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법 못 찾은 입장권, 승차권 관리
95년 8월은 금융실명제가 시행된지 2년이 되는 시점이었다.
그러나 실물거래에 있어서는 그동안 국세청, 경찰청, 공정거래위원회, 지자체 등 여러 기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무자료 거래나 무자료시장은 여전했다.
이때 중앙일보 등 일부 매스컴에서 대만은 통일발표(統一發票)라는 영수증제도를 오래전부터 도입해 추첨제도를 실시함으로써 영수증 주고받기가 사회적으로 잘 정착돼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 이에 다시 재경원이나 청와대 등에서 대만의 영수증제도에 관한 검토를 요청했다.
나는 주한타이베이 대표부의 협조를 얻어 대만의 영수증제도 관련규정을 번역하고 이를 요약해 보고서를 만들었다.
요약하면, 영수증서식 발행보급을 정부가 관리하고 이중 세무서에 제출된 영수증 중 일부를 추첨해 상금을 주는 방식으로 운영했다.
그러나 영수증 미발행의 경우나 발행했더라도 발행된 금액만큼 신고를 안하더라도 정확하게 체크할 방도가 없었다. 한마디로 우리나라의 금전등록기 영수증제도와 다름없는 것으로 우리 세정에는 그다지 큰 실익이 없는 것으로 잠정 결론을 내렸다.
한편 95년에 극장 등의 입장권과 버스승차권의 세정상 관리문제가 새롭게 부각됐다.
충무로 대한극장에서 극장입장권을 국세청이 지정한 인쇄소에서 찍지 않은 입장권을 사용하다가 발각됐다.
그때까지 버스승차권과 극장입장권에 대해 국세청은 서울신문사 산하 인쇄소에서 매장마다 일렬번호를 매겨 배부하고 반쪽을 절취, 사용후 사용매수와 잔여매수를 헤아려 사후에 수동으로 사용 업소의 수입금액을 관리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었다.
그런데 경제기획원에서 과도한 규제라는 이유로 이 제도를 폐지하자는 압력을 계속했다.
나는 앞으로 전산에 의한 새로운 관리방식이 개발될 때까지는 원시적이지만 그나마 다른 수단이 없으니 이 제도를 그대로 유지하자고 설득하고 결국 당분간 그대로 두기로 하였다.
제조업, 도매업, 건설업 등은 세금계산서 수수로, 소매업, 서비스업 등 소비자 상대 업종은 신용카드로 세법질서를 확립한다는 것이 나의 일관된 소신이였지만 그 외 입장권 등을 발행·교부해 업소를 경영하는 영화관, 극장, 체육시설, 대규모 놀이공원 등에 대하여는 어떤 방법으로 수입금액을 투명하게 파악할 수 있을지 아직은 숙제로 남겨 놓을 수밖에 없었다.
95년12월9일부터 12월17일까지 나는 한정수 사무관(4계 기획조사 담당)과 함께 독일의 부가가치세 행정을 보고 배우겠다는 명분으로 해외출장을 떠났다. 비엔나를 거쳐 프랑크푸르트에서 독일세무서 방문을 마친 후 스위스의 알프스 융프라우와 벨지움 브러셀을 관광하고 귀국했다.
이로부터 바로 며칠후 12월21일 추경석 청장께서는 건설교통부 장관으로 기용됐고 후임 국세청장에는 임채주 차장이 승진, 기용됐다.
나는 마음 속으로 내 공직생활에서 가장 긴 보직이요, 가장 바빴던 부가가치세과장 시절을 마감할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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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12월21일 추경석 국세청장은 건교부장관으로 영전했다. 추경석 청장은 말단 세무공무원으로 출발해 국세청장에 오른 그야말로 입지전적인 인물이었다. 그는 탁월한 통찰력과 경륜을 유감없이 발휘해 국세행정을 선진화 시킨 것은 물론 ‘강한 국세청’을 만들었다는 평을 들었다. 그런 평판을 증명하듯 그는 두 대통령(노태우-김영삼 대통령)으로부터 국세청장에 임명되는 사상 첫 국세청장이 됐다. 추경석 청장은 재임시에 경인국세청을 신설했다. 따라서 당시 수도권에는 서울청-중부청-경인청 등 3개 지방국세청이 존재했다. 경인청 신설은 당시 추경석 청장의 파워가 얼마나 막강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다. 사진은 1993년 3월 경인지방국세청 개청식에서 추경석 국세청장이 축사를 하고 있는 모습.<세정신문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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Ⅴ. 하프타임-세정개혁의 밑그림을 그리다
1. 한국조세연구원 파견 국장 시절
96년1월22일 나는 2년8개월간의 부가가치세과장 시절을 마감하고 서초구 양재동에 자리하고 있는 한국조세연구원(KTI)으로 연구를 위한 파견근무 명령을 받았다.
나는 당초 중앙공무원교육원에 개설돼 있는 1년간의 고급공무원 정책연수과정에 들어가는 것으로 내정돼 있었으나 교육 발령 전날 저녁 이석희(李碩熙) 직세국장(직후에 차장으로 발탁됨)이 당시 서울청 재산세국 김종상 국장에게 중앙공무원교육원 연수자리를 양보해 달라고 하여 난 두말없이 OK했다.
다음날 내가 조세연구원으로 파견발령된 것을 보고 선임 국장들은 왜 그렇게 했느냐며 의아해하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어차피 어디서나 1년의 연수과정을 거쳐야 한다면 어디로 가든지 별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다.
<계속>-매주 月·木 연재-





