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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하기 2025.06.19. (목)

내국세

'행시10회가 다해먹는다'…김성호의 '반란'

-창간 50주년 기념 기획특집-

2000년 벽두, 국세청은 김대중 대통령으로 부터 '극 칭찬'을 듣는다. 김 대통령은 1월27일 전국세무관서장회의를 마치고 청와대를 찾은 안정남 청장 이하 국세청 간부들을 향해, '국세청이 납세자보호담당관실을 신설하고 무리없이 세수를 달성한 것은 국민을 위한 행정의 본보기'라며 공개칭찬 한 것이다. '국민의 정부' 다운 행보였다.같은 맥락에서 그해 3월3일부터 '조세의 날'이 '납세자의 날'로 개칭됐다.

 

이 후 국세청은 수입금액증명서, 원천징수이행신고서 등 민원증명 8종을 폐지하고, 신용카드불법거래색출시스템을 가동했다. 국세청과 카드사의 전산링크를 통해 카드불법거래를 실시간 체크가 가능토록한 이 제도는 거래질서 정상화와 근거과세에 크게 기여한 것으로 평가됐다.

 

이처럼 국세청은 '세풍' 회오리에서 벋어나 점차 정상을 찾아가는 것 처럼 보였다. 그러나 내부적으로는 극심한 인적내홍을 겪고 있었다. 특히 행시 10회 출신들이 고위직에 폭 넓게 포진한 관계로 '국세청은 행시전성시대'라는 말과 더불어 '10회가 다해 먹는다' 또는 '10회 때문에 국세청은 앞으로 못나가고 있다' 등 비판이 횡행했다. 그런 와중에 전혀 예상치 못했던 상황이 생겼다. 김성호 서울국세청장이 조달청장으로 영전한 것이다.

 

 

고위직의 경우 승진 못하면 퇴임하는 것이 국세청 통례였는데, 국세청 1급이 수평이동도 아닌 타기관 차관급으로 영전해 간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국세청 사상 전무한 이 쾌거 뒤에는 당시 국세청 고위직 인적구도 난맥을 정면 돌파한 김성호 서울청장의 숨은 예지가 담겨 있었다.

 

그때 상황을 정리해 보면, 건교부장관으로 영전해 간 이건춘 청장과 후임 안정남 청장, 김성호 서울청장 모두 행시 10회출신이다. 안정남 청장은 '정도세정'이란 캐치를 내걸고 언론사세무조사 등 야심차게 세정운영을 집행해 나갔다. 그에 비하면 황수웅 차장과 김성호 서울청장은 조용하고 내실있게 국세청장을 보좌하는 실무자 역할 그 이상이하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정가에서는 김성호 서울국세청장이 차기 국세청장 후보로 유력하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돌았다. 이는 안정남 청장에게도 부담이 되고, 10회 이후 후배기수에서는 국세청장을 10회들이 3번이나 독차지하는 전대미문의 사건이 벌어지지 않을까 내심 숨죽이며 귀추를 주목하는 형국이었다.

 

 

당시 국세청은 고위 관리직 인사적체가 다른 부처보다 심한 편이어서 은근히 고참들이 용퇴해 주기 바라는 분위기도 적지않았다. 이에 부담을 느낀 안정남 청장은 황수웅 차장으로부터 먼저 사표를 받는다. 또 기수는 10회 동기지만 나이는 훨씬 후배인 김성호 서울청장이 퇴임할 경우 모양이 안좋게 될 것을 우려, 공공기업체장과 협회장 등 김성호 서울청장이 갈만한 자리를 물색하고 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때문에 국세청 내부에서는 김성호의 거취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경상도 출신 간부들 대부분과 일부 호남출신 중에는 김성호 청장이 국세청에 남아 계속 큰일을 해 주기를 바라는가 하면, 일부 호남출신 간부들 중에는 김 청장이 용퇴해서 후배에게 인사적체의 숨통을 터 줘야 한다는 분위기가 병존했다. 김성호 서울청장이 진퇴를 분명히 결정해야 하는 시점이 온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2000년 8월 '국민의 정부' 3번째 개각이 있었다. 건교부 장관 영전설이 떠돌던 안정남 국세청장은 유임되고, 곧 이은 차관급 인사에서 김성호 서울국세청장이 조달청장(차관급)으로 승진했다. 예상치 못한 소식에 세정가에서는 인사적체 해소는 물론 국세청 위상을 높인 것이라며 크게 반겼다. 그 당시 상황을 김성호 씨는 이렇게 말했다.   

 

“개각 2달 전쯤인가 저도 용퇴할 마음으로 사표를 갖고 안정남 국세청장실에 들어갔다. 안 청장님께 '다음 개각에서 유임되시면 그때 제 사표서를 처리해 주십시오.’라고 비장한 마음으로 말씀드렸더니 ‘그렇게 하겠다’고 받아들였다. 그 당시 저를 인정해 주신 임채주 전 청장님 등 역대 국세청장님들과 김정복, 최명해 국장 등 주로 경상도 출신 간부들과 호남일부 간부들이 저에게 국가를 위해 더 공직에 봉사해야 한다는 여론을 적극 형성해 준 것이 정부 고위층까지 정보가 올라가 운 좋게 조달청장으로 승진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 당시 국세청 후배들에게 인사숨통을 터 주게 된 것이 무엇보다도 기뻤다”

 

김성호 서울청장은 조달청장 부임 후 전자조달 등 조달 혁신을 이루어 낸다. 그 성과를 인정받아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승진했고, 의약분업 후유증 해소와 우리나라 최초로 세계3대 국제기구 중 하나인 세계보건기구(WHO) 수장인 이종욱 사무총장을 배출해 냈다. 국세청맨으로서 국세청 위상을 크게 높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계속>
서채규 주간 <seo@tax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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