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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닷 없는 억대 미르 출연 요구…기업들 '2015년 10월24일의 날벼락'

"다짜고짜 8억원 요구하면서 2~3일 안에 결정하라고…"

11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김세윤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국정농단' 사건 2차 공판에서는 '막무가내식' 재단 출연금 요구를 받았던 기업들의 '황당했던 그날'이 검찰을 통해 생생하게 전달됐다.

이날 검찰이 공개한 진술조서에 따르면 신세계 정모 상무는 2015년 10월에 전경련 박찬호 전무를 만나면서 미르재단을 알게 됐다고 밝혔다.

정 상무는 검찰 조사에서 "2015년 10월24일에 박 전무가 문화예술 재단을 만들 계획인데 우리 그룹에서 8억원을 출연해 달라면서 참여를 원해 황당했다"고 떠올렸다.

정 상무는 "(그 정도의 돈을 요구한다면) 재단 취지나 사업계획에 대해 미리 설명하는 등 최소한의 절차가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며 "그런데 그런 것도 없어 다짜고짜 2~3일 이내로 결정해달라고 해서 황당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래서 전경련 측에 '박찬호가 누구야'라고 물어보기까지 했다"며 "전경련에 (재단) 관련 자료를 달라고 했는데 아직 준비가 안됐다고 했다. 자료라도 있어야 출연 여부를 검토하는데 전혀 안돼 있어 검토할 것도 없는 상황이었다"고 밝혔다.

결과적으로 신세계는 미르재단을 거절한 후 케이스포츠재단에는 출연하게 됐다. 

정 상무는 "당시 저희들은 단순히 '정부나 청와대에서 연락이 왔구나' 정도로 생각하고 거절했다"며 "언론 보도처럼 대통령이 직접 챙겼다는 사실을 정확히 알았다면 그렇게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케이스포츠재단 출연 이유에 대해서는 "같은 해 10월 27일 언론보도를 통해 현판식에 상위 4개 그룹을 포함한 임원들과 많은 기업이 참여한 것을 봤다"며 "다 참여했는데 우리만 또 빠지면 정부에 밉보일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또 제의를 받았고, 이번에는 거부하면 안 될 것 같아 어렵지 않게 결정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대림산업 배모 상무 역시 박 전무로부터 연락받은 날을 2015년 10월24일로 기억했다. 

배 상무는 "재단을 설립하니 6억원을 출연해달라고 요구했다"며 "안종범 전 수석이 대통령 보고 과정에서 '10대 기업에서 범위를 더 확대해 참여시키는 것이 좋지 않겠냐'는 말을 해 대림까지 연락을 하게 됐고 했다"고 말했다.

배 상무가 날짜를 떠올릴 수 있는 이유는 명확했다. 당시가 토요일이었고 박 전무가 제시한 결정 시한이 액수에 비해 촉박했기 때문이다.

그는 "대림은 원래 대상이 아니었는데 급하게 결정돼 토요일이지만 부득이 연락하게 됐다고 했다"며 "급하니까 월요일까지 결정해달라고 요청했다"고 밝혔다.

 

김모 전 한진해운 전무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는 "재단법인 미르와 관련해서 2015년 10월22일에 박 전무로부터 전화가 왔다"며 "모금액을 그룹 매출액 기준으로 배분하려 한다며 우리 그룹에는 8억원을 이야기했다. 출연해주면 좋고 내일까지 보고해야 하니 윗분들에게 말해달라고 했다"고 말했다.

김 전 전무는 "왜 이렇게 시급하게 하는지 물어보기도 했다. 대통령이 그 동안 아무것도 안 됐다고 (안종범) 경제수석을 질책했다고 한다. 그리고 다음 주에 리커창 중국 총리가 오는데 양국 문화재단 간의 MOU를 체결하기로 얘기가 돼 있어 다음 주까지 설립을 끝내야 한다고 했다고 들었다"고 진술했다.

검찰에 따르면 김 전 전무는 조사에서 "실제로 MOU 체결이 됐느냐"는 물음에 "그것도 모른다"고 대답했다.

또 김 전 전무는 "토요일에 전화가 와 2억원 정도만 더해서 10억원으로 해달라고 금액을 갑자기 늘렸다"며 "일요일까지 통보해 달라고 했다. '내부 보고 절차가 있는데 이러면 나 보고 어떻게 하라는 거냐. 회장님 비행기 타고 있어 괴롭다. 급하다고 하니 윗분과 상의하겠다'고 말했다. 부사장에게 보고했더니 8억원은 하겠다고 했다"고 기억했다.

이에 대해 검찰은 "진술조서 내용과 동일한 취지로 당시 있었던 일을 김 전 전무가 수첩에 메모를 해 둔 게 있다"며 "여길 보면 VIP(대통령)가 금액 높이고 참여 기업 늘려서 (300억원에서) 500억원으로 하라는 지시가 있었다고 적혀있다. 회사 내부에서는 '어떻게 이렇게 진행되느냐'면서 당황했고, '하지만 무슨 수로 지금 와서 돈을 못 낸다고 하느냐'하는 부사장의 답변도 기재가 돼 있다"고 부연했다.

이처럼 미르·케이스포츠 재단 출연금 요구는 기업들에겐 예상하지 못한, '날벼락' 같은 사업이었다.

검찰은 현대자동차 그룹에서 만든 문화재단 설립 및 주요계획 품위서를 공개하기도 했다.

검찰은 "추가 예산 집행이 필요했다는 품위서가 확인된다"며 "어처구니 없게 케이스포츠재단 관련 내부 품위에 대해 '그룹공통 사업 연말성금 항목 소외이웃돕기 내역에서 재단 출연 항목 체육교류재단 케이스포츠 항목으로 930백만원 내부 전용'이라고 돼 있다. 내부에 배정된 돈은 없고 연말 성금 이웃돕기 기금에서 그 돈을 빼 K스포츠재단 비용으로 전용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업들의 비자발적 출연을 명확히 확인할 수 있는 증거라는 것이다.

현대차 측은 "당시 전체 기부금 계정 중에서 케이스포츠재단으로 지급됐고, 불우이웃돕기 성금에는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해당 성금은 2013년부터 2016년까지 동일한 금액이 집행됐다"고 알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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