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중섭
강원대교수
강원대교수
역사적으로 상인은 경멸과 도덕적 오명의 대상이었다. 물건을 싸게 사서 비싸게 파는 사람은 근본적으로 정직한 사람이 아니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는 신성한 노동과 달리 매매는 마법으로 간주되거나 책략, 협잡, 교묘한 속임수로 매도되었다. 富는 이렇게 언제나 사회적으로 정당한 대우를 받은 것은 아니었다.
한때 일본에서도 돈을 버는 사람은 접촉이 금지된 천민계급이었고, 돈을 비인간화의 원천으로 여기기도 했다. 그러나 富에 대한 이상과 현실은 다르게 마련이다.
서구 사회에서 청부사상과 기부의 일상화는 기독교사상의 영향을 받았다. 청빈사상이 아니라 청부사상을 꽃피운 사회가 경제적으로 풍요롭고 인간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이런 역사적 배경에서 `상속세를 없애면 애써 겨우 벌어먹고 사는 가정들을 해치고 백만장자와 억만장자의 자녀들을 더 부자로 만들어 줄 것이다', `상속세 폐지는 민주주의와 경제와 사회를 위해 나쁘다'는 워렌 버핏, 조지 소로스, 록펠러 주니어의 주장이 나왔다.
그러나 이들의 태도를 근거로 富나 상속을 죄악시하거나 도덕적으로 폄하하는 것은 곤란하다. 그들이 자신들의 富를 모두 사회에 환원하고 사유재산을 폐지해야 한다거나 상속 자체를 없애야 한다고 주장한 것은 아니다.
그들은 상속세 폐지에 반대하는 것이지 상속의 폐지에 찬성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들의 입장은 사유재산권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富에 대한 도덕적 믿음의 뒷받침을 받고 있다. 자신의 노력으로 정당하게 취득한 재산에 대해서는 불가침의 권리를 갖는다는 재산권에 대한 사회적 합의는 개인이 富를 축적하고, 자선을 행하고, 세금을 납부할 수 있는 사회적 인프라를 형성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는 정당한 富의 축적, 사유재산권을 부정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나아가 합법적인 富의 상속이나 경영권 대물림을 사회정의의 이름으로 싸잡아 비난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돈을 버는 것은 인격 실현의 한 과정인데 우리 부모들은 자식에게 지나치게 많은 재산을 물려줘 자식은 물론 사회까지 망친다', `유산 가운데 가장 가치가 낮은 것이 재산 상속, 그보다 못한 것이 경영권 상속이다'라고 여긴다. 재산을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자손에 상속할 것인가, 사회에 환원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개인의 고유 권한이다. 때문에 개인의 결단을 넘어 이를 사회적으로 강제해야 한다는 도덕적인 명분론은 위험한 발상이다. 이러한 발상은 사유재산권을 부정하게 돼 개인들이 자신의 富를 사회로 환원할 수 있는 가능성마저 말살해 버린다.
우리가 열심히 일해 획득한 富, 합법적으로 양도받은 富의 정당성을 부정하고, `가난한 사람을 위한다', `사회정의를 실현한다'는 명분으로 평등한 분배를 외치는 사람들이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장차 가난만을 분배받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