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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하기 2025.06.20. (금)

[隨筆]이름이야기 -강효숙(강동署)


 강물은 흘러간다.
 오늘 한강대교 밑으로 흐르는 강물은 늘 똑같은 빛깔의 물이지만 항상 흘러가고 또 새로운 물이 흘러들어온다.
 그리하여 썩지 않고 남아, 온 시민의 젖줄 역할을 한다.
 이것 하나만으로도 한 사람의 생명력을 표현하기에 부족함이 없을 듯 싶었다.
 이왕 태어났으니
 강물과 같이 신선한 상태로 돌고 돌아 세계의 젖줄이 되면 어떨까!
 김강
 김강물
 김한강…….
 이것 저것 꿰어 맞춰보지만 뭔가 만족스럽게 떨어지는 것이 없다.
 '김가람(金가람)'
 이 이름이 가장 우리 정서에도 맞고 국어 사랑하는 맘도 갖게 할 것 같아 이렇게 정했다.
 머지않아 중학생이 될, 첫째 딸아이의 이름이다.

 그런데 웬말…….
 아이가 커가면서 글로벌시대에 조금은 뒤쳐지는 이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어학원을 다니기 시작하면서 일년에 서너번씩 바뀌는 외국인 선생님들이 한결같이 이름을 제대로 불러주질 못했다.
 갈라
 고름
 구름…….
 둘째는 아들을 낳으면 이름을 '바다'라고 지으리라.
 '김바다(金바다)'
 강물이 바다로 모여드니 스케일도 크고, 받침이 없어 외국인들이 발음하기에도 무리가 없으니 세계 어디에서 활동하더라도 본명을 쓸 수 있겠다는 생각에…….

 그런데 또 웬걸 아들을 낳고 나니 '바다'는 명확하게 다가오는 의미가 부족하고 발음이 가볍다는 느낌에 철학관부터 찾았다.
 출생하면 한달내 호적에 이름을 올려야 하는 넉넉지 않은 시간임에도 아기를 돌봐야 할 시간 쪼개 종로까지 이름을 짓기 위해 다녀온 엄마….
 네개의 이름이 적혀진 봉투 하나를 들고 왔건만, 모두가 많이 들어본 듯한 이름 같기만 하다.

 다른 건 볼 것도 없다.
 국제적인 감각이 있는 이름이 시대와 어울릴 거란 생각으로 오로지 그곳에만 초점을 맞췄지만 철학관과 국제적 감각과는 처음부터 어울리지 않다는 느낌이 적어 온 이름 석자들을 보면서 더욱 강해졌다.
 '김범준(金範埈)'
 3월이면 초등학생이 되는, 둘째 아들아이의 이름이다.
 이렇게 해서 두 아이의 이름을 호적에 올렸다.
 그러나 아들은 지금 '범준'이란 이름보다 그냥 '아들'로 불릴 때가 더 많다.
 "아들, 일어났어요?"
 "아들, 유치원 잘 갔다 왔어요?"
 내가 태어났을 때 부모님은 어떤 생각으로 내 이름을 지으셨을까?
 아들 둘 다음으로 태어난 첫 딸이었는데 그래도 딸이어서 섭섭하셨을까?
 그래서, 암 생각없이 그저 여자들 이름에 흔한 숙(淑) 하나 붙이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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