된다. 따라서 위반물품이 사전적발되는 경우 통관금지뿐만 아니라 위반물품이 이미 통관된 사실을 사후에 알았을 경우 세관장은 당해 위반물품의 보세구역 반입을 명할 수 있고 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세관장은 물품원가 또는 2천만원 중 높은 금액이하의 벌금을 처분할 수 있다.

특정물품의 수입증가로 인한 산업피해 구제는 관세법의 긴급관세 조항에 근거한다. 

이와 같이 '불공정무역법률'에서 규정하고 있는 피해구제는 서비스에 의한 피해를 제외하고 모두 관세법에 규정돼 있는 사항이다. 다만 이 업무를 무역위원회에서 담당하기 위해 법률을 제정했으므로 관세법 규정과 중복될 수밖에 없다.

이와 같이 '불공정무역법률'에 규정돼 있는 구제 신청, 조사 진행, 피해 판정 및 구제조치 등 제반 사항은 본질적으로 관세법 사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세전문가인 관세사는 그 피해구제에 관한 업무를 대리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2003년도에 무역위원회가 관세사, 공인회계사 등 자격사에게 피해구제 대리를 허용하는 입법안을 마련했으나 대한변호사협회의 반대로 무산됐다. 반대의 요지는 피해구제에 관한 대리는 법률사무이며 법률사무는 변호사법에 의해 변호사의 고유직무라는 이유였다.

관세분야는 관세사의 직무영역이다. 변호사의 경우 특수한 변호사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변호사는 일반 법률과 소송수행에 관한 지식만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호사법 규정에 의해 법률사무는 변호사에게 독점되는 것이므로 관세에 관한 법률사무라 하라도 관세사는 취급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법무부는 이러한 변호사의 주장을 무역위원회에 제출함으로써 변호사의 집단이기주의를 옹호했다.

그러나 DDA협상 결과에 의해 조만간 법률서비스 시장을 개방하지 않을 수 없는 현실을 감안할 때 변호사들의 이기주의는 더이상 용납될 수 없을 것이다. 무역위원회도 변호사협회의 반대에 손을 놓고 있기보다는 억울한 피해자의 구제와 국익보호를 위해 당당해질 필요가 있다.

첫째, 전문자격사는 해당 법률분야에서 소송대리를 포함해 법률사무를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 관세사는 관세법, 관세율표 등 관세에 관한 시험과목에 합격하고 자격을 취득한 전문자격사이다. 관세와 하등 관련없는 변호사가 변호사법 규정을 내세워 관세에 관한 법률사무를 독점하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둘째, 법률소비자의 소비 선택권이 보장돼야 한다. 부정무역 또는 불공정무역으로 인해 피해를 입고 조력이 필요한 사람에게 값싸게 이용할 수 있는 관세 전문가가 따로 있음에도 불구하고 비싼 수임료를 지불하고 비전문가인 변호사만을 찾아가도록 법률로 강제하는 것은 소비자의 인권을 침해하는 이기주의이며 횡포라 할 것이다.

셋째, '불공정무역법률'이 그 입법취지대로 공정한 무역질서를 확립하고 국내산업을 보호함과 동시에 억울한 피해를 신속히 구제하기 위해서는 구제절차에 대한 피해자의 용이한 접근이 보장돼야 한다. 관세사는 무역업자 또는 생산업자와 근접거리에 위치해 있다. 따라서 피해 발생 즉시 평상시 통관을 위탁하는 관세사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다.

넷째, '공정무역법률'에서 규정하는 구제절차는 사인(私人)간 다툼에 관한 사법(司法)절차가 아니다. 부정무역 또는 불공정무역의 피해는 자유무역질서의 오남용으로부터 발생되는 피해로서 국가가 방지 및 구제할 책임을 진다. 국가가 관세법 규정에 의해 공권력 차원에서 피해구제 신청을 받고 조치하는 행정(行政)절차이다. 따라서 변호사가 개입할 법률사건이 아니다.

※본면의 외부기고는 本紙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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