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의 행정업무에는 각 소관 부처별로 각자의 전문성을 지니고 있으나, 그중에서도 국세행정은 최고도의 전문성을 필요로 한다. 다음의 몇가지 실증적인 사례들을 보면 더욱 확실히 알 수 있다.
우리나라 각 고등법원 이상의 법원에는 정부 행정부처 중 유일하게 5급 이상의 국세공무원이 파견되어 재판을 지원하고 있는데, 이는 최고의 지식전문가 집단인 판사들도 국세업무에 있어서만은 그 전문성을 더욱 높이 인정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국세를 제외한 모든 국가기관의 행정처분은 행정심판 절차 없이 곧바로 행정소송이 가능하나, 국세부과에 대해서는 반드시 행정심(심사 또는 심판청구)를 거치도록 하는 필요적 전치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바, 이 또한 고도의 전문성으로 인하여 행정기관의 1차 거름장치가 필요하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이다.
특히, 같은 조세라도 지방세 행정심은 선택사항으로서 이를 거치지 않고도 행정소송이 가능하나, 국세만은 예외적으로 반드시 행정심을 거쳐야 소송이 가능토록 하고 있으며, 헌법재판소 결정에서도 국세는 지방세나 다른 행정처분과 달리 전문성이 매우 강하므로 행정심판 전치주의가 꼭 필요하다고 명시함으로써 그 정당성과 객관성이 확립되었다.
국가 행정기관의 역할이란 각종 법령에 의하여 국가와 국민에게 필요한 일을 하는 것이므로 기관별 관련 법령의 복잡성과 난이도 등에 따라 해당 직종의 전문성 정도를 평가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필자는 그러한 관점에서 몇가지 방법을 개발하여 조세법이 다른 법에 비하여 얼마나 복잡하고 전문적인지에 대해서 측정해 보았다.
법률의 복잡성과 전문성을 외형적으로 평가하는 것이 어느 정도 객관적일지는 시각에 따라 달라지겠으나, 척도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우선 특정 법령의 조문당 글자 수가 다른 법령에 비하여 월등히 많다면 그 법령은 그만큼 복잡하다는 것을 단편적으로나마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
먼저 국민생활에 필요한 법령을 일정 수량 임의로 추출, 조세관련 법령들과 조문당 글자수를 비교해 보았는데 현저한 차이가 있음을 확인하였다. 일반법령의 조문당 글자수가 보통 250자 내지 650자 정도 되었고, 그 평균치는 422자로 확인된 반면, 조세법의 경우 보통 600자에서 최고 2,500자까지 나왔으며, 평균치는 1,217자가 되었다. 평균치는 표본집단의 선정범위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다고 하더라도 3배 가까이 차이가 난다면 조세법이 일반법에 비하여 훨씬 복잡하고 어려운 법령임에는 틀림없다.
다음으로 법령별로 법원판례, 해석사례, 행정심판례 등의 생산량으로 유추해볼 수 있는데, 법령당 이러한 예규․판례 생산량의 차이는 조세법이 다른 법령의 수십 배에 달한다.
그 일례로 국가법령정보시스템에 수록된 법령자료와 행정소송 판례자료를 분석한 결과 조세법과 관련 1개 법률당 평균 판례 생산량은 다른 법령의 평균보다 33배나 많았다.
국세행정은 세법지식은 물론 회계학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도 함께 요구된다.
이러한 객관적 사례로 볼 때 국세공무원이 하는 일은 어느 행정부처 업무보다도 그만큼 어렵고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한 분야이다. 따라서 인력을 채용하고 관리하는 데 있어서도 그에 걸맞는 수급정책과 제도적 시스템이 뒤따라야 한다.
그런데 2012. 6월에 공무원임용시험령이 개정되면서 고졸자에게도 공무원 임용기회를 확대한다는 취지로 9급 국세공무원 시험과목 중 세법과 회계학을 필수과목에서 제외하고 수학, 사회, 과학과 같은 선택과목으로 변경했다.
우리 사회가 때로는 학력과잉이 국가 균형 발전에 걸림돌이 되기도 하고, 지나친 학벌주의가 갖가지 사회문제를 낳기도 한다. 정부는 이러한 문제점을 조금이라도 해소하기 위해 고심한 결과로 보인다.
그러나 공무원 시험령이 개정되기 전에도 공무원 시험에는 학력제한이 없었고, 고졸자에게 얼마든지 기회를 제공했다. 그리고 세무직에서도 고졸 학력으로 회계학이나 세법과목을 공부하여 공무원 시험을 통해 임용된 사례가 얼마든지 있었다.
그렇다면 시험과목이 바뀐 이후 고졸자의 진입이 어느 정도 늘었을까? 최근 어느 국회의원이 국정감사 보도자료에서 밝힌 통계를 보면, 최근 3년간 9급 국세공무원 합격자 3,037명중 고졸출신은 39명으로 1.28%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평균 13명밖에 안되는 아주 미미한 인원이다. 이나마도 매년 줄어들고 있다. 사실, 시험과목이 바뀌기 전에도 고졸자가 시험에 합격하여 임용된 인원이 어느 정도 있었기 때문에 시험과목 변경으로 임용이 늘어난 고졸자는 이보다 더 적을 것이다. 따라서 정책의 효과는 거의 없거나 미미한 수준이며, 오히려 문제점이 더 크게 드러나고 있다.
