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얼굴이 알려졌다는 이유만으로 상대방이 무고하는 것에 대해 정말 쉽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무고는 정말 큰 죄입니다."
성폭행 혐의로 피소된 탤런트 이진욱씨가 지난 17일 경찰에 출석해 한 말이다. 이씨는 경찰 조사를 받으면서도 시종일관 억울함을 호소했다.
치열한 진실공방을 벌이던 도중 이씨를 고소한 30대 여성은 "성관계 당시 강제성이 없었다. 이진욱씨에게 미안하다"며 진술을 번복, 무고 혐의를 자백했다.
이씨는 결국 성폭행범이라는 누명을 벗게됐다. 하지만 이미 배우로서 이미지에 상당한 타격을 받고 정신적 스트레스를 겪는 등 심각한 피해를 입은 뒤였다.
이처럼 죄 없는 사람에게 누명을 씌우는 성범죄 관련 무고가 빈발하고 있다.
이씨 같은 유명인들은 물론 일반인들도 고통받고 있다. 나중에 결백함이 밝혀져도 회복하기 힘든 상처를 입게 된다. 주위의 싸늘한 반응과 선입견이 쉽게 지워지지 않는 것이다.
무고 사건은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검찰과 경찰에 접수된 무고 사건은 2009년 3580건, 2011년 4374건, 2013년 4372건, 2014년 4859건으로 나타났다.
그중에서도 성범죄 사건과 관련된 무고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2014년 기준으로 강간·강제추행 등이 포함된 성폭력 범죄는 총 2만9863건이다. 이 가운데 '혐의없음' 처분이 내려진 사건이 4993건으로 조사됐다. 무고가 약 17%를 차지하는 것이다.
합의 하에 성관계를 했어도 일방적으로 성폭행을 당했다고 상대방을 고소할 수 있는 건 사건 특성상 객관적 증거 확보가 어려운 데다 피해자의 진술에 절대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악용하기 때문이다. 대부분 합의금 등 돈을 노리거나 개인적인 복수를 목적으로 무고하는 경우가 많다.
성범죄 관련 무고 사건은 비단 유명인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일반인도 무고의 피해자가 되는 경우가 많다.
지난해 일가족 내 성폭행과 성매매 강요 주장으로 세간을 떠들썩하게 한 이른바 '세모자 사건'이 대표적인 사례다.
어머니 이모(44)씨는 온라인에 "남편의 강요로 20년 결혼생활 동안 1000명에 달하는 남자를 상대했고 아들들도 300명이 넘는 남자들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도움을 요청하는 동영상을 올렸다.
이어 목사인 시아버지와 남편을 비롯해 일면식도 없는 사람까지 44명을 무려 36차례 걸쳐 고소했다.
심지어 교회에서 기자회견도 열고 "10년 넘게 남편 등으로부터 성매매를 강요받았다"고 주장해 신빙성은 더욱 커져만갔다. 하지만 이는 돈을 노린 무속인에게 조종 당한 이씨의 허위 자작극으로 밝혀졌다.
'세모자 사건' 같은 극단적인 사례는 물론 드물지만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사건들은 부지기수다.
서울에서 유흥주점에서 일하던 30대 여성 윤모씨는 손님으로 만난 남성과 만남을 이어오다 이 남성이 결혼할 생각이 없다고 밝히자 이 남성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며 경찰에 고소를 했다.
윤씨가 남성에게 복수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허위 고소한 사실이 발각되면서 그녀는 10개월 동안 교도소 신세를 지게 됐다. 전형적인 성범죄 관련 무고 사례에 해당한다.
불륜사실을 남편에게 들키자 강간을 당했다며 허위로 고소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아니면 말고'식의 무고로 인해 가해자로 몰린 사람들은 수사기관이나 법정에서 가까스로 무혐의를 입증한다고 해도 그 과정에서 유·무형의 고통에 시달리게 된다.
실제로 이진욱씨는 이번 사건으로 광고와 드라마 출연이 불발되면서 표면적으로 입은 피해 금액만 30억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무엇보다 향후에도 '성폭행 혐의 배우'라는 꼬리표가 계속 따라다닐 수 있어 금전적·정신적 피해가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유흥주점 종사자 윤씨에게 고소당했던 남성 또한 당시 재판 과정에서 "스트레스와 공포, 두려움으로 대인기피증이 생기고 정상적인 업무조차 볼 수 없을 정도여서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고 극심한 고통을 호소한 바 있다.
전문가들은 무고사건이 끊이지 않는 가장 큰 이유로 가벼운 처벌 수위를 꼽는다.
현행법상 무고죄를 범하면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그러나 범죄의 피해에 비해 형량이 가볍다는 지적이 많다.
무고를 저지른 사람이 상황이 자신에게 불리하게 돌아간다고 판단해 재판이나 징계처분이 확정되기 전에 자백이나 자수를 하게 되면 그 형을 감경 또는 면제를 받게 된다. 그래서 1년 이하의 징역이나 가벼운 벌금형에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무고 사건을 줄이기 위해서는 처벌 강화와 함께 사건 초기 무고 여부를 파악할 수 있는 시스템 마련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제안하고 있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 사법기관을 이용해 상대를 위협하는 무고 사건이 매년 증가하고 있다"며 "특히 성범죄 사건은 객관적 증거 확보가 어렵고 피해자 여성 진술에 절대적으로 의존할 수 밖에 없는 구조라 이를 악용하는 여성들이 많다"고 지적했다.
곽 교수는 "무고죄에 대해 법이나 제도를 통해 처벌을 강화토록 해야 하고 수사 초기에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증거를 확보하는 방안이 필요하다"며 "고발자 시스템을 마련해 주변인들의 진술을 확보, 무고인지 아닌지 빨리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성범죄 관련 무고는 누명을 쓴 남성 뿐만 아니라 실제로 피해를 입은 여성들까지 의심 받게 하는 등 사회적 편견을 갖게 할 수 있고 수사력 낭비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심각한 범죄"라며 "정부도 이 같은 문제점을 시민들에게 인식시킬 수 있도록 적절한 교육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