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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하기 2025.04.30. (수)

내국세

③대기업 '직원할인' 관행으로 굳어질 뻔…기업·국회 설득 또 설득

기업엔 세무리스크 줄여주고, 오랜 관행을 과세영역으로 확보

"세무조사 아니더라도 '선한 영향력'으로 제도개선 이룬 사례"

 

사례1. A기업 직원들은 8천만원 짜리 고급 자동차를 직원 할인가 25%를 적용받아 6천만원에 산다. 할인 구입한 차량을 2년 후 중고로 팔아 차익을 챙기고, 할인 혜택으로 새 차를 또 구입할 수도 있다. 이런 혜택 덕분에 2년에 1대씩 10년간 5대를 구입한 사례도 있다.

 

사례2. 정년 퇴직자에게도 신차 25% 할인 혜택을 주는 기업도 있다.

 

 

기업의 종업원 할인제도라는 게 있다. 종업원 할인제도는 기업이 자사 또는 그룹사에서 판매하는 제품·서비스를 직원이 할인 구매하거나 이용할 수 있게 하는 선택적 복지후생 제도로, 대부분의 국내기업들은 다양한 목적으로 종업원 할인제도를 운영 중이다.

 

예를 들어 제조업체 A사는 직원들에게 온라인 전용몰을 통해 10~50% 할인 혜택을 주고, 유통기업 B사는 백화점이나 쇼핑몰 등에서 10~30% 할인받을 수 있는 혜택이 있다. 국내외 항공권을 직원들이 30~90%까지 할인받을 수 있도록 혜택을 주는 항공사도 있다.

 

기업의 종업원 할인제도는 우수 직원 유치로 기업 경쟁력 강화, 동기 부여로 업무효율 증대 등 효과가 있지만, 세법적으로는 기업이 종업원 할인제도를 운영할 경우 할인 혜택을 주는 기업의 법인세, 할인 혜택을 받은 종업원의 소득세에 영향을 미친다.

 

종업원 할인제도는 직원 입장에서는 제품·상품 등의 할인 혜택을 받는다는 점에서 경제적 효과는 동일한데, 할인 혜택 부여, 구매지원금 지급, 사후 정산금 지급 등 그 형식이 제각각 운영되고 있다.

 

문제는 과거부터 오랫동안 종업원 할인에 대한 과세기준이 기업별로 모호하게 운영됨에 따라 세무상 불확실성 또한 증대되고 있다는 부분이다.

 

때문에 기업의 종업원 할인 문제는 세무조사 때마다 논란으로 부상한다. 종업원 할인 혜택에 대한 과세 처리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 기업별로 다르게 해석할 수밖에 없고, 이로 인해 국세청 세무조사 과정에서 과세 여부를 놓고 견해가 첨예하게 대립하기 일쑤다.

 

종업원 할인 제도와 관련해 강민수 청장은 서울청장 재직시 문제점을 자세히 들여다보게 됐다고 한다. 서울청은 세무조사 후 종업원 할인 혜택에 대한 과세기준을 정립하기 위해 기획재정부 등 유관기관에 수차례 질의를 했으나 끝내 무산되기도 했다.

 

당시 기재부는 자동차 제조업체가 생산한 차량을 직원 등에 할인 판매한 것에 대해 법인세법 기본통칙(52-88-3 제8호)에 해당해 부당행위계산부인 대상거래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했을 뿐만 아니라, 종업원 할인액의 성격·근로계약 내용·수행업무·보수지급 조건 등의 사실관계를 고려해 근로소득에 해당하는지 판단해야 한다는 신중한 입장을 취했다.

 

따라서 사실상 세무조사를 통해 과세하기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그렇지만 할인금액의 근로소득 포함 여부가 불분명해 원천징수 여부에 대한 기업들의 혼란이 이어지고 있어 국세청 입장에서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었다.

