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카드로 인한 신용불량자 176만명 ▶구매실적 전세계 4위, 경제규모 벗어난 기형적 구조 최근 신용회복지원위원회가 밝힌 개인워크아웃 신청자들의 평균 나이 및 채무가 각각 32세 및 3천500만원으로 나타났다. 이들의 경우 중소기업 과장급 연봉에 해당하는 채무를 사회에 진입한지 불과 2∼3년만에 짊어진 꼴이다.
이와 관련, 은행연합회에서 지난 3월말 집계한 개인신용불량자 수는 300만명을 넘어선 것으로 조사됐으며, 이 중 신용구매·카드론 등 신용카드(Credit card)로 인한 신용불량자는 176만6천여명으로 전체 신용불량자의 60%이상인 것으로 드러났다.
각 개인별로 차이는 있겠지만, 32세의 나이에 3천500만원이라는 빚을 짊어지기까지 신용카드의 역할이 결코 적지 않았음을 반증하는 사례다.
신용카드업계에 따르면, 2002년말 현재 신용카드 발급매수는 1억480만매로 2001년보다 23.3%가량 증가했으며, 카드 회원수(중복계산)는 전년에 비해 10.2% 늘어난 8천720만명을 기록했다. 국내 경제활동인구 1인당 4.6매의 카드를 소지한 셈이다.
단순히 신용카드 발급률만 상승한 것이 아니다. 세계적 마케팅 조사기관 AC닐슨이 '2001년 전세계 비자·마스타카드 사용액'을 분석한 결과 한국은 2001년 한해 동안 2천41억달러를 사용, 세계 4위의 구매실적을 기록했다.
"경제규모에 비해 카드사용액이 너무 많다"는 업계 관계자의 말을 뒤로 하면, 한국이 과히 '신용카드 공화국'임을 절감하게 된다.
◇신용카드社마다 회원유치 경쟁 과열 ▶'신용카드공화국'아래 소비자·카드社 동반함몰 다음은 해외 파견 중인 某대기업 J 과장이 미주지역에 도착해 첫 생활근거지를 마련하면서 느꼈던 신용카드 발급과 관련된 일화.
"발급받는 데만 한달이 족히 걸릴 만큼 카드사의 꼼꼼한 개인신용 조회를 지켜보자니 조금은 불쾌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이름만 대면 알만한 대기업의 직원인데도 여느 사람과 동일하게 취급받는 것엔 익숙하지 않았다."
J 과장이 불쾌하게 느꼈던 일화는 사실 우리나라 신용카드사의 영업전략에서 기인한다. 지금은 뜸하지만 과거 신용카드사마다 경쟁적으로 카드회원 유치를 위해 '길거리 발급'에 나서는 등 자격유무를 묻지 않은 채 카드 발급을 남발해 댔다.
정부기관에서도 '세원관리' 목표하에 소득공제·복권제를 실시해 신용카드 사용에 따른 각종 인센티브를 제시하는 등 신용카드 발급 및 이용을 적극 권장했다.
그 결과 167만명의 신용불량자 양산과 카드발급을 권장했던 카드社마다 연체율로 골머리를 썩히는 실정에 다다르게 됐다.
카드업계에 따르면, 지난 4월 LG카드의 당월 연체율은 하루이상 23.4%, 1개월이상 11.7%를 기록 중으로 지난해 3/4분기이후의 상승세가 꺾이지 않고 있다.
그 외 카드社들도 이와 비슷한 실정으로 국민카드는 1개월이상 연체율이 11.96%, 삼성, 신한, 우리카드의 연체율도 7∼9%대를 기록해 모두 전월에 비해 높아졌다.
이처럼 '신용카드 광풍'이 휩쓸고 간 국민경제는 소비자와 카드社가 동반 함몰되는 등 처참한 지경이지만, 후발 신용카드社인 현대카드와 롯데카드는 이와 상관없이 공격적인 영업에 나서고 있어 '신용카드 공화국'의 기둥을 떠받치고 있다.
신용카드 빚에 얽매여 시름시름 앓고 있는 국민경제가 앞으로도 계속 지속됨은 물론, 이에 따른 사회적 범죄도 여전할 것임을 미뤄 짐작케 하는 현실이다.
◇개인 경제능력에 맞춘 소비생활 유도해야 ▶계좌내 현금보유 한도로 이용 제한되는 직불카드(Debit card) 대안 한국조세연구원의 김재진 박사는 "신용카드의 폐해를 막아설 가장 단순하면서도 효과적인 방안은 이미 사장되다시피 한 '직불카드(Debit card)'를 국민들에게 확산시키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현행 직불카드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이용자의 결제계좌에 반드시 물품구매액에 상당하는 금액이 상존해 있어야 한다. 즉 예금자의 계좌에서 판매자의 계좌로 전자자금이 이체되는 시스템이다.
반면 신용카드의 경우 카드이용자의 물품구매액을 카드社가 대납하고 이를 매월 카드社가 지정한 결제일에 납부하는 등 신용대출시스템으로 운용돼 물품구매일 현재 소비자의 현금보유 능력은 별반 상관없다.
이같은 연유로 물품 구매욕구가 강한 젊은 층일수록 자신의 현금 사정과 상관없이 과다한 소비생활로 신용불량자의 나락에 떨어지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현금을 대신한 거래결제행위가 반드시 신용카드일 필요는 없는 만큼, 여신기능이 추가되는 신용카드 대신 소비자의 예금잔액내에서만 사용 가능한 직불카드가 '신용카드공화국'이라는 오명을 씻어낼 적절한 대안으로 주목받는 이유다.
그러나 '96년 당시 전국 31개 은행이 참여해 처음으로 발급한 직불카드는 올해 5월말 현재 은행계 직불카드 가맹점수 22만여곳으로, 지난해 4월 27만여곳에 비해 5만곳 정도가 줄어들었으며 사용액도 같은 기간 67억원에서 31억원으로 절반이상 감소한 상황이다.
직불카드 이용자가 카드를 쓰고 싶어도 이를 받아주는 상점이 없어 이용할 수 없다는 하소연이 이유 있음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앞서 전세계적으로 신용카드 이용실적 선순위에 속한 미국, 영국, 중국 등의 경우 신용카드 사용액보다 직불카드 이용금액이 월등히 높은 것을 감안하자면, 오직 한국만이 신용카드와 직불카드와의 한판전에서 신용카드가 압도적인 우세승을 기록한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다.
국내 신용카드시장이 괄목할 만한 성장세를 이어온 반면, 직불카드시장은 이와 정반대로 쇠락의 길을 걸어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