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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하기 2025.06.20. (금)

[시론]이상한 일

박광수(朴光洙) 한국관세사회장

신문 보도에 의하면 정부는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체결을 위한 협상을 빠르면 오는 4월부터 시작하기로 합의했다고 한다.

한·칠레간 FTA는 2004년4월1일 발효됐으며 향후 10년이내에 전품목의 96%에 대해 관세 철폐를 목표로 하고 있다. 한·싱가폴간 FTA는 작년 12월 국회의 비준동의를 받았으므로 금년 1/4분기 중에 발효될 예정이라 한다. 또한 스위스, 노르웨이, 아이슬란드, 리히텐슈타인의 4개국으로 구성된 유럽자유무역연합(European Free Trade Association)과의 FTA도 작년 12월에 협상이 타결됐다고 한다.

ASEAN 10개국과는 작년 12월 기본협정에 서명했으며 상품자유화에 있어서 97%를 자유화하되, 90%에 대해 관세를 철폐하고 7%에 대하여는 0∼5%로 관세를 경감하는 방식으로 하기로 합의했다고 한다. 이제 남은 문제는 구체적으로 해당 품목을 선정하는 작업과 협상만을 남겨놓고 있다.

일본과는 일찍이 2003년 10월 한·일 정상회담에서 협상 개시에 합의하고 그간 6차례나 회의를 개최했으나 아직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멕시코와는 협상을 개시하기로 작년 9월 합의했으며 남미의 브라질, 아르헨티나, 파라과이, 우루과이의 4개국으로 구성된 메르코스루(MERCOSUR), 그리고 인도와도 협상 체결을 위한 공동연구를 시작했다고 한다.

이와 같이 우리나라가 주요 무역상대국에 대해 FTA 체결을 추진하고 있음을 볼때 엊그제까지 만성적 무역적자에서 탈피하기 위해 온갖 정책수단과 행정력을 동원하던 때의 감회가 새삼스럽다. 일본으로부터의 수입을 억제하기 위한 수입선 다변화제도는 '99년6월30일까지 시행됐으며 세관검사, 원자재와 소비재에 대한 통관상 차별대우 및 통관지체 등 비관세장벽은 당연한 세관 기법으로 국제세관간에도 인정됐다.

WTO의 무역체제와 DDA 협상은 다자간 체제이다. 그러나 FTA는 지역주의로서 협정국끼리 잘 해보자는 것이다. WTO의 다자간 체제가 엄연히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FTA가 전세계 도처에서 성행하게 된 동기는 '92년도 EU의 출범과 이에 자극을 받아 미국이 '94년도 캐나다, 멕시코와 체결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이 효시라고 생각된다. 미국은 현재 17개국과 FTA를 체결하고 있으며 작년말 현재 WTO에 통지된 지역무역협정은 180건이며 이중 FTA가 117건에 달한다고 한다. 이와 같이 명칭도 자유무역협정에 한정하지 않는다. 예컨대 우리나라와 멕시코간에 개시하기로 합의한 협정명칭은 '전략적경제보완협정:SECA'이며 인도와는 '포괄적경제파트너십협정:CEPA'으로 부르기로 했다고 한다.

FTA는 기본적으로 상품의 자유무역에 관한 협정이므로 관세철폐가 주된 내용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상품에 대한 관세 철폐뿐만 아니라 서비스, 투자, 정부조달, 기술표준, 지적재산권 등 분야까지 포괄하는 것이 일반적 추세라고 한다.

그러나 협정에 포함되는 내용과 범위가 광범하든, 그리고 명칭이야 여하하든, FTA의 주된 내용은 해당 국가에서 생산된 상품에 대한 관세 철폐 내지 특혜 제공을 기본으로 한다. 또한 관세철폐 또는 특혜의 혜택 대상이 되는 상품은 해당국가를 원산지로 하는 상품이어야 한다. 그러나 해당국가내에서 전부 제조·생산되지 아니하고 만일 2개 국가 이상에 걸쳐 생산·제조됐다면 어느 경우에 그 국가를 원산지로 볼 것인가 원산지 판정이 필요하다.

이와 같이 FTA의 체결은 어느 품목에 대해 관세를 양허할 것인지, 완전철폐를 할 것인지, 일부를 경감할 것인지에 관한 관세정책 협상이고 원산지 판정에 관한 관세행정 협상이다. 협정의 체결은 통상외교에 관한 사항이므로 주무부서는 외교통상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세율과 원산지는 재정경제부와 관세청 소관의 업무이다

외교통상부의 통상교섭본부장 밑에 자유무역협정국이 있고 자유무역협정정책과 등 4개 과가 설치돼 있다. 그런데 그 직제에 관세에 관한 지식과 경험을 갖춘 전문가가 배치돼 있는지 알 수 없다. 직제에 배치돼 있지 않다면 주무부처인 재정경제부 또는 관세청이 협상을 주도하는지도 알 수 없다. 관세율 문제는 비록 그 세율이 낮다고 하더라도 국내 산업과 산업구조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더욱이 이론경제가 아니라 실물경제에 관한 사항이다. 따라서 협정체결의 실질적 추진은 마땅히 그 내용에 따른 주무부처의 전문공무원이 수행해야 할 일이다. 예컨대 농·수산물에 대해서는 농수산부 등 양허 대상품목에 관련된 부처의 의견과 해당 업계의 요구를 수렴하고 산업구조 전반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양허관세율이 책정되거나 원산지 판정기준이 수립돼야 한다.

우리나라는 UR협상때인 '94년 4월 통관서비스(Customs Clearance Service)에 대한 양허계획서를 GATT사무국에 제출했다. 따라서 우리나라는 DDA협상이전에 통관서비스를 개방한 결과가 됐다. 양허내용은 EU와 똑같은 내용이었다. 그런데 EU국가에는 관세사제도가 없다. 우리나라와 같이 관세사법도 없고 관세사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선박대리점, 하역업자 등 해운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업체의 직원이 통관대행에 종사할 뿐이다. 관세사제도가 없는 EU의 통관 개방을 그대로 베껴 우리나라 통관서비스를 개방한 것도 이상한 일이지만 주무부처인 관세청장과 협의는 고사하고 알리지도 않은 채 해운보조서비스에 통관을 포함시켜 양허계획서를 제출한 것은 해괴한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통관은 해운보조서비스가 아니다.

※본면의 기고는 本紙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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