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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하기 2025.06.13. (금)

내국세

첫 호남인 국세청장 안정남…'正道稅政' 기치

-창간 50주년 기념 기획특집-

이건춘 11대 국세청장은 재임 1년 2개월 남짓 만인 1999년 5월23일 건교부장관으로 영전해 갔다. '세풍' 소용돌이와  IMF위기에서 조직을 안정적으로 일으켜 세우고 국세청의 가장 큰 위기라고 할 수 있는 '세풍 회오리'를 특유의 '외유내강' 뚝심을 발휘 해 무리없이 헤쳐낸 것 등이 보상받은 셈이다.

 

1999년 5월 26일, 이건춘 청장과 호흡을 맞추면서 '차기'를 기다리던 안정남 차장이 예상했던대로 제12대 국세청장에 임명됐다.

 

이건춘 전임 청장과 행시 동기(10회)인 안정남 12대 국세청장은 자타가 인정하는 노력형에다 국세청 호남인맥 중 선두주자로 꼽힌 인물이다. 따라서 김대중정부 출범과 함께 그의 국세청장 기용은 시기가 언제인가일 뿐 기정사실이나 마찬가지였다. 

 

사상 첫 호남인 국세청장을 맞아한 국세청은 우선 상층부 인적구도면에서 변화를 담보하고 있었다.

 

 

안정남 12대 국세청장은 취임직후, 국세청장 임명 소식을 미리 전해 듣고 강화도 마니산 신전에 올라 결의를 다졌다는 말을 털어 놓을 정도로 지신감에 차 있었다. 그는 취임일성으로 '정도세정(正道稅政)'을 국세행정 지표로 제시했다. '모든 국세행정을 바르게 행사하겠다'면서 부(富)의 변칙적인 세습방지와 기업자금 변칙 유출 방지, 숨은세원 발굴 등을 정도세정의 행심가치로 삼겠다고 했다. 그리고 청장 취임 14일만에 황수웅 대구국세청장을 국세청 차장에, 김성호 경인국세청장을 서울국세청장에 각각 기용했다. 국세청 1급 2자리를 영남출신 1명, 호남출신 1명으로 안배한 것이다. 

 

진용을 새로 짠 국세청은 1999년 9월 1일을 기해 '제2의 개청'을 선언하고 대대적인 국세청 조직개편을 단행했다. 경인국세청을 중부국세청에 통합시키고, 세무서 35개를 폐지 했다. 국세행정조직을 세목별에서 기능별조직으로 개편했다. 특히 '위민세정' 다짐 차원에서 '납세서비스헌장'을 선포하고, '납세자보호담당관'제도를 도입했다. 그러나 대 서민세정은 유와적인 반면 대기업의 세무관리(조사)는 어느때보다 강도가 셋다.

 

 

1999년 9월 중순 보광그룹 홍석현 중앙일보 사장에 이어 10월 한진그룹 조중훈 회장, 12월 신동아그룹 최순영 일가 등 대기업 세무조사를 단행했다. 세무조사를 받은 대기업 사주들은 대부분 검찰에 고발됐다. 국세청의 대기업들에 대한 강도 높은 세무조사는 정치권으로부터 강렬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한나라당은 '정치보복'으로 간주 했고, 여당과 정부는 '정당한 세정집행'이라고 일축했다.

 

국세청은 신용카드 활성화를 유도하기 위해 1999년 귀속 연말정산부터 신용카드소득공제를 적용했다. 신용카드 사용을 확대하는 것만이 근거과세를 가장 손쉽게 앞당기는 지름길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그리고 '탈세제보 포상금 1억원' 법안발의를 추진했다. 또 '국세청복지후생위원회'를 설치했다. 그리고 '눈치보기 근무방지' '법적연가 적극활용' '해외여행기회 확대'를 도입했다. IMF로 고생한 직원들을 격려하고 사기를 진작시킨다는 취지였다. <계속>

 

서채규 주간 <seo@tax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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