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개개인의 입장에서 볼때 증세와 감세는 의도가 어떠한 것이든지간에 주머니 사정을 직접 겨냥하고 있는 만큼 체감효과는 정반대이다. 양자 모두 나름대로 경제현실을 직시하고 이를 투영하고 있으며, 정책입안의 필요성과 타당성이 인정된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요소도 많지만 각각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증세는 당장 주머니를 가볍게 만들기 때문에 무조건적인 반대의견에 봉착하기 쉽다. 증세를 하면 직접적으로 국민들의 가처분소득이 줄어들고 민간부문의 자원이 공공부문으로 이동함으로써 민간부문의 경제활동이 위축될 수 있다. 또한 증세가 국민부담만 증대시키고 '큰 정부 만들기'만을 위해 사용된다면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증세의 필요성이 빈곤해소를 위한 복지지출 증대와 미래 성장동력을 지원하기 위한 저출산·여성노동 공급 해소 등을 위해 사용된다면 당장의 증세가 오히려 중·장기적으로 우리의 주머니를 두둑히 채워줄 수도 있기 때문에 일종의 투자가 될 수도 있다.
반대로 감세는 당장 주머니에서 정부로 빠져나가던 세금의 일부가 그대로 남게 되므로 환대를 받기 쉽다. 그외에도 감세를 통해 민간부문의 소비·투자활동이 활성화되면 그만큼 득이 된다. 그러나 감세의 경우에도 현재 빡빡한 재정여건을 감안할 때 당장 정부 빚, 즉 재정을 압박해 정부의 공공서비스 제공이 위축될 수도 있다. 감세가 자칫 국가부채를 누적적으로 증대시킨다면 그 부담이 부메랑이 돼 국민들에게 되돌아올 수도 있기 때문에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증세냐, 또는 감세냐를 선택하는 문제는 단순히 당장의 주머니 사정 변화에 근거해 결정하는 것은 옳지 않다. 증세 또는 감세를 결정하기 위해서는 그것 말고도 고려해야 할 요소가 무수히 많다. 양자간의 장단점이 복잡하게 얽혀있기 때문에 양자간에 대립된 주장만으로는 우열을 가리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두가지의 대립적인 정책방향 가운데 현재 시점에서 그리고 우리 다음 세대의 관점에서 볼 때, 보다 바람직한 것이 어떤 것인지를 선택하기 위해서는 철저한 검증과 이를 실천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국민적 합의 도출이 선행돼야 한다.
증세 주장은 심각한 빈곤문제와 노령화·저출산 등의 심각성에 대응하고자 정부의 역할을 증대시켜야 할 시대적 필요성이 인정된다는 점에서 수긍이 간다. 감세 주장의 경우에도 적절한 분야에서의 감세를 통해 하락추세를 보이고 있는 잠재성장률 수준을 끌어올려 경제를 회생시키고 이에 기반해 자연스럽게 재정 확충을 도모하고자 한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있다. 두가지 모두 지향하는 바가 당면 현안 및 국민경제의 장기 비전을 암묵적으로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증세와 감세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쉽지 않다.
최근 증세와 감세 사이에서 온통 나라 전체가 들썩이고 있는 현상은 어디선가 모르게 앞 뒤 순서가 바뀌어 논의가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어떤 것이든지간에 국민적 합의 도출과정이 선행되지 않았기 때문에, 따라서 과정상의 오류로 인해 나타나는 일종의 '아노미' 현상인 것으로 보인다. 즉 지향하고자 하는 정책방향에 대한 타당성·필요성에 대한 검증과 수단적 측면에서의 현실 적합성 및 실현가능성 등에 대한 분석에 앞서 선언적인 차원에서의 목표설정이 먼저 이뤄졌기 때문이다. 어떤 방향으로의 정책이 국민경제적 자원배분과 미래의 우리 모습을 투영한 장기비전에 기초해 타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지에 대한 사전적인 노력과 준비작업, 대국민 이해·설득과정이 좀더 충분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증세주장과 감세주장 모두 목표에 꿰어맞추기식의 세제개편을 논한다면 성공하기 어렵다. 보다 근본적으로 현행 조세의 불합리성·개선의 필요성 또는 경제환경 변화에 대응한 세제·세정의 개편 필요성에 기반했을 때에만 국민적 공감대 형성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지금이라도 결코 늦지 않았다. 현재의 재정여건과 향후의 재정전망에 대한 객관적인 사실관계와 심층적인 연구결과를 기초로 철저한 검증과 분석을 통해 밑그림을 다시 작성해야 한다. 이를 토대로 대토론회 등을 개최해 국민적 합의를 도출하고 동시에 수단적 측면에서도 합의를 이룰 수 있는 방안을 선택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증세와 감세' 논란은 결코 생산적인 논의가 되지 못하고 소모전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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