 

예를 들어 직원이 자사 제품 구입을 희망하면 기업이 구매지원금을 지급하는 형태로 할인 혜택을 제공하거나, 의료기관 할인서비스를 제공하는 경우에는 할인액을 근로소득으로 신고하고 있었던 반면, 직원이 자사 제품 또는 서비스를 할인된 금액으로 구매할 수 있도록 할인 혜택을 부여하는 경우 일반적인 판매가격과의 차익은 비과세 대상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결과적으로 오랫동안 관행화된 종업원 할인제도를 개선하기 위해선 세무조사만으로는 어려운데다, 기재부 등의 미온적 법령해석으로 인해 교정 또한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강민수 청장은 종업원 할인제도가 비과세 관행으로 굳어지기 전에 개선을 해야 한다고 보고, 이 문제에 대한 해결방식을 바꿔서 접근토록 지시했다고 한다.

 

국세청은 해당 기업이 스스로 관행을 시정하도록 유도하면서 주요 기업들과 공동으로 유관단체에 세법개정을 건의토록 설득하는 등 오랜 관행을 과세의 영역으로 들어올 수 있게 차근차근 전략을 짰다.

 

우선 기업과 소통을 늘려나갔다. 기업입장에서는 종업원 할인제도가 소비자에 대한 상품 홍보 효과, 임직원들의 자사 제품 이해도 향상, 재고 소진을 통한 판매증대 효과 등 경영전략적 이유로 운영하는 측면이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적극 공감해 줬다.

 

그러면서도 공평과세 측면에서 종업원 할인에 대해 과세를 하는 것이 합리적이고, 일반소비자의 상대적 박탈감이 상당할 뿐만 아니라, 기업과 국세청이 함께 불명확한 법령의 개정을 추진하자고 설득했다.

 

이런 노력 끝에 경제단체에서 세법개정 건의에 나서게 됐으며, 지난 연말 관련 세법개정에 이어 1월 시행령 개정안도 마련됐다.

 

국회 심의과정에서 아찔한 순간도 있었다.

 

모든 세법개정이 그렇듯 국회 심사과정 역시 순탄치 않다. 기재위 조세소위 논의과정에서 “법령개정으로 근로소득세 부담만 늘어나는 것 아니냐”고 우려하는 의원도 있었지만, “특정 대기업의 종업원에 집중적·반복적으로 과도한 할인 혜택을 받는 것은 제한할 필요가 있다”는 입법 취지를 강조하며 설득했다.

 

또한 종업원 할인금액을 근로소득으로 명확히 규정하는 것에 공감하면서도 비과세 한도 설정 금액의 적정성에 대해 이견을 보이는 의원들도 일부 있었으나, 국세청과 기재부의 적극적인 설득으로 정부 원안대로 세법개정안이 통과되기에 이르렀다.

 

새롭게 도입된 종업원 할인제도 과세 기준에 따르면, 할인금액 가운데 시가의 20% 또는 연간 240만원 가운데 큰 금액을 한도로 비과세하고, 비과세 한도를 초과하는 할인액에 대해서는 소득세를 납부해야 한다.

 

이와 함께 자동차나 가전제품을 할인 구매한 경우는 2년간 재판매하지 못하도록 하는 등 종업원 할인이 급여 보전 수단으로 변질되지 않게 제도적 안전장치도 마련했다.

 

‘종업원 할인제도’ 사례는 단순한 세수 증대가 아니라 오랫동안 지속된 모호한 과세기준을 명확히 함으로써 세무 불확실성을 제거하고, 대기업과 중소기업 근로자간 과세 형평성을 제고하는 중요한 정책 전환점이라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국세청 관계자는 “국세청이 기업들과 적극적인 협력체제를 구축해 공감하고 소통하고 설득하는 과정을 끊임없이 거치는 등 꼭 조사를 거친 것들이 아니더라도 ‘선한 영향력’으로 제도 개선을 이룬 사례”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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