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검색

구독하기 2024.04.18. (목)

내국세

세무사 쯩(證)도 안나오는데 명퇴해야 하나

조직 활력·승진기회 보장 명분 이면에 세무사 개업이 수십년 명퇴문화 배경

올해 연령명퇴 대상 1962년생…2001년 이후 임용된 1970년생 초반 자동취득 안돼

역대 국세청장들, 먼 미래의 일로 치부…‘왜 내가 고양이 목에 방울 다느냐?’

10년 앞으로 다가온 명퇴절벽, 이제라도 명퇴·정년 연령 좁히기 위한 공론화 필요

 

6월말 국세청 세무서장급 이상 명예퇴직 인원이 대략 20명 중반대에 달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명예퇴직제도 존치 여부 또한 서서히 공론의 장으로 끌어와야 한다는 여론이 점증하고 있다.

 

명예퇴직의 주된 유인 배경인 세무사 자격증을 자동으로 취득하지 못하는 2001년 이후 임용된 국세공무원들의 퇴직시기가 채 10년을 남기지 않고 바짝 코앞에 다가온데 따른 것.

 

다른 정부기관과 달리 유독 국세청에만 예외없이 적용되는 세무서장급 이상 명예퇴직(연령명퇴) 관행은 정년 2년을 앞두고 상·하반기 출생연월을 기준으로 관복을 벗는 것으로, 수십년 동안 이같은 관행이 유지된 데는 퇴직 이후 ‘세무사 개업’이 보장되는 세무사자격 자동부여가 가장 큰 배경이다.

 

 

이와 관련, 2001년 이전까지는 세무사를 비롯한 법무사·변리사·관세사 등 전문자격사 자격증은 일정 경력을 갖춘 공무원들에게 자동으로 부여됐다.

 

그러나 지난 1999년 규제개혁위원회가 제도 폐지를 권고함에 따라 2000년 12월31일 현재 세무직에 복무하면서 퇴직일 직전까지 사무관급 이상 5년 재직한 자에 한해 자동자격을 부여하고 있으며, 그 외는 일정기간 복무한 세무직에 한해 1·2차 시험 일부를 면제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따라 국립세무대학 19기, 2001년 이후 공직에 임용된 7·9급 공채자, 행정고시 44회 이후 임용자 등은 사무관으로 5년을 재직하더라도 자동자격을 부여받을 수 없다.

 

국세청 명퇴 관례상 올해 당연 명퇴대상은 1962년생으로, 2001년 이후 공직에 임용된 세무대학 19기 출신의 평균 출생연도는 1970년 후반, 행시 44회는 1970년 초반, 7·9급 공채자는 1970년 초반으로, 이들이 서기관 이상 직급에 승진해도 자동자격이 부여되지 않는다.

 

이는 국세청이 공직 퇴직 이후 세무사 개업을 통한 인생 2막을 제시하며 서장급 이상 관리자들의 명퇴를 유도할 수 있는 길이 2001년 이후 임용된 이들에겐 더 이상 통용되지 않음을 의미한다.

 

실제로 일선 현장에서 만난 직원 대다수는 공직의 가장 큰 장점이 정년을 보장하는 것이기에, 퇴직 후 새롭게 시작할 사업이 없다면 연금수령 시기와의 갭차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라도 명퇴할 이유가 없다는 여론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문제는 이같은 연령명퇴 관행이 일시에 사라질 경우 국세청 서기관 승진인사는 2년 동안 사실상 단절될 수 밖에 없는 상황으로, 조직의 활력과 직원간 선의의 경쟁을 불어넣는 서기관 승진인사가 중지되면, 국세청 사무관급의 업무피로도가 극심해지는 한편, 조직문화에도 일대 혼란을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더욱이 최근의 인구 고령화 추세를 반영해 문재인 정부에서는 정년퇴직 연령을 연장하는 방안에 운을 떼고 있으나, 지금의 국세청은 2년여 전부터 서장급의 경우 연령명퇴 시점보다 오히려 앞당겨지고 있는 등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는 모양새다.

 

세정가에서는 서장급 이상 세무사 자동자격 취득자들이 사라질 경우 명퇴제의 효용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자동자격 취득자들의 명퇴절벽이 10년이 채 남지 않은 현 시점에서 연령명퇴와 정년퇴임 시기를 서서히 맞춰 나가야 한다는 주장을 제기하고 있다.

 

일선관서 한 관계자는 “조직활력과 후배들의 승진기회를 터주기 위한 것이라는 명퇴문화가 존속된 이면에는 세무사 개업을 할 수 있다는 실리가 있었기에 가능했다”며 “세무사 자격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현직에서 스스로 또는 조직의 용퇴 권유에 응할 직원이 몇이나 되겠느냐”고 반문했다.

 

달라진 공직세대 또한 명퇴문화에 부정적인 시선을 보내고 있다.

 

1950~60년 세대의 경우 절대 다수가 빈곤의 시절을 보낸 탓에 공직에 입문해 한 가정을 일구고 다시 한 세대를 창출했다는 자긍심을 앞세워 조직문화에 크게 반발하지 않았으나, 1970~80년 세대부터는 절대 빈곤을 벗어나면서 조직 보다는 개인을 우선시하는 가치가 태동했으며, 1990~2000년 세대는 한층 더하다.

 

공직을 바라보는 가치관 또한 세대별로 극명하게 갈려, 정년이 보장되는 공직자의 신분 상실에 대해 젊은 연령대일수록 부정적인 인식이 클 수 밖에 없어 스스로 물러날 의사가 없음에도 조직문화에 밀려 명퇴하는 관행에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가 늘고 있다.

 

이같은 조직문화의 변곡점은 짧게는 10여년 전부터 이미 시작돼 왔으나, 명퇴문화의 물길을 돌릴 수 있었던 당시의 국세청 인사권자와 상층부는 당장 자신의 임기 내에 시작되는 것에 커다란 부담감을 느껴 왔기에 지금까지도 공론화 의제에 오르는 것을 꺼리고 있다.

 

전직 국세청 고위인사는 “자동자격 폐지 이후 부임했던 국세청장 모두가 이 문제에 대해 일견 고심한 흔적은 있으나, 자신의 재임기간에 비춰볼 때 당분간은 먼 얘기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귀띔했다.

 

또 다른 인사는 “명퇴를 없앨 경우 당장 서기관 승진인사가 올 스톱될 것임은 자명한데 조직과 업무에 대한 충성도를 최대치로 끌어낼 수 있는 승진인사를 어느 인사권자가 쉽사리 포기하겠느냐”며 “명퇴 문제는 단순히 인사권자 단독의 의사결정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닌 국세청 조직문화와도 직결되기에 예민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연령명퇴자가 사라지는 시점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는 만큼 언제까지 주저할 수는 없으며, 이제는 명퇴제에 대한 조직원들의 여론과 지휘부의 입장을 조율해 가는 공론화 작업을 시작해야 한다는 여론이 점증하고 있다.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