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구 국무총리가 취임 63일 만인 21일 전격 사의를 표명하면서 '성완종 리스트'의 실체를 밝히려는 검찰 수사에도 적지않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검찰은 헌정 사상 처음으로 현직 총리를 수사해야 하는 부담을 덜게 된 만큼 수사에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이 총리는 이번 사태 이후 돌아선 여론과 여권의 자진사퇴 압박 등에 못이겨 사의 표명을 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일각에선 검찰이 지난 일주일여간 압수물 분석을 통해 사실상 이 총리와 관련해 제기된 의혹들을 뒷받침할만한 결정적 단서를 확보했기 때문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이에 따라 홍준표 경남지사가 아닌 이 총리가 리스트에 오른 친박핵심 인사 8명 중 가장 먼저 검찰에 소환될 수도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 밤 중 갑작스러운 사의 표명…檢 수사 시그널 있었나
이 총리의 사퇴는 어느 정도 예고된 수순이었지만, 한 밤 중에 이뤄진 사의 표명 발표는 갑작스럽다는 게 대체적인 반응이다. 실제로 이 총리가 박 대통령이 순방을 떠난 이후에도 국정 운영의 2인자로서 "한 치의 흔들림 없이 국정을 수행하겠다"며 4·19 혁명 기념식까지 참석했던 것에 비춰보면 예상보다 타이밍이 빨랐던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를 두고 법조계에선 이 총리가 검찰 수사와 관련한 시그널(signal, 신호)을 포착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성완종 리스트 특별수사팀의 수사가 본격화되면서 무언의 압박을 느꼈을 가능성이 있고, 자신에게 불리한 정황과 목격담 등이 연일 보도되는 상황에서 더 이상 총리직을 유지할 수 없을 것이란 판단도 깔려 있는 듯 보인다.
특히 수사팀이 성 전 회장의 에쿠스 차량이 2013년 4월4일 오후 4시께 부여 톨게이트를 통과한 하이패스 기록을 확보했다는 등의 보도가 나오는 상황에서는 이 총리의 압박감은 더해졌을 가능성이 높다.
검찰 관계자는 "현직 총리가 가용할 수 있는 채널은 다양하기 때문에 언론에 보도되는 것보다 더 구체적인 내용이나 시그널을 받았을 수 있다"며 "여론 악화, 청와대와 여당의 압박에도 자리를 지켰던 이 총리가 심상치 않은 검찰 수사 분위기를 읽으면서 사의를 표명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현직 총리를 수사해야 하는 부담이 사라진 만큼 검찰 수사 속도는 더욱 빨라질 전망이다. 검찰 안팎에선 경남기업 전·현직 임직원 등 성 전 회장의 측근들에 대한 참고인 조사가 어느 정도 마무리 된 뒤 이 총리 선거캠프 관계자들에 대한 조사가 이어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 자승자박 이 총리…꼬리에 꼬리를 문 의혹들
법조계와 정치권 등에선 이 총리에 대해 '자승자박'(自繩自縛)' 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이 총리는 성 전 회장과의 친분에 대해 "19대 국회에서 국회의원 1년 가까이 한 것 외에는 특별한 인연이 없다"고 했지만, 수사팀이 이 총리와 성 전 회장의 통화기록을 분석한 결과 지난해 3월 이후 두 사람 사이에 착·발신 기록이 210차례가 넘는 것으로 전해졌다.
또 이 총리는 2013년 4월4일 성 전 회장과 만난 사실 자체가 없다는 입장이지만, 성 전 회장의 운전기사·이 총리의 전(前) 운전기사·지역 신문 기자 등은 두 사람의 독대 정황을 뒷받침하는 증언을 잇따라 내놓기도 했다. 이 총리 측이 전 운전기사 등을 상대로 말맞추기를 시도하거나 회유하려 했다는 의혹까지 제기되면서 사실상 이 총리는 이제 증거인멸 의혹에 대해서도 수사를 받아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이밖에도 성 전 회장이 2012년 1월 당시 야인으로 지내고 있던 이 총리의 출판기념회에 참석해 500만원을 냈다는 의혹도 불거졌으며, '이완구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완사모)의 핵심 인사인 운수회사 대표 이모씨는 회사 자금 등 60억여원을 빼돌린 혐의로 최근 구속되기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