전문과목을 선택과목으로 변경한 이후 세법과 회계학을 선택한 인원은 전체의 17%에 불과하여 채용인력의 대부분이 대학에서도 세법이나 회계학을 전공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국내 대학이나 전문대학, 세무고 등을 통해서 배출되는 조세관련 전문인력은 매년 수천명에 이르고 있음에도 이를 공공분야에서 제대로 유치하지 못하는 것은 국가 인력수급 정책에 있어서 커다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로 인하여 국세행정의 능률과 납세자를 위한 서비스의 수준은 크게 떨어지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가와 국민이 떠안고 있다. 실제 행정의 현장에서도 이러한 문제들이 일어나고 있다. 물론 기 임용된 사람들의 능력을 폄훼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들도 높은 경쟁에서 선발된 인재들이다. 문제는 전문성이다.
국세공무원은 납세자, 특히 세무사나 회계사들이 작성한 각종 서류를 분석하고 검토해야 하며, 납세자들의 각종 문의에도 충분히 설명을 해야 하는데, 그러한 대응능력이 떨어지고 있으며, 시험에 합격하고도 신규교육 과정에서 스스로 임용을 포기하거나 임용된 이후 단기에 자퇴하는 경우까지 발생하고 있어 세무관서의 인력부족과 결원율은 심각한 수준이다. 따라서 과세품질 저하로 국가 재정조달에도 영향을 주는 것은 물론, 국민을 위한 납세서비스의 수준 또한 후퇴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물론 국세청에서도 이런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교육을 강화하고 실무능력 향상에 엄청난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비전문 신규인력을 전문인력으로 양성할 때까지는 많은 세월이 걸리는데, 이로 인한 행정력 누수의 피해는 납세자들에게도 전가되며, 1회성이라면 몇 년이고 감수할 수 있겠지만 일정규모의 신규인력은 매년 공급되므로 근본적인 제도개선이 없는 한 영구히 반복될 수밖에 없다.
중소기업에서 경리 한사람을 뽑는데도 회계능력을 갖춘 직원을 찾는데, 국가 공무원을 채용하면서 전문지식이 배제되는 것은 국가나 국민을 위해서도 불행한 일이다.
전문인력을 적소에 공급하는 것과 학력철폐는 별개의 일이다. 또한 제도를 통해서 얼마든지 동시충족이 가능한 일이다. 공무원 임용에 있어서 학력제한을 금지하는 것은 본래부터 당연한 일이듯이 국가인력을 적재적소에 공급하는 것도 국가의 당연한 의무이다.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서도 국민에 대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면서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하게 하는 것을 국가의 기본적인 의무로 명시하고 있다.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하게 하려면 알맞은 인재를 필요한 곳에 효율적으로 배치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9급 국세공무원 채용시험에서 세법개론과 회계학은 필수과목으로 환원되어야 한다. 공무원 시험은 높은 경쟁을 거쳐야 하므로 시험과목만 바로잡아도 우수 전문인력을 자연스럽게 확보할 수 있고,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게 함으로써 행정의 질을 높일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고졸인력의 진출을 제한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고졸인력의 사회진출 확대를 위한 별도의 정책이 꼭 필요하다면 지금처럼 9급 공채시험에서 대졸자와 똑같이 경쟁시킬 것이 아니라, 9급 일반 공채와 별도로 매년 일정인원을 고졸만을 응시대상(이들에게도 전문과목은 필수로 함)으로 하여 별도로 뽑는 것이 더 효과적일 것이다. 고졸만으로도 독학이나 경력 등을 통해서 관련지식을 갖춘 사람이 얼마든지 있다. 세무고등학교도 있으며, 인터넷 수강기회도 많다.
7·9급 국세공무원 임용시험에서 세법과 회계과목이 필수과목으로 들어간 것은 1999년도부터이다. 필자는 1996년도에도 이러한 문제점들을 직접 작성한 논문과 민원서류(법령개정 건의 등)를 통해 당시 총무처와 국세청에 여러 차례 제기한 적이 있었는데, 필자의 이러한 노력이 실제로 얼마나 반영되었는지 모르지만 바로 다음 해인 1997년도에 공무원 시험령이 필자의 의도대로 개정되었고, 2년의 경과규정을 두어 1999년도부터 시행되었으니, 당시 일련의 시기로 볼 때 조금이라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짐작해 볼 수 있다.
그러나 국세공무원 채용에 있어서 사회·경제적 흐름에 따라 전문역량을 더욱 강화하기는커녕 다시 20여 년 전으로 회귀하는 과정을 보고 필자는 상당한 우려를 하였는데, 이제 그 결과를 지켜보고 있자니 안타까운 마음 그지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