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한 논의과정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전부 다라고는 할 수 없지만 상당히 많은 경우에서 공통적인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 정부에서 보도를 한 것이건 기자가 스스로 찾아낸 것이건 정책담당자를 포함한 전문가 집단에서 논의되는 정책방향이 '증세방안'이라는 코멘트와 함께 보도되면 제일 먼저 네티즌들의 집중포화를 맞는다. 그 조치로 인해 세부담이 올라가는 사람들의 부정적인 반응은 물론이고, 인터넷, 신문·방송 등 매체를 통해 증세에 대한 우려가 퍼지면서 그 조치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는 사람들도 증세조치가 무차별적으로 또는 힘없는 서민들에게 집중적으로 떨어질 것 같은 두려움에서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뒤이어 정치인들의 반응이 나타난다. 야당은 물론 목전에 둔 선거에서 승리를 확신하기 어려운 형편에 있는 여당조차 제시된 안에 반대하고, 급기야는 행정부의 정책담당자도 새로운 안을 포기·유보하게 된다.
이러한 의사결정 과정은 무척 민주적인 것처럼 보인다. 관료나 전문가들이 제시한 안에 대해 국민들은 인터넷이나 언론을 통해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고 정치인들은 이러한 여론을 신속하게 반영해 안건이 의회에 도달하기도 전에 정책의 추진 여부에 대한 결정을 내려버린다. 인터넷이라는 통신수단이 없었더라면 상상하기 어려운 직접민주주의가 실현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오랫동안 조세정책을 연구해 온 경제학자의 관점에서 이러한 과정을 보면 아쉬움이 남는다. 조세란 정부가 재정수입을 확보하기 위해 반대급부없이 강제로 징수하는 금전을 말한다. 따라서 납세자는 가능한 한 세금을 적게 납부하려고 노력하고, 세금을 피하려는 노력은 경제의 효율성을 저해하므로 다양한 정책대안을 고려해 부정적인 효과가 적은 방법을 선택해야 한다. 또한 소득수준이 같은 사람들에게는 공평하게 동등한 규모의 세금을 부과해야 하며, 기왕에 세금을 징수하면서 소득이 많은 사람으로부터 더 많은 세금을 거둘 수 있으면 조세 자체가 소득재분배 수단으로 활용될 수도 있다. 작금의 논의 동향을 보면 조세정책 결정에서 이러한 종합적인 시각이 결여됐다는 생각이 든다.
어느 날 갑자기 정부가 이러이러한 정책을 시행하려 한다고 발표하면 그로 인해 세부담이 늘어나는 납세자는 당연히 반발할 것이다. 이를 가라앉히기 위해서는 확보된 세수입의 용도를 적절히 설명할 수 있어야 하며, 동일한 세수입을 확보하는 여러가지 대안 중 그 방법이 가장 효율적이라는 점을 입증해야 한다. 게다가 그 방법을 통해 소득분배가 개선될 수 있다는 점을 보일 수 있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세부담이 증가하는 납세자로부터 찬성을 얻어내지는 못할지라도 적어도 세부담이 증가하지 않는 납세자가 세부담이 증가하는 납세자에 동조하는 현상은 막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러한 기회조차 갖지 못한 채 세부담이 증가하는 납세자의 반발이 순식간에 사회 전체에 퍼지고 곧바로 정책이 폐기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그렇게 된 데에는 여러가지 원인이 있을 수 있는데, 인터넷 등 통신수단의 발전으로 인해 새롭게 생성된 국민과 정치권간의 새로운 의사소통 패러다임도 중요한 요인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정책 개발도 중요하지만 좋은 정책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패러다임 하에서 국민과 정치권이 종합적인 시각에서 정책안들을 비교·판단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방법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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