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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하기 2025.06.25. (수)

[時論]의제(擬制)규정의 한계(상속, 증여세법을 예로)

김면규(金冕圭) 세무사


의제라는 말은 법률규정에서 많이 쓰는 용어로서 표준국어사전(을유문화사)에서는 '성질이 아주 다른 것을 법률상 같은 것으로 보고 동일한 법률상의 효력을 베푸는 일'이라 풀이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법률상 본래의 개념에 속하지 않는 것을 그 개념의 범주에 포함시키는 것으로서 상법 제5조의 '의제상인', 민사소송법 제150조의 '자백간주'와 동법 제266조의 '의제적 소 취하' 등의 예을 들 수 있다.

이러한 의제규정들을 가장 많이 쓰고 있는 것은 조세법이다. 조세법에서는 의제개념의 용어를 '…으로 본다'고 표현하기도 하고, '…으로 간주한다'고도 하며, '…으로 의제하여' 등 비슷한 뜻을 가진 용어들을 쓰고 있으며 그 가운데 상속세및증여세법은 무려 21개 조에 걸쳐 의제규정을 두고 있다. 이러한 의제규정들은 그 내용을 두가지 형태로 나눠 볼 수 있다. 그 하나는 본래의 개념을 확대하는 형태이고 또 하나는 본래의 개념을 축소하는 형태인데 대부분은 개념을 확대하는 규정들이다. 문제는 본래의 개념을 확대 또는 축소하는 의제규정이 국민에게 유리하게 되느냐 불리하게 되느냐 하는데 있다. 우선 의제규정이 국민에게 유리하게 되는 경우를 보면 법규의 내용이 애매하거나 효력의 한계가 명료하지 못한 경우에 이를 명백히 하는 취지에서 별도의 규정을 마련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상속세법에서의 피상속인의 신탁재산, 퇴직금, 보험금을 상속재산으로 본다는 규정 등이다. 이러한 경우에는 가급적이면 국민에게 유리한 개념으로 의제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왜냐하면 근대사적 의미의 법률은 국민의 권리를 보호하는 데서 비롯됐기 때문이며, 특히 조세법은 권력적 작용이 강한 법률이기 때문에 이러한 취지는 더욱 절실하게 요청되는 것이다.

다음으로 의제규정을 둠으로써 국민에게 불리하게 작용하는 경우이다. 조세법의 경우 대부분의 의제규정이 납세의무의 범위를 확대하는 규정들로서 상속세및증여세법이 가장 두드러진 예이다.

명의신탁재산의 명의자에 대한 증여의제, 배우자, 직계 존·비속간의 거래에 대한 증여 추정 등 많은 규정을 두고 있는 바 그 가운데에서도 가장 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 것은 피상속인의 생전행위에 대한 상속재산으로서의 가산규정이다. 즉 피상속인이 생전에 처분한 재산가액 또는 생전의 채무부담행위로 인한 채무액에 대하여 사용 또는 소비처를 상속인이 입증하지 못하는 경우에 이를 상속재산으로 보라는 규정이다. 물론 조세의 회피는 방지돼야 한다. 그래야만 조세는 형평성을 갖게 되고 정의가 실현된다. 그러나 그 방법은 합리적이어야 하며 사회적 타당성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방법을 제시한 것이 국세기본법에서의 실질과세원칙과 근거과세원칙이다.

피상속인의 생전처분 행위에 대해 상속재산으로 의제하는 규정은 이 두가지 과세원칙에 부합되지 않는 것이다.

첫째, 상속세는 상속개시일에 성립한다. 그렇다면 상속개시일에 실질적으로 피상속인의 소유로 현존하는 재산이어야 하는데 보이지 않는 상속이 있었을 것이라고 의제해버리는 잘못이 있다.

둘째, 피상속인의 재산이 생전의 행위로서 누구에겐가 무상으로 귀속됐다는 근거가 있어야 할 것인데 그 근거를 상속인에게 입증하라고 한 것이 잘못이다. 소송에 있어서도 입증책임은 사실을 주장하는 쪽에 있는 것이 채증법칙이다. 따라서 상속개시일에 현존하지 않는 재산이 상속됐다고 과세하기 위해선 이를 주장하는 과세관청이 입증해야 할 것이다. 현대는 컴퓨터와 정보의 발달로 국가가 과세 사실을 입증하는데 크게 어렵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기도 한다.

그런데 이 문제가 사법적 심판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 대법원은 당해 규정이 합헌이라고 판결한 것을 기억하고 있다.(헌법재판소가 생기기 전의 일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국회가 의원입법으로 이 규정을 삭제하는 법률안을 상정했다는 소식에 접하고 참으로 다행으로 생각한다.

앞으로도 의제규정을 제정할 때는 본래의 개념이 훼손되지 않고 중립을 지킬 수 있도록 하는 신중한 배려가 아쉽다고 하겠다.

※본란의 기고는 本紙